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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경제선진국 한·중·일 공존 불안…유럽식 안보에 관심을”

등록 2015-05-25 21:49수정 2015-05-26 00:32

미콜라 쿨리니치 우크라이나 외교아카데미 총장이 지난달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한반도 비핵화와 햇볕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콜라 쿨리니치 우크라이나 외교아카데미 총장이 지난달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한반도 비핵화와 햇볕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 우크라이나 외교아카데미 미콜라 쿨리니치 총장 인터뷰
“푸틴 러시아 제국 재건하려고 해
우크라이나 비동맹외교도 휘둘려
스스로 힘 기를 수밖에 없어”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다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내전으로 빨려들어간 우크라이나 분쟁의 원인을 우크라이나 외교 전문가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우크라이나 외교아카데미의 미콜라 쿨리니치 총장은 “냉전 이후 우크라이나는 중립화 정책을 취하려 했으나 러시아가 경제적 영향력을 이용해 우리의 비동맹 외교를 자국에 유리하게 활용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러시아의 푸틴 정부가 ‘제국주의적 태도’를 유지하는 한 우크라이나-러시아의 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는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친서방과 친러시아로 양분된 이 나라 여론 지형에서 유럽에서 해법을 찾으려는 쪽의 견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쿨리니치 총장은 주한 우크라이나대사관 참사관(2001~2003년)과 주일 우크라이나 대사(2007~2012)를 역임해 동북아시아 사정에 밝은 외교관이다. 지난달 28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그를 만나 우크라이나 동부 내전 등 이 나라의 외교·안보에 대한 분석과 함께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구상에 대한 의견도 들었다.

-우크라이나 동부(돈바스) 지역은 역사적,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관계가 깊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가 그 지역의 러시아인들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하는데?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인’을 정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첫째 러시아어를 말하는 주민이다. 우크라이나인들도 러시아어를 말한다. 둘째, 혈통적 러시아인이다. 러시아 혈통의 주민들도 대부분 우크라이나 국민이며, 우크라이나의 법과 제도와 군대와 경찰이 보호한다. 내 어머니도 러시아 혈통이며 러시아어를 말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이다. ‘러시아인을 보호한다’는 논리는 매우 교묘한 속임수다.”

-러시아계 주민들도 스스로 우크라이나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나?

“우크라이나는 24년전 재건된 독립국이다. 중세 키예프 루스 때는 주민들이 모두 같은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지금의 러시아는 당시 모스코비아였다. 키예프 루스는 1000년 가까이 지속했지만,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땅이 아니었다. 인종적으로도 가깝지 않다.” (키예프 루스= 키예프 공국이라고도 하며, 오늘날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뿌리가 된 중세 국가-편집자)

-그렇다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개입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푸틴은 소비에트연방의 붕괴가 러시아인들에게 최대의 비극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제국이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같은 작은 나라들로 쪼개졌다. 푸틴은 이런 나라들을 경제적, 이념적, 정치적으로 재통합한 세계적 강국을 재건하고 싶어한다.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일극체제가 부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푸틴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지지율도 매우 높다.”

-푸틴의 야망과 러시아 민족주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건가? 러시아 정책에 진정한 변화가 온다면 우크라이나의 안보 상황은 나아질 것 같나?

“넓은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본성에 관한 흥미로운 질문이다. 1991년 소련이 무너졌을 때, 러시아도 민주주의, 탄탄한 경제, 국제질서를 존중하는 나라가 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옐친은 민주주의 법령을 수용했다. 불행히도 1990년말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쳤고, 그 때 푸틴이 러시아 정체성을 내세운 지도자로 등장했다. 그는 너무 많은 민주주의와 개혁이 문제이며, 서방이 ‘민주주의’를 러시아를 흔드는 지렛대로 쓴다고 생각했다. 참된 민족주의는 자기 민족국가에 기여하고 민족적 정체성을 신뢰하면서도 다른 나라를 존중하는 것이다. 반면, 내 나라가 최고라며 다른 나라를 차별하거나 자국에 복속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쇼비니즘이다. 지금 러시아가 그렇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꽤 긍정적이었다. 한국은 이웃나라들을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왔고, 그러므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한국이 강대국이어서가 아니다. 한국은 군사적 강대국이었던 적이 없다. 그보다는 한국이 좋은 이웃이고 경제적 기적을 이뤘다는 걸 보여주었다. 한국은 (군사력이 아니라) 경제 건설로 나라를 강하게 만들었다.”

-푸틴의 국내외 정책이 쇼비니즘과 제국주의에 기반한다는 건가?

