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회당은 어디로 갔나? 프랑스 제5공화국 사상 최초의 좌파정권을 출범시켰던 제1야당 사회당은 두 달 넘게 프랑스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최초고용계약제(CPE) 반대 시위사태에서 대안세력으로서 위상을 보이지 못했다.
지난 4일 파리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 현장에 나온 사회당 당원들의 얼굴에도 그렇게 쓰여있었다. 마지못해 나온 듯, 다른 시위대와는 달리 열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바스티유광장 근처에서 모인 파리시당 당원 500여명 뒤쪽으로 떠있던 사회당의 바람 빠진 애드벌룬은 사회당의 오늘을 상징하는 듯했다.
이번 시위에는 지난 2003년 연금개혁 연금개혁 반대투쟁의 실패를 경험한 노조의 참여도 늦었지만, 법안의 의회통과를 사실상 방관했던 사회당의 참여는 더 늦었다. 3월14일 위헌소송을 제기한 뒤 3월말에야 거리시위에 참여했다. 학생-노조의 연대로 반대진영의 승리 분위기가 높아진 뒤에야 거리에 나섰다. 하지만 사회당의 유력 대선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세골렌 루아얄(52)이 시위대와 어깨를 맞댄 장면은 볼 수 없었다.
법안통과 사실상 방관한 채 뒤늦게 시위 참가
“우파와 논리 같아” 좌파 지지도 오히려 줄어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파리 10대학 학생운동조정위의 한 학생(정치사회학과 2학년)은 “사회당은 우리들과 노동자들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우파와 같은 논리를 편다”며 “현재의 사회당은 지도자도 없고 정부여당에 반대할 진정한 힘도 없다”고 극도의 실망감을 드러냈다.
지난 5~6일 여론조사기관 CSA가 실시한 여론조사는 국민들의 이런 정서를 그대로 보여줬다. ‘이번 시위로 입지가 강화됐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서 사회당은 53%에 그쳐, 이번 시위를 주도한 학생(67%), 노조(60%)에 뒤졌다. 사회당이 드빌팽 총리의 무리수로 어부지리를 얻은 집권 대중운동연합 총재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과 똑같은 53%를 기록한 것도 우연치곤 공교롭다.
그렇다보니 내년 대선과 관련해 좌파 후보에 거는 프랑스 국민들의 기대는 줄곧 높았지만(표), 정작 시위 기간 내내 좌파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오히려 줄어드는 기현상을 보였다. 사회당은 사르코지 내무장관 등 우파후보에 맞설 변변한 후보조차 없다가 올해 초 신선한 이미지의 여성후보 루아얄이 급부상했는데도, 정작 시위 사태 동안에는 좌파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줄어든 것이다.
제도권 좌파정당인 사회당과 공산당은 우파의 곤경을 즐기는 ‘방관자’로 비친다. 이들은 11일 최초고용계약제 대체입법을 논의하는 국회 사회분야 상임위 토론에도 불참했다. 16~25살 비숙련 노동자의 취업시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한 대체법안은 12일 하원(총 577석 중 우파 393석)에서 다수 의원의 불참 속에 찬성 151표, 반대 93표로 통과됐다. 대체법안 협상도 여당과 노조 간에 이뤄졌고, 사회당 등 야당은 배제됐다.
‘2007년 대선에서 어느쪽 후보가 당선됐으면 좋겠나요?’
내년 대선의 최대쟁점이 될 실업대책에서 사회당은 아직 변변한 대안이 없다. 알랭 베르구니우 사회당정책연구소장은 “지난해 11월 전당대회에서 결정한 대로 오는 6월 대선정책을 내놓을 예정”이라며 “서둘러 정책을 내놓을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2002년 대선에서 처음으로 결선투표에 나서지 못한 데 이어 지난 총선에서도 참패한 사회당은 여전히 ‘패배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당이 고려하는 경제정책과 노동정책도 신자유주의를 수용했다가 실패한 사민주의, 이른바 ‘사민자유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 좌파 지식인은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제1서기장에게 ‘집권하게되면 우파의 정책을 다 뜯어고칠 것이냐’고 묻는다면 ‘뭐, 폐기하는 것은 아니고 잘 해보겠다’라는 정도의 대답만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올랑드의 부인인 대선후보 루아얄은 공개적으로 ‘제3의 길’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회당은 최초고용계약제 사태로 우파정권이 지리멸렬해진 황금 같은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은 않고 있다. 우파 정부의 실정이라는 반사이익에만 기대는 형국이라는 게 정치평론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루아얄의 개인적 인기만이 사회당의 희망으로 부상한 상황이다.
