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에 의한 고용불안은 전지국적 현상이다. 프랑스의 밀어붙이기식 고용정책의 좌초는 비정규직 법안을 두고 비슷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에게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한겨레 자료사진
신자유주의의 새 격전장
고용정책 새틀 짜는 반면교사로
고용정책 새틀 짜는 반면교사로
프랑스의 최초고용계약제(CPE)를 둘러싼 논쟁과 우리나라의 비정규직보호법안, 특히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둘러싼 논쟁은 여러 면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면 일자리를 늘리고 실업을 줄일 수 있다’는 정부·여당의 논리와 ‘노동시장 유연화는 비정규직만 양산해 고용불안을 가속화한다’는 학생·노조의 주장이 대치하는 구도는 프랑스는 물론 한국에서도 이어진다. 고용보호 수준 등 두 나라 노동환경에 큰 차이가 있지만, 신자유주의적 공세와 그에 맞선 사회운동이라는 양상도 비슷하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등이 ‘프랑스판 비정규직법안’이라며 이번 사태를 예의 주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최초고용계약제 사태는 특히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연대와 사회운동의 중요성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한국 등에도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의 저항으로 시작된 최초고용계약제 반대운동은 다양한 정치지향성으로 분열하고 반목해온 프랑스내 12개 노조의 전례없는 동참으로 이어졌다.
법안 밀어붙이기·노조 기득권 한국과 닮은꼴
고용불안 없앨 사회안전망 확충해야
학생-노조가 오랜만에 연대하면서 여론의 지지 속에 법안의 철회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사회적 대화를 소흘히한 프랑스 우파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행태도 국민 여론을 돌려놓았다.
그러나 이런 저항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일시적으로 좌절시키거나 지체시킨 것일 뿐, 신자유주의적 흐름의 물줄기를 바꾸지는 못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런 지적을 하는 이들은 프랑스 노조-학생의 저항이 공세적 반격이 아니라, 과거 노동운동 등에서 확보한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세적 대응에 머물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노조와 학생을 포함한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선 최초고용계약제 철회라는 목표 이상에 대해선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일 우파 정부의 항복선언과 함께 노학연대의 틀도 깨졌다. 이 때문에 최초고용계약제의 전례가 된 신규고용계약제(CNE)의 철회 등 반신자유주의 추가투쟁의 전망은 극히 불투명하다. 프랑스민주노조연맹(CFDT)과 쉬드(SUD)연대노조, 그리고 대학 점거농성을 계속하는 일부 대학생들은 2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서 자유로운 해고를 보장한 신규고용계약제도 함께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과 일부 노조는 이런 투장에서 이미 물러나 있다. 공공부문과 대공장 노동자들 위주인 프랑스 노조들에 대해선, 기존 조합원들의 이익 지키기에만 충실한 개량주의적·기회주의적 집단일 뿐 자신들의 기득권을 떼어내 젊은이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는 비판이 일찍부터 있었다.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의 도입을 요구하는 압박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경영개발원(IMD) 등 주요 국제기관과 경영계는 끊임없이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한 조처를 요구해 오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이번에 도입이 좌절된 최초고용계약제 외에도 지난 1994년 이후 26살 이하 젊은이들에게 해당되는 6가지 형태의 고용계약이 새로 만들어졌다. 범위를 젊은이들 외에 노동자 전체로 넓히면 지난 20여년 동안 ‘임시직 계약을 위한 임시고용계약’(CDD) 등 모두 30여가지의 다양한 고용계약이 도입돼 시행되고 있다. 종신계약에 해당하는 장기고용계약(CDI)만 존재하던 프랑스 노동시장에서도 지난 20여년간 노동유연화를 위한 조처들이 확대돼온 셈이다. 그럼에도, 실업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프랑스에서도 덴마크모델 등 북유럽모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좌우파 경제학자들은 경제규모나 고용보장 등 사회경제적 조건의 차이 때문에 프랑스가 덴마크식 모델을 그대로 도입하는 데는 문제가 많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경제개발협력기구 고용노동사회위원회(ELSAC)의 고용분석정책과 수석행정관인 레이먼드 토레스도 “덴마크는 경제규모도 작고 노조결성률이 80%로 높아 유연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사회적 합의가 전제될 수 있었다”며 “참고할 수는 있지만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이 덴마크모델을 수용하는 데 대해, “한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고용보호가 된 정규직과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간의 차이가 크다”며 “모델의 장점을 도입하기 앞서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이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권고했다.
한국의 비정규직보호법안에 대해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과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최근 각각 따로 낸 연구보고서를 통해,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4월중 처리하기로 한 비정규직보호법안의 차별 개선 및 고용불안 해소 효과가 미미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 없이 섣부르게 법안을 추진할 경우, 고용 불안이 사회 해체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이와 함께 프랑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노·사·정 합의 등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도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파리/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고용불안 없앨 사회안전망 확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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