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수백만명의 반대 시위를 촉발시킨 ‘최초고용계약’ 조항을 대체할 입법을 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뒤 이 법안을 주도했던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가 사태에 대한 유감의 뜻을 밝히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파리/AFP 연합
신자유주의 물결 제지… 청년실업 문제 등 놓고 논란 다시 일듯
프랑스 ‘최초 고용 계약제’ 철회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으로 학생과 노조의 큰 반발을 사온 최초고용계약제(CPE)가 10일 사실상 철회됨에 따라, 프랑스 사회는 향후 사회 정책의 큰 방향을 놓고 또다시 논란에 휘말릴 전망이다.
우선 이번 최초고용계약제 철회가 노조와 학생 등 프랑스 사회의 주요 사회세력이 집단적 저항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의 정치적 야심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 프랑스 우파 정부의 고용유연화 정책이 후퇴한 데는 전례 없는 학생과 노조의 연대와 야당의 지지, 국민들의 동조가 있었다. 지난 2월7일 첫 시위 이후 늘기 시작한 시위대는 지난달 28일과 지난 4일 전국 200여개 도시에서 100만~300만명의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다. 이번 시위 규모는 68운동 이후 최대 규모였다. 이런 ‘피플 파워’가 강경 일변도의 드빌팽 총리로부터 끝내 항복을 받아낸 것이다.
애초 대학생과 고등학생 시위로 시작된 반대시위가 폭발적 양상으로 전개된 것은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된 신규고용계약(CNE)에 이은 이번 최초고용계약제가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인식이 뒤늦게 확산됐기 때문이다. 즉 우파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의 일환이라는 문제의식에 12개 노조세력이 공감해, 과거 분열과 반목을 떨치고 동조시위에 나섰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년 대선을 의식한 야당들도 가세해 힘을 실었다. 이런 고무된 분위기 속에 승기를 잡은 학생과 노동계는 오는 15일까지 전면철폐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낼 수 있었다.
이번 시위는 또 1994년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의 청년 최저임금제 개혁과 95년 세금·의료비 인상 등을 담은 ‘연금개혁’(쥐페법안)을 좌절시킨 전례를 닮았다. 프랑스에서 학생과 노조가 연대투쟁에 나서는 경우 우파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좌절된다는 공식을 확인해 준 셈이다.
그러나 이번 승리가 20명 이하 사업장에 대한 자유로운 해고를 허용한 신규고용계약 철폐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는 이번 반대시위가 갖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번 최초고용계약제 도입 시도의 명분이 됐던 청년실업 등 프랑스의 악화된 고용사정을 어떤 식으로 해결해 나갈지는 남은 숙제이다.
정치적으로도 최초고용계약제 철회는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세력 판도에 큰 변화를 예고한다. 시라크 대통령의 강력한 후원 속에 내년 대선후보를 노리고 강력한 실업대책을 내놓았던 드빌팽 총리는 큰 좌절을 맛봄으로써, 강력한 경쟁자인 대중운동연합 총재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에게 열세에 몰리게 됐다.
최초고용계약제의 수혜자인 경제계마저도 대규모 시위가 프랑스 경제 이미지를 악화시킨다며 철회를 요구한 상황이다. 우파신문인 <르피가로>까지 사설에서 “모욕적인 위기의 신속한 종결”을 요구했다. 시라크 대통령도 대체라는 용어를 쓰기는 했지만 사실상 타협과 철회를 요구한 사르코지 쪽의 중재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드빌팽 총리로선 향후 정치적 행보에 대한 고민의 폭이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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