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 살고 있는 프셰미스와프 유시비아크의 집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모습이 보인다.
8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의 낮 최고기온은 30도. 프셰미스와프 유시비아크의 집 지붕에서는 태양광 패널(PV) 14개가 이글거리는 햇빛을 받으며 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의 가족은 부인과 아이 셋까지 모두 5명이다. “우리 식구가 실제 전기를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생산해냅니다. 매일 다 쓰고도 남아요.” 그는 실시간 전력 상황을 보여주는 컴퓨터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날 오후 4시까지 태양광 패널이 생산한 에너지는 18㎾h(킬로와트시)였다. 가족들이 사용하고 남은 전기는 송전망 사업자에게 되판다. 한국으로 치면 한국전력에 판매하는 셈이다. 전날 이 집에서 만들어낸 전력은 총 24.3㎾h였는데, 이 가운데 6.71㎾h(27.6%)를 소비했고 남은 전력 17.59㎾h(72.4%)를 정부가 정한 가격에 따라 151센트(약 2천원)를 받고 팔았다.
독일은 2000년부터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우선적으로 매입하는 재생에너지법을 시행 중이다. 소비자가 내야 하는 평균 전기요금이 ㎾h당 34센트인 것을 고려하면, 잉여 전기를 헐값(㎾h당 8.6센트)에 넘기는 듯하지만 자체 생산한 에너지를 직접 쓰고, 남는 것을 되팔아 돈을 벌고, 게다가 에너지를 만들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어 친환경적이기까지 하니 일석삼조다. 유시비아크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기후위기에 대처할 뿐 아니라 전기를 자체 생산해 쓰다 보니 에너지 요금이 오르는 외부 상황의 영향을 덜 받는 점도 만족스럽다”고 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독일 가정에선 컴퓨터로 실시간 발전 상황을 알 수 있다.
그는 지난 5월 태양광 패널을 처음 설치했다. 2만4천유로(약 3408만원)가 들었고 정부의 세제 혜택을 받아 5천유로(약 710만원)를 아꼈다. 독일 정부는 올해부터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태양광 패널과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함께 구매할 경우 부가가치세(19%)를 면제해주고 있다.
태양광 패널 설치 뒤 현재까지는 일조량이 상대적으로 좋은 계절이었던 터라 전기요금을 거의 내지 않았다. 지붕이 받는 열을 패널이 막아줘 다락 온도가 6도나 내려가 집 안 온도가 시원해진 건 덤이다. 오븐에서 빵을 굽거나 세탁기, 식기세척기 등 에너지 소비가 많은 생활가전을 사용할 때도 큰 걱정이 없다. 해가 없는 밤에는 배터리에 저장한 전기를 쓰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월 25유로(약 3만5천원) 정도를 아끼는 수준이지만 나중에 전기차를 사고 집에서 만드는 전기로 충전을 하면 비용 절감 폭은 더 커진다.
독일의 겨울은 비가 자주 오고 흐린 날이 계속된다. ‘겨울에 태양광 발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냐’고 묻자 유시비아크는 “올해 여름에도 한동안 구름이 잔뜩 낀 날이 계속됐다”며 “그때도 집에서 필요한 전기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답했다.
독일은 연평균 하루 일조량이 2.5시간 수준으로 한국(4시간)에 비해 적다. 하지만 태양광 등 지속 가능한 에너지 확대를 통해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정치적 결단, 시민들에 대한 정책 지원을 바탕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중이다. 시민들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베를린, 함부르크, 니더작센 등 몇몇 주에서는 올해 1월부터 신축 건물엔 태양광 패널 설치를 의무화했다. 기존 건물도 지붕을 리모델링할 경우엔 패널을 설치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정책적 노력에 힘입어 올해 상반기 독일 전력 소비의 절반을 넘는 52.3%가 재생에너지로 충당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49.2%) 대비 3.1%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독일은 2030년까지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 수력 발전 등 재생에너지가 에너지 믹스의 80%를 차지하도록 할 계획이다.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은 최소 65%, 2040년까지 88%를 감축하겠다는 탈탄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독일은 지난 4월 마지막 핵발전소 폐쇄를 끝으로 탈핵 목표를 달성했다. 점진적으로 석탄 발전도 줄여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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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는 독일인 크리스티안 젠프트레벤의 집.
지붕에 패널을 22개나 설치한 브란덴부르크 주민 크리스티안 젠프트레벤은 친환경 에너지 마니아다. 3년 전 집 마당에 수영장을 만들고 이듬해 전기차까지 구입하면서 전기요금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지난해 7월 결국 태양광 패널과 저장시설, 차량 충전기까지 설치하기로 결심했다. 독일은 유럽연합(EU) 지침에 따라 1998년부터 전력판매시장을 자유화했다. 젠프트레벤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요금이 오르자 더 싼 전력공급업체를 찾아다녀야 했다. 부부와 아들 둘이 함께 사는 그의 집에선 매년 전기를 7천㎾h 사용했고 전기요금은 2천유로(약 284만원) 이상이 들었다. 태양광 패널 설치 뒤 전기요금은 연간 700유로(약 100만원)로 뚝 떨어졌다. 전기를 자체 생산해 생활용으로 쓰고, 자동차를 충전하며, 수영장 온도 조절을 위한 히트펌프(지열 등 외부 열에너지를 끌어와 온수 공급을 하는 장치)까지 돌리고도 전력이 남아 일부를 되판다. 히트펌프를 돌리면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도 난방을 할 수 있다. 독일 정부는 시민들의 히트펌프 구매 비용의 25%를 보조금으로 지원하며 설치를 독려하고 있다. 젠프트레벤은 “최근 몇년 무척 더워서 힘들었는데 에어컨을 부담 없이 틀 수 있어 삶의 질이 상당히 좋아졌다”며 “초기 비용이 들긴 하지만 환경보호에도 기여하고 향후 각종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에 살고 있는 크리스티안 젠프트레벤의 집 차고에 태양광 패널로 생산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저장장치(ESS)와 차량 충전기가 설치돼 있다.
유시비아크와 젠프트레벤 같은 시민들은 빠르게 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에 더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그로 인한 에너지 위기가 오히려 전환점이 됐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유럽 전역에 태양광 패널 판매·설치 사업을 하고 있는 한화큐셀 유럽법인의 임상순 전사기획팀장은 “최근 가정용 태양광 패널과 저장장치를 함께 설치하려고 상담을 요청하는 고객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며 “낮에는 패널로 에너지를 생산해 쓰고 밤에는 저장해놓은 전기를 쓰려는 자가소비 고객이 전체의 98%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베를린·브란덴부르크/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독일 베를린 특파원으로 현지에서 발로 뛰며 취재하고 있다. 유럽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한 뼘 더 깊이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