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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문화대혁명 40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전모’

등록 2006-01-22 17:55수정 2006-01-23 10:05

베이징에서 가장 규모가 큰 판자위안 골동품 시장의 헌책방 거리에선 문혁 시절의 선전화 등 이른바 ‘문혁 물품’들이 수집가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문혁의 ‘전모’는 아직까지 예민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베이징에서 가장 규모가 큰 판자위안 골동품 시장의 헌책방 거리에선 문혁 시절의 선전화 등 이른바 ‘문혁 물품’들이 수집가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문혁의 ‘전모’는 아직까지 예민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아시아아시아인] 40년전 홍위병은 무슨 일을 저질렀나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6일 “‘4인방’의 마지막 생존자이던 야오원위안(요문원)이 지난해 12월23일 병으로 숨졌다”는 짧은 기사를 내보냈다. 그의 죽음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전역을 피로 적셨던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문혁)’의 어두운 그림자가 한꺼풀 엷어지는 걸 뜻했다.

마침 올해는 문혁이 터진 지 40돌, 끝난 지 30돌이 되는 해이다. 문혁 시절 마오쩌둥(모택동)과 공산당이 극좌 편향의 오류를 저질렀음을 시인한 ‘건국 이후 역사 문제에 관한 약간의 결의’(1981)가 채택된 지 25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문혁 시절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는 지, 문혁 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홍위병 참회록> 등 단편적인 ‘회고’ 등이 있지만, 이런 자료들은 당시 벌어진 비극 가운데 빙산의 일각을 보여줄 뿐이다.

‘마오쩌둥의 붓’ 야오원위안 사망
그의 1000만자 기록 철통 보안
‘전모 공개’ 박물관 설립운동 활발

야오원위안은 문혁 시기 ‘마오쩌둥의 붓’이란 별명답게 4인방 가운데 가장 많은 기록을 남겼다. 15살 때부터 일기 쓰기 버릇을 들인 야오는 문혁 10년의 세월은 물론, 감옥에서 보낸 20년, 1996년 형 만기 석방 이후 사망할 때까지 10년 동안을 모두 꼼꼼한 일기로 남겼다. 출옥 뒤에는 회고록도 집필했다. 그의 일기는 1000만자, 회고록은 30만~40만자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알려져 있다. 문혁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그의 기록은 중국 현대사의 진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1차 사료’다. 그러나 당국은 그의 모든 기록을 몰수한 뒤, 이 ‘판도라의 상자’가 바깥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극심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야오의 일기와 회고록만 당국이 민감하게 여기고 있는 게 아니다. 베이징 하이뎬구에 있는 국가도서관에서 일반인의 대출과 열람이 금지되고 있는, 가장 민감한 구역은 바로 문혁 관련 자료가 모여 있는 곳이다. 이런 사정은 베이징대 도서관 등 대학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의 문혁 관련 블로그들도 폐쇄당하거나, ‘비판투쟁’ ‘집단 처형’ 등 참상을 담은 사진들은 모두 삭제당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아직도 문혁을 예민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혁 종결 30돌을 맞은 중국에서 이제는 문혁의 전모가 공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이는 ‘문혁박물관’ 건립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혁박물관 건립 운동은 지난해 101살의 나이로 세상을 뜬 작가 바진(파금)이 1986년 6월 처음 주창한 이래 많은 지지자들을 얻어왔다. 바진은 “나는 문혁박물관을 세워 자손들에게 이 시기의 역사를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며 “문혁박물관을 세우는 일은 중국인 모두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바진의 전기 작가 리후이는 “독일인들은 나치박물관을 지음으로써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고 나치의 악몽에서 벗어났다”며 “자신의 추악함을 직시할 수 없는 민족은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신화통신> 시사평론가인 쉬쉐장은 최근 인터넷에 발표한 글을 통해 △문혁의 주인공들이 모두 역사의 인물이 됐고 △지금 자료를 수집해놓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박물관 건립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중국사회과학원의 한 연구자는 “문혁의 참상을 날것 그대로 보여줄 경우 공산당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 나아가 사회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강화될 것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한 누리꾼은 <봉황위성텔레비전> 인터넷 토론방에 올린 글에서 “문혁박물관을 세우면 공산당 정권의 합법성에 대한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혁박물관 논쟁은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의 반영이라는 주장도 있다. 문혁 때 10년 동안 ‘노동개조’를 당했다는 궁즈웨이는 최근 <연합조보> 인터넷 토론방에 발표한 글을 통해 “오늘날 농민공 등 극빈층들은 ‘차라리 문혁 때가 좋았다’며 마오쩌둥을 추억하는 이들이 많다”며 “중국 사회의 심각한 빈부격차와 불평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이런 사상적 혼란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혁은 30년 전 끝났지만 그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국가가 안하면 우리가 한다

