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러시아 용병 부대 바그너(와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에서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러시아 국기를 치켜들며 완전한 점령을 선언하고 있다. 바흐무트/AFP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이후 격전이 이어졌던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에서 러시아가 정규군을 투입해 점령을 사실상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국방부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 사실을 공표한 뒤 하루가 지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사실상 이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가 수정하는 등 혼란을 보였다.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바흐무트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통제하에 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바흐무트는 오직 우리 마음속에 있다. 비극이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하지만 세르히 니키포로우 대통령실 대변인은 발언 직후 “대통령은 바흐무트가 점령됐음을 부인했다”고 해명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도 자국군이 여전히 바흐무트에서 격렬히 전투 중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젤렌스키는 몇시간 뒤 기자회견에서 “오늘 러시아군이 바흐무트에 있다”면서도 “바흐무트는 오늘 현재 러시아에 점령되지 않았다”고 바흐무트 상황이 위중함은 인정했다.
앞서, 러시아 국방부는 20일 오후 “남부집단군의 대포와 전투기의 지원을 받은 와그너 돌격대의 공격적 조처의 결과로, 아르툐몹스크(바흐무트의 러시아식 이름)의 해방이 완료됐다”는 한줄 성명을 발표했다고 <타스> 통신 등이 보도했다.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도 21일 오전 성명을 내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바그너 돌격대뿐만 아니라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고 외곽을 지킨 러시아군에게 아르툐몹스크를 해방한 작전의 완료를 축하했다”며 “그 전투에서 수훈을 세운 모든 이들이 국가 훈장을 추천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격전지인 바흐무트 전황에 대해 러시아 국방부가 직접 ‘완전히 점령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푸틴 대통령까지 나서 이를 치하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바흐무트의 전황을 전해온 것은 이 전투를 주도한 용병 부대인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었다. 러시아 정부의 공식 발표에 앞서 프리고진은 20일 자신의 텔레그램 계정에 올린 동영상에서 “오늘 5월20일 한낮에, 바흐무트가 완전히 점령됐다”며 “5월25일께, 우리는 바흐무트를 완전히 점검하고, 필요한 방어선을 구축한 뒤 군에게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논의하는 주요 7개국 정상회의 기간에 맞춰 이 도시를 함락해 지원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여주듯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이 전투에 참가하지 않던 러시아 정규군의 도움으로 이 도시를 함락했다고 언급했다. 러시아 국방부의 지원 부족을 비난하던 프리고진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참모총장의 “변덕” 때문에 “다섯 배나 많은 인원이 죽었다”면서도 “조국을 수호할 기회와 명예를 준” 푸틴 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20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주요 도시인 마리우폴을 완전 점령했다고 발표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