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사건·사고 현장을 누볐던 <한겨레> 사진기자들이 한해를 마감하며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은 사진을 꼽아 봤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팍팍한 우리 현실탓인지 ‘무거운 사진’이 많습니다. ‘유쾌발랄’한 모습이 많이 보이는 2016년을 기대하며 ‘2015년 나의 사진’을 11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마지막은 김성광 기자가 꼽은 사진입니다.
⑪ 이들의 간절한 기도를, 신이여 들으소서!
세르비아 난민열차 11월27일 새벽 3시께 크로아티아 국경과 인접한 세르비아 시드역에 난민 열차가 다다를 무렵,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시리아에서 탈출한 난민 어린이들이 객실 바닥이나 의자 또는 객실 밖 화장실 옆에 누워 잠자고 있었다. 화장실의 분뇨 냄새와 열차 바닥에 뒤엉킨 진흙과 먼지, 발칸의 차가운 겨울바람이 서쪽으로 향하는 어린이들을 괴롭혔다. 언제까지 어린이들이 난민 신세로 차가운 열차 바닥에 뒤엉킨 진흙과 먼지를 깔고 누워 이동해야 하는 걸까. 발칸반도의 겨울바람은 갈수록 차가워지고 있다. 시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르비아 난민열차 세르비아어 및 아랍어 통역자가 없어 인터뷰가 쉽지 않았고 일은 더뎠다. 결국, 사회부 김규남 기자와 헤어져 각자 취재를 하기로 했다. 난민에게 잔인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불가리아 경찰로부터 도망쳐 온 난민들이 몰려있는 세르비아 남쪽의 국경도시 디미트로브그라드까지 택시로 2시간가량 걸려 도착했다. 오후 5시 반 크로아티아로 향하는 난민열차를 타고 취재를 하려면 1시간 내에 모든 취재를 마쳐야 했다.
디미트로브그라드 난민등록소 앞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난민 시자프(가명·37)는 지난해 2월 아들 사이르(가명·12)가 납치됐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납치범들에게 2만 5000달러(2800여만 원)를 주고 45일 만에 아들을 찾았다. 아프간에는 10여 년 전부터 어린이 유괴 사건이 급증했고 현재 매우 빈번하다.”라며 미국의 아프간 내정 개입을 납치사건 급증 이유로 꼽았다. 미국이 아프간에 개입하면서 경제가 어려워졌고,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할 때 이 나라 경제가 완전히 붕괴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또 돈의 흐름이 끊긴 아프간 경제 상황에서 어린이 유괴로 돈을 요구하는 방법 외에는 돈 구경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의 안전과 미래를 위해 브로커에게 1만 8000달러(2000여만 원)를 건넨 뒤 고향을 탈출했다.
시간 안에 취재를 마쳤지만 발칸반도의 해가 일찍 떨어져 택시 운전사는 서행을 했다. 양손을 부여잡고 기차를 놓치지 않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했지만, 결국 기차 출발 예정시각을 15분 지나 프레세보 기차역에 되돌아왔다. 늦었지만 기차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은 내 간절한 기도에 응답했고 이들의 고단한 여정을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게 허락했다. 그들의 지친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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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현장의 어머니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 박성복 군의 어머니 권남희씨가 4월15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사고 해역에서 사고지점을 바라보고 있다. 진도/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참사 현장의 어머니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박성복 군의 가족을 1년 9개월 가까이 만났다. 어머니 권남희씨는 그사이 10년을 산 사람처럼 얼굴이 변했고, 아버지 박창국 씨는 몸무게가 10㎏ 이상 빠져 광대가 도드라졌다. 아들을 먼저 보낸 고통과 마주한 부모 앞에서 차마 울 수 없어 푼수처럼 웃으려 애썼다. 하지만, 헤어지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세월호 청문회’ 둘째 날인 12월15일은 성복이 생일이었다. 권남희씨가 서울 명동 와이더블유씨에이 청문회장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다음날 신문을 통해 봤다. 답답했고 눈물이 났다. 세월호 참사는 성복이 가족 마음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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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지뢰 피해자 이경옥 민간인 지뢰 피해자 이경옥씨가 8월28일 오전 인천 남동구 브레덤기념병원에서 이 병원 진료센터장인 김성환 지뢰피해자 장해등급판정 실무위원회 위원으로부터 진료를 받고 있다. 인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민간인 지뢰 피해자 이경옥 지난 4월 강원도 철원군 민간인통제구역에서 열린 평화나무심기행사에서 민간인 지뢰 피해자를 만났다. 명목임금으로 계산된 60여만 원의 위로금이 전부라는 지뢰 피해자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그들의 잘린 다리를 힐끗 쳐다봤다. 60여만 원짜리 다리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한기호 의원실에 부탁해 국방부가 발표한 자료를 수차례 확인했다. 그리고 취재원을 찾아 헤맸다. 아무도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4개월을 보낸 뒤 민간인 지뢰 피해자 이경옥 목사를 만날 수 있었다. 민간인 지뢰 피해자들은 문제 많은 특별법 개정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들의 분투를 계속해서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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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