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헌트 영국 신임 재무장관이 17일 성명을 발표해 지난달 리즈 트러스 총리가 발표한 감세안을 거의 대부분 철회한다고 밝혔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제러미 헌트 영국 신임 재무장관이 리즈 트러스 총리가 지난달 발표한 감세안을 거의 대부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 조처로 영국 정부의 재정 정책에 대한 시장 신뢰가 회복될지 관심이 모인다.
헌트 장관은 17일 영상으로 발표한 5분23초 길이의 성명에서 “모든 정부에 가장 중요한 책임은 경제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조처를 취하는 것”이라며 “영국의 경제 안정과 재정 규율에 대한 정부 약속에 대한 신뢰를 제공하려면 영국의 재정이 중기적으로 안정된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헌트 장관은 이를 위해 내년 4월 기본 소득세율을 현재 20%에서 19%로 낮추려 했던 계획을 철회하고, 경제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이를 영구적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생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가계와 기업에 지원하는 보편적 에너지 지원 요금을 애초 2년에서 “내년 4월까지(6개월)만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제도를 6개월 유지하는 데 무려 600억파운드(약 97조3000억원)가 소요된다. 배당세율 인하, 관광객 면세, 주세 동결 계획 등도 모두 취소됐다. 다만, 이미 의회를 통과한 주택 취득세율 인하와 국민보험 분담금 비율 인상 취소만 예정대로 시행하기로 했다. 이 안이 발표된 뒤 17일 런던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 가치가 올라 1파운드에 1.13달러대에서 거래됐고, 국채 금리도 떨어졌다.
앞서 트러스 총리는 지난달 23일 총 450억파운드(약 72조원)에 달하는, 1970년대 이후 최대 감세 정책을 발표해 시장을 큰 혼란에 빠뜨렸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영국 중앙은행(잉글랜드은행)은 잇따라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정부는 감세를 통해 돈줄을 풀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감세안엔 줄어든 세수를 어떻게 메꿀지에 대한 계획도 빠져 있었다. 결국 시장은 영국 정부가 빚을 내(국채 발행) 이를 메꿀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영국 국채 금리는 급등하고, 파운드화 가치는 폭락했다.
결국 트러스 총리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3일 ‘부자 감세’란 비판을 받던 소득세 최고 세율 폐지(45%→40%)안을 철회한 데 이어, 14일엔 내년 4월부터 법인세를 낮춘다는 안(25%→19%) 역시 포기했다. 트러스 총리는 같은 날 쿼지 콰텡 재무장관을 해임하고 후임으로 재정 규율을 중시하는 헌트를 기용했다. 헌트 재무장관은 취임 사흘 만에 트러스의 감세안을 사실상 철회한 것이다.
헌트 장관은 “영국에 지금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안정성이다. 시장이 변동하면 주택대출의 부담과 연금기금의 가치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이날 발표한 계획과 관련해 지난 주말 트러스 총리와 논의했고, 마크 카니 잉글랜드은행 총재에게도 설명했다고 밝혔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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