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신앙교리부는 18일(현지시각) 동성 커플이 원한다면 가톨릭 사제가 이들에 대해 축복을 해도 된다는 내용을 담은 교리 선언문을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식 승인을 받아 발표했다. 사진은 2022년 12월2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발코니에서 군중들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 AFP 연합뉴스
로마 교황청이 가톨릭 사제들의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공식 승인하는 교리 문서를 18일(현지시각) 발표했다. 동성애를 금기시해온 가톨릭이 획기적인 전환의 발걸음을 디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세상에서 이미 보편적 인권으로 자리매김된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수적 종교에서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여전히 성소수자의 권리를 받아들이는 데 뒤처진 우리 사회와 종교계가 성찰의 계기로 삼을 일이다.
교황청 신앙교리부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승인 아래 발표한 ‘간청하는 믿음: 축복의 사목적 의미에 대하여’라는 선언문은 사제의 축복에서 누구도 배제돼선 안 된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선언문은 “축복을 요청하는 것은 인간이 처한 수많은 구체적 상황에서 초월과 자비, 신에게로 나아감에 열려 있다는 것”이라며 교리적, 도덕적 흠결을 이유로 축복에서조차 배제하는 엄격한 형식주의를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0월 트랜스젠더도 세례를 받을 수 있고 대부모가 될 수 있다는 신앙교리부 지침도 승인하는 등 변화를 예고했다.
이번 교황청 선언은 동성 결혼 자체를 인정하진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 사제의 축복은 결혼식과 같은 의례에서 행해져선 안 되고, 별개의 모임이나 만남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단서가 달렸다. 하지만 교계에선 사제의 축복을 승인하는 것만으로도 중대하고 극적인 변화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교황청은 동성 결합을 축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인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일부 개신교에서는 이미 교회에서 동성 결혼식을 올리게 하고 성소수자도 성직자에 임명하는 등 더욱 진일보한 교파들도 있다. 성소수자 문제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가톨릭도 이제 변화를 시작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런 세계적 흐름에 비춰 보면 우리 사회의 현실은 너무나 뒤처져 있다. 지난 8일 이동환 목사는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 성소수자 축복식을 집례했다는 이유로 교회 재판에서 출교 선고를 받았다.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금지한 교회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지난달에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6월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 행사를 방해한 혐의로 고소당하는 일도 있었다. 성소수자들이 여전히 혐오에 노출돼 있는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종교에서든 세속에서든 모든 차별은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