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한스크 지역에서 복무하다 지난 12일 전사한 보흐단 므콜라요브치 사블린 선임병의 장례식이 18일(현지시각) 낮 우크라이나 부차의 한 공동묘지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애도하고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군복을 입은 병사 여럿이 삽을 들고 새로 구덩이를 팠다.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영웅’을 묻을 자리다. 바로 오른쪽엔 엿새 전 먼저 고향으로 돌아온 한 영웅이 이미 묻혔다. 왼쪽엔 내일 고향 땅에 돌아올 또 다른 영웅을 위한 구덩이 하나가 더 파였다. 러시아군과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용사들이 ‘영웅의 골목’이란 이름의 묘지로 매일 돌아오고 있다.
18일(현지시각) 낮 12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외곽 도시 부차에 있는 ‘영웅의 골목’ 묘지에선 이날도 장례식이 열렸다.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간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동부 루한스크 지역에서 복무하다 부상을 입은 소총병 겸 간호사 보흐단 므콜라요브치 사블린(Bohdan Mykolayovych Sablin) 선임병(42)이 지난 12일 결국 전사했다.
루한스크 지역에서 복무하다 지난 12일 전사한 보흐단 므콜라요브치 사블린 선임병의 장례식이 18일(현지시각) 낮 우크라이나 부차의 한 공동묘지에서 열리고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가족과 친인척, 마을 주민들은 색색깔 꽃을 한 아름 가슴에 안은 채 관을 둘러쌌다. 파란 하늘과 노란 밀밭을 의미하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관을 귀중히 감쌌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사제의 집전 아래 장례식이 시작됐다. 무거운 공기를 뚫고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들이 담긴 관 앞에 선 늙은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어머니와 누나, 군인의 배우자는 신음을 내며 울었다가 넋이 나갔다가를 반복했다.
루한스크 지역에서 복무하다 지난 12일 전사한 보흐단 므콜라요브치 사블린 선임병의 장례식이 18일(현지시각) 낮 우크라이나 부차의 한 공동묘지에서 열린 가운데, 사블린의 누나가 관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루한스크 지역에서 복무하다 지난 12일 전사한 보흐단 므콜라요브치 사블린 선임병의 장례식이 18일(현지시각) 낮 우크라이나 부차의 한 공동묘지에서 열리고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누군가를 위해 죽는 것만큼 대단한 사랑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그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신부가 말했다. 조문객들은 사블린이 누워 있는 관으로 한 명씩 다가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한 아름 안고 온 꽃을 선물했다. 고마움과 미안함, 존경과 사랑을 담아서. 가족들의 순서는 제일 마지막이었다. 어머니와 누나는 관에 얼굴을 묻었다. 어깨가 들썩였다. 한참 동안 관을 쓰다듬고 어루만졌다. 부인은 관에 손을 얹은 채 꾸역꾸역 눈물을 삼켰다.
루한스크 지역에서 복무하다 지난 12일 전사한 보흐단 므콜라요브치 사블린 선임병의 장례식이 18일(현지시각) 낮 우크라이나 부차의 한 공동묘지에서 열리고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탕. 탕. 탕. 총소리가 세 번 크게 울려 퍼졌다. 깊게 파인 구덩이 안으로 용사의 관이 내려갔다. 한 군인이 부인에게 다가가 곱게 접은 국기를 건넸다. “그는 영웅이었습니다.” 가족은 구덩이 옆에 높게 쌓인 흙을 집어 관 위로 세 번씩 뿌렸다.
“아들아…네가 어떻게 우리를 떠날 수 있니. 네가 우리를 구했다. 미안하다…아들아.”
어머니는 흙 속으로 사라져 가는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외치고 또 외쳤다. 부인은 사람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할 때가 돼서야 남편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분홍 장미 한 다발을 내려놓고 고개를 떨궜다. 장례식을 마친 뒤 사블린 선임병의 누이인 나탈리아(47)는 “조국을 수호하러 가기 전부터, 그 후에도 그가 언제나 자랑스러웠다”며 “그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고, 결코 자신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8일(현지시각) 낮 우크라이나 부차의 한 공동묘지에 전사한 군인들이 묻혀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사블린 선임병의 장례식이 치러진 이후에도 사흘 연속 매일 같은 곳에서 장례식이 진행됐다. 19일에는 16일 교전 중 사망한 세르히 페트로브치 마진(Serhiy Petrovich Mazin) 중령, 20일에는 지난 8일 도네츠크 지역에서 전투 중 사망한 블라디슬라브 볼로드미로브치 안드레예브(Vladislav Volodymyrovych Andreev)가 고향 땅으로 돌아와 묻혔다.
우크라이나 정부 발표에 따르면, 동부 돈바스(루한스크·도네츠크 주 일대) 지역에서는 최근 매일 200명 이상이 숨지고 있다고 한다. 군인들의 주검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일주일 정도가 걸린다. 우크라이나 곳곳에서는 이렇게 최전방 전사자의 장례가 날마다 치러지는 중이다.
부차/노지원 기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