“현재 러시아 전체인구 중에서 러시아 혈통, 러시아 언어, 러시아 정교, 백인, 유럽인의 조건을 모두 갖춘 진짜 러시아인은 러시아연방 안에서도 소수다. 그래서 러시아는 사활적으로 제국주의 체제를 형성하고 유지하려 한다. 생각해보라. 러시아연방 전체 인구의 16%만이 우랄산맥 서쪽의 유럽 지역에 살고, 나머지는 광대한 영토에 흩어져 있다. 그걸 어떻게 관리하나? 오직 강력한 중앙집중 권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게 대제국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이다.”

-최근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반발을 무릅쓰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가입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했다. 하지만 체코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중립화가 바람직하다고 제안했고, 독일과 프랑스도 부정적인 시각을 밝혔는데?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유럽연합 일부다. 우리도 높은 수준의 삶의 질과 민주주의, 경제발전을 원한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집단방위로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다. 1991년 독립 직후 우크라이나에서도 핀란드 방식의 중립을 적용하자는 구상과 유럽연합 및 나토에 가입하자는 의견이 대립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인 다수는 유럽을 원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나토 비가입을 조건으로 주권과 독립을 인정하겠다고 제안했다. 1997년엔 두 나라가 친선우호협정도 맺었다. 또 2010년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비동맹’을 외교정책의 기본으로 삼으면서 실질적으로 ‘핀란드화’가 됐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나? 비동맹의 결과가 어땠나? 러시아는 경제위기를 맞은 우크라이나에 원조를 미끼로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우크라이나의 비동맹 외교 원칙을 자국에 유리하게 활용하려 했다. 야누코비치는 유럽연합과 진행하던 경제협상을 갑자기 중단하고 러시아와의 협력 쪽으로 바꿨다. 마이단 시위가 일어난 계기다. 우크라이나 중립의 역설이다.”

-우크라이나가 최대의 안보 위협인 러시아의 군사적, 정치적 개입에서 벗어날 실질적 수단이 있나?

“우리 스스로의 힘에 의지해야 한다. 약간의 방어용 무기를 제외하고는 외국의 군사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어느 나라도 나서서 우크라이나를 보호해주지는 않는다. 우크라이나 군은 1년 전에 완전히 파괴돼, 군을 재건해야 한다. 많은 시민이 비정규 민병대에 자원하고, 많은 시민이 돈을 기부한다. 1997년 한국이 금융위기를 맞았을 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금모으기 운동을 한 것과도 비슷하다. 러시아군은 대군인 반면, 우리는 무기와 돈이 절대 부족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국제사회의 정치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서방의 대러 경제 제재도 매우 좋은 수단이다. 러시아 경제가 파괴되길 원하는 건 아니다. 러시아 경제의 파탄은 주변국에게도 재앙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다른 나라에 무력으로 개입하고 영토를 합병한 값을 치러야 한다.”

-한국과 일본에서 9년이나 외교관으로 있으면서 한반도 문제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협력과 공존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본 게 있나?

“2005년 일본에 있을 때 동아시아 안보에 관한 글을 쓴 팸플릿을 펴낸 적이 있다. 유럽식의 안보 시스템, 이를테면 헬싱키 프로세스를 적용하자는 것이었다. 한국, 중국, 일본 모두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들이다. 경제선진국 중 외교안보 관계의 안정성이 취약한 마지막 나라들이기도 하다. 세 나라 모두 나름의 내부 문제들이 있고 이웃나라와 관계도 마찬가지다. ‘지역 안보’에 대한 생각도 서로 다르다. 그런 나라들의 안보 협력은 하나의 공통된 목적에서 시작해야 한다. 한반도의 안정이 그것이다. 동북아 안보는 남·북한의 분단 상황이 가장 큰 문제다. 특히 북한의 핵문제는 최대의 위협이다.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는 냉전체제의 마지막 상징물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한 나라들이 있는 지역에 비무장지대가 있는 건 전혀 어울리지 않고 부자연스럽다. 6자회담은 한반도를 비핵화하고 집단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요람이다. 오늘날 중국과 러시아도 여러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경제적 불평등, 소수민족 문제, 공산주의 경제정책의 한계 등이다. 러시아의 가스, 광물 등 천연자원은 진짜 경제가 아니고 지속가능 하지 않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무한정 지원할 수 없고, 머잖아 국내 문제들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는 좋은 기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같은 접근이 한반도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기회다. 햇볕정책은 대단히 생산적이었고, 남북한 화해를 이끌어냈다. 한반도 안보 시스템의 좋은 출발은 한·중·일 세 나라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

키예프/글·사진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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