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7일(현지시각) 교황청에서 삼종기도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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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이 결혼은 남녀 간에 하는 것이란 기존 교리를 유지하면서도 결혼하려는 동성커플을 축복할 수 있게 허용했다. 교회가 성소수자(LGBTIQ+)를 포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뜻 깊은 정책 변화로 풀이되지만, ‘동성 결혼 금지’라는 교리 자체는 바뀌지 않은 한계도 명확하다.
교황청은 18일(현지시각) 축복의 의미를 밝혀 적은 신앙교리부의 선언문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을 발표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를 검토·승인·서명했다고 밝혔다. ‘축복의 사목적 의미’라는 부제가 붙은 8쪽 문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축복’이란 용어를 광범위하고 폭넓게 정의하며 신의 사랑과 자비를 구하는 이들에게 “사전에 도덕적으로 완벽할 것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 했다. 나아가 “교회는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막거나 금지해선 안 된다”면서 동성 커플의 축복 요청 역시 거부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교황청의 이런 입장은 결혼은 오직 남여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교리를 흔들 수 있다는 이유로 동성 커플 간 결합을 축복할 수 없다고 한 2021년의 입장을 바꾼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엔 트랜스젠더도 가톨릭 세례를 받고, 대부모·혼인의 증인이 될 수 있게 하는 신앙교리부 지침을 승인한 바 있다.
다만, 교황청은 결혼은 ‘남여가 맺는 평생의 결합’이라는 기존 교리를 바꾸진 않았다. 그에 따라 선언문은 교회가 행하는 혼인성사 등 예식과 동성커플에 대한 축복 행위를 연계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혼인성사처럼 보이는 의식 절차를 따르거나 결혼식에서 사용하는 의복을 입을 수 없게 했다.
성소수자들은 환영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미국 가톨릭 성소수자 연대 단체인 뉴웨이즈미니스트리 프란시스 디베르나르도 사무총장은 “이미 사목적으로 허용돼 왔던 동성애에 대한 축복을 공식 승인한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신의 사랑과 자비를 받기 위해 철저한 도덕적 분석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야기한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칠레의 동성애자 통합·해방을 위한 운동 단체의 인권 담당 라몬 고메즈는 결혼과는 분리된 ‘비의식적 축복’은 “모순적”이라며 “동성 커플이 이성 커플보다 열등하다는 신호를 다시 한 번 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북미에 기반을 둔 보수 성향 매체 라이프사이트 뉴스도 이 결정이 “죄스러운 관계를 축복할 수 없다는 가톨릭의 변함없는 가르침과 모순되게 성직자가 동성애 커플을 축복하도록 허용했다”라고 비판했다.
한국 내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일단 환영의 뜻을 밝혔다. 동성혼 법제화 운동을 하는 ‘모두의 결혼’의 이호림 활동가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종교적 배경을 가진 동성 부부들에게 종교 공동체의 환대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정치 등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적 태도와 환대가 늘어나고, 혼인 평등이 실현되는 길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지난 8일 기독교대한감리회로부터 ‘출교’를 선고받은 이동환 목사도 “가톨릭이 내딛은 용기 있는 한 걸음의 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앞선 10월 보수 성향 추기경에게 보낸 편지에서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이 혼인 의식과 혼동되지 않는 한 이들을 ‘축복’할 수 있다고 제안했고 신앙교리부가 이런 입장을 보다 구체화 해 이번 문서를 발표했다. 교황은 2021년 신앙교리부가 “신은 죄를 축복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교회가 동성 간 결합을 축복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힌 뒤 비난 여론이 들끓자 책임자를 해임한 뒤 재검토 작업을 벌여왔다.
노지원 채윤태 기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