민간 박물관 2곳 반대 딛고 문열어
‘마오 어록’ ‘홍위병 참회록’ 등 전시

문혁 당시 ‘흑색분자’란 ‘죄명’이 쓰인 무거운 철판을 목에 걸고 ‘비투(비판투쟁)’를 당하고 있는 런중이. 중국 당국은 ‘비투’와 ‘공개 처형’ 등 잔인한 장면을 담은 문혁 당시 사진을 인터넷에서 모두 삭제하고 있다.
문혁 당시 ‘흑색분자’란 ‘죄명’이 쓰인 무거운 철판을 목에 걸고 ‘비투(비판투쟁)’를 당하고 있는 런중이. 중국 당국은 ‘비투’와 ‘공개 처형’ 등 잔인한 장면을 담은 문혁 당시 사진을 인터넷에서 모두 삭제하고 있다.
문혁박물관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지난해 4월 광둥성 산터우시 딩하이구 타산에는 3층짜리 문혁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문혁의) 기원’ ‘대비판’ ‘종결’ 등 모두 12개의 전람실로 이뤄진 이 박물관은 1996년부터 개인적으로 자료를 수집해온 펑치안(팽계안)이란 사람이 세운 민간 박물관이다. 그 자신 문혁을 겪었던 펑치안은 “산터우시 타산 지역은 문혁 때 무장투쟁이 벌어져 400여명이 죽고 4500여명이 다친 문혁의 상처가 가장 깊은 곳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한다. 이 박물관에는 문혁 당시 발행된 <마오쩌둥 주석 어록> 등 각종 ‘홍색 서적’과 중앙에서 발표한 문건들, <마오쩌둥 선집> <홍위병 참회록> 등이 진열돼 있다.

이 박물관이 문을 열 즈음 지역 관리들은 “과거의 상처를 새삼 다시 일깨울 필요가 없고, 이로 인해 다시 동란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며 반대 의사를 전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홍콩 매체들은 “작가 바진과 런중이 전 광둥성 서기 등 문혁을 철저히 부정해야 한다는 인사들이 이 박물관의 개장을 뒤에서 도왔다”고 전했다.

최근엔 쓰촨성에도 ‘문혁 예술품 진열관’이란 이름의 민간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쓰촨성 정치협상회의 위원인 판젠촨이 연 이 진열관엔 문혁 시기에 사용된 30만점의 물품, 8000점의 도자기, 10만점의 마오쩌둥 배지, 2만장의 선전화 등이 전시돼 있다. 판은 “일단은 ‘첨예’하지 않은 방식으로 박물관을 시작했다”며 “문혁은 우리 중국인이 피해갈 수 없는 역사이므로 곧 국가 차원의 박물관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문화대혁명이란

문화대혁명이란 1966년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자본주의의 오염을 막기 위한 계급투쟁은 필요하다”는 마오쩌둥의 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벌어진 대규모 군중운동을 말한다. 마오의 부인 장칭과 장춘차오·야오원위안·왕훙원 등 이른바 ‘4인방’이 주도했다. 이 기간 동안 덩샤오핑, 후야오방 등은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당권파’로 비판받아 ‘노동개조’형을 받았고, 수많은 지식인·학생들이 농촌으로 ‘하방’당해 노동에 종사했다. 10대 홍위병들에게 모욕당한 작가 라오서 등 지식인 수백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혁의 희생자는 몇십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1976년 9월 마오쩌둥이 사망한 뒤 한달 만에 4인방이 체포되면서 문혁은 끝났다. 1981년 중국공산당 11차 6중전회는 ‘건국 후 역사문제에 관한 약간의 결의’를 통과시켜 문혁을 전면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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