좌우의 정책적 대립구도는 이미 지난 2002년 대선에서 깨졌다. 당시 사회당 후보로 출마했던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내놓기는커녕,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우파와 비슷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다가 극우파 장마리 르펜에게도 뒤져 결선투표에서 탈락했다. 이런 결과는 사회당이 프랑스의 좌파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을 뿐이다. 내년 대선에서도 극우파 르펜과 극좌후보들의 약진이 예상되면서, 정당 대결보다는 보수여당과 사회당 후보 간의 개인적 인기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루아얄은 극좌쪽으로 기우는 좌파 지지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포퓰리스트적 공약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런 공약은 프랑스 사회의 고실업률 등 경제적 고질병에 대한 처방은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안 없이 흔들리는 사회당의 모습은 현실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된 뒤 대안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유럽 사민주의 정당들의 공통의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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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구니우 사회당 정책연구소장 인터뷰 “정책 너무 일찍 내놓으면 손해 대선 결과는 우파 실수에 달려”
유럽의 사민주의는 현실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된 뒤 헤매고 있는 유럽사민주의 정당들의 고민을 그대로 안고 있다. 궁지에 몰린 집권여당을 몰아세우고 대안을 내놓기 보다는 내년 4월 대선을 위한 정치적 계산을 하기 바빴다. 최초고용계약제를 둘러싸고 긴박하게 돌아가던 바깥 모습과는 달리 지난 6일 오후 파리 앵발리드 근처 사회당 중앙당사는 너무나 ‘조용’했다. 알랭 베르구니우 사회당 정책연구소장은 현재 사회당의 처한 상황과 고민에 대해 의외로 솔직하게 털어놨다.
- 최초고용계약 사태에서 제1야당으로서 사회당은 대안 제시는 고사하고 역할 자체가 미미하다.
= 사회당의 주된 역할은 국회에 있다. 상·하원을 통해 여당의 정책을 비판하고 표결에서 우리의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노조나 학생들의 운동을 지원한다. 지금 현재로선 올 6월에 공개될 정책을 준비중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임금 노동자들의 직업 연수 보호장치 및 취업의 안정성 보장을 위한 실현 가능한 정책을 준비중이다. 왜냐하면 현 우파정권의 지속적인 고용유연성만을 강조하는 정책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기업이 필요한 유용성과 임금노동자의 안정성을 함께 추구할 다른 대안을 모색중이다.
또한 임시직 노동계약을 축소하고 장기고용계약(CDI)의 시각에서 해고 이후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수입이 수입이 보장되도록 공공기관에 투입한다든가 하는 대비책을 마련중이다. 덴마크나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참고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인 두 큰 흐름인 미국식의 자유시장경제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형태 중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덴마크식 유연안정성을 고려한 고용정책 모색중”
- 현재 프랑스에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나라의 필요가 아니라 사회당의 필요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인가?
= 이런 시간표는 지난해 11월 전당대회에서 결정된 것이다. 올 6월에 정책을 결정하고, 올 11월에 후보를 지명한 뒤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 제1 야당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 어쩔 수 없다. 우리는 현재 힘이 없다. 현재 집권당은 우파다. 정책을 내세운들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정책을 내세우는 것은 전혀 불필요하다. 또 정책을 너무 일찍 내놓았을 경우, 정책이 소모될 수 있다. 우리는 몇달전까지 준비하고 발표해 일종의 기습적인 효과를 거둘 것이다.
“사회당은 세계화 추세를 거부하지 않는다”
- 유연안정성을 노린 사회당의 정책은 이른바 실패한 ‘사회자유주의’ 정책 아닌가? 2002년에도 그 때문에 선거에서 지지 않았나?
= 사회당은 세계화를 거부하지 않는다. 현재로서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다. 문제는 새로운 방법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높은 수준의 사회정책을 유지하면서 경제적 경쟁력을 어떻게 지키고 효율성을 어떻게 창출하는가의 문제이다.
사회민주주의의 논리하에서 시장의 효율성은 추구하되 모든 이윤이 다시 시장으로 환원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주도하고 노동자와 노조가 기업과 자본의 힘과 논리에 맞서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산주의적 논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을 경제논리에 맡기는것이 아니라 현재 처해있는 상황을 직시하고 지금과 내일의 문제에 맞서 나아가자는 것이다.
- 사회당의 유력한 대선후보 중 한사람인 세골렌 루아얄의 경우, 영국식 대처주의나 블레어 총리의 ‘제3의 길’에 대해 공개적으로 호감을 보이고 있다.
= 루아얄은 효율적인 부분을 이야기한 것이지 사회당이 영국의 정책 전반을 답습하자는 뜻은 아니다.
- 북유럽 모델을 취한다고 했는데, 북유럽과는 사회구조, 시장규모, 고용보장 수준이 다른데 어떻게 접목한다는 말인가?
= 각나라가 특성이 있고 다르지만 전제하는 추구하는 근본 논리는 같다. 덴마크는 노조나 사회연대가 주도하고, 프랑스는 국가가 주도한다는 차이다.
“선거는 상대방 실수로 결판나곤 한다”
- 사회당이 덴마크 모델에서 관심을 갖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
= 현대적인 경쟁력 있는 기업을 만들면서 임금노동자들이 해고 때나 이직때 그들을 어떻게 개별적으로 관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해직시 공공기업에서 구제한다든가 직업교육으로 전환한다든가 등등 각 나라마다 형태는 방식은 다르지만 정책의 논리는 같다. 고용정책에서는 모든 정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당은 성장을 주도하고 다시 기업에 투자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직업 교육과 연구에 투자하는 등등 이런 조화된 정책을 제시할 것이다.
- 마틴 오브리법으로 불리는 35시간의 성과는 어덯게 평가하는가?
= 지난 사회당 정부는 성장과 신규 고용 창출에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공공부분에 고용을 창출했고 35시간제를 이루었다. 경제전문가들은 1998~2002년 2백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35만~40만개의 일자리에서 노동시간 감축이 이루어졌다. 이런 정책은 기업과의 협의에서 이루어졌으며 더 높은 고용유연성을 창출했고, 그러면서도 생산성은 내려가지 않았다. 프랑스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유럽에서 아주 높은 편이다.
- 2백만개의 일자리가 대부분 임시직 또는 기간직 아닌가?
= 1998~2002년까지는 사회당정부는 힘이 약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장기고용계약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여당이 죽을 쑤고 있으니, 확실한 대안만 내어놓는다면 사회당의 지지도를 올릴 기회가 아닌가?
= 어렵다. 프랑스의 여론은 민감하다. 프랑스 국민들은 늘 의심에 익숙해 있다. 왜냐하면 실제로 지난 20년간 실업률은 늘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당이 아무리 좋은 대안을 내놓아도 그것이 바로 자동적으로 지지도에 반영된다고 볼 수 없다. 여론에는 늘 강한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당 내부에서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선거의 경우 늘 어떤 정책에 우호적이어서라기보다 상대방의 실수에 따라서 결판나곤 한다. 아마도 2007년의 대선은 여권이 이번 위기를 얼마나 더 약해지는가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우파가 이번 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 즉 사르코지-드빌팽-시라크가 자신들의 연합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정치는 상호작용이다. 자신이 잘해서라기보다 상대의 실수에 의해 승패가 결정나는 것이 선거이다. 따라서 현재로서 내년선거는 좌파보다 우파에 달려있다.
“프랑스는 과도기적 단계”
- 너무 기회주의적이지 않는가?
= 아니다. 현재 프랑스는 과도기적인 단계에 와있다. 전통과의 단절이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세계화의 전환점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불안한 시기이고 개선할 점을 찾아야할 시기이다. 이는 좌파건 우파건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리고 프랑스는 지난 20여년동안 어떤 한쪽도 두차례 연이어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이는 프랑스사회가 가진 불안정성과 함께 국정운영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정책을 가져오면서 기존에 존재하는 사회적으로 중요시되는 부분을 어떻게 건드리지 않고 남겨둘 것인가라는 어려움이 있다.
- 사회당은 지난해말 방화소요사태를 벌인 소외지역의 실업문제와 전체 청년실업 문제를 분리해서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 아니면 같은 관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
= 현 정부의 가장 큰 실수는 두 문제를 함께 바라보았다는 데에 있다. 상황은 엄연히 너무나 다르다. 이민자 젊은이들과 학위를 가진 젊은이들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정부의 실수로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불안을 가져오고 말았다. 우리는 두 집단을 하나로 바라보지 않는다. 학위가 없는 젊은이들은 직업 교육부터 시작해 계약직으로 나아가게 하고, 학위가 있는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 낭테르 10대학 학생을 만났더니, 학위가 있어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는 데 7~8년이 걸린다고 한탄하더라….
= 사실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 위해선 학위도 있어야 하고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 내가 알기는 그 기간이 짧다. 장기계약을 맺기까지 1년에서 2~3년, 물론 더 길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기간엔 걱정과 불안이 뒤다르게 되는데, 불안해 하지 않도록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장기계약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 현재 많은 학생들이 졸업 직후 바로 장기계약으로 가는 경우는 엄연히 존재한다. 현 정부에서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불안을 야기시킨 것도 사실이다. 정부는 정치적 실수를 저질렀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다보면 정부지출도 늘어나게 되고, 유럽 연합 재정적자 기준인 국내총생산 3%선 마지노선을 맞추기 어려울텐데….
= 오늘날의 경제정책에서 신자유주의를 거부할 경우 어떤 정부나 어렵다. 공공부문과 사기업부문의 균형과 노동시장과 고용안정 모두를 취하려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는 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처한 문제이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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