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그의 신생 정당이 총선에서 압승한 배경에는 프랑스인들의 누적된 불만이 있다. 경제 상황에 대한 불만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유럽 2위 경제대국 프랑스의 실업률은 2013년 10%를 넘어선 이래 4년 내리 한 자릿수대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전체 실업률보다 심각한 것은 넷 중 하나꼴인 청년 실업이다. 유럽 전체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뒤이은 유럽 재정위기를 겪었지만 프랑스의 회복 속도는 더 느리다. 지난해 유럽연합(EU) 28개국의 평균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9%까지 회복됐는데 프랑스 경제는 1.2% 성장에 그쳤다. 유럽연합의 양대 축을 구성하는 독일의 지난해 전체 실업률은 4.1%, 청년 실업률은 7.0%다. 함께 유럽연합과 유로존을 이끌어가는 독일과의 격차가 더 벌어지는 현실도 프랑스인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대표 증시 지수 상승률이 프랑스는 3.8%에 그친 데 비해 미국은 9.0%, 영국은 12.5%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를 극복하겠다며 ‘시장 친화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프랑스는 국내총생산 대비 공공 지출 비중이 57%로 핀란드와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의 ‘큰 정부’를 꾸려왔다. 대표적 복지국가인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보다 이 비중이 높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이 비중이 30~40%대로, 한국은 2014년 32.0%였다. 프랑스의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 부채 비중은 100%에 가깝다. 마크롱 정부는 5년간 정부 지출을 600억유로(약 75조9천억원) 줄여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 비중을 유럽연합 기준인 3% 아래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기업이나 부유층 감세도 추진한다. 부유세 자체는 폐지하지 않지만 부동산에만 과세하고 금융자산은 빼준다는 내용이다. 법인세율은 33%에서 유럽연합 평균인 25%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또 창업 지원과 산업구조 개혁 등에 600억유로를 쏟아붓겠다고 했다.
마크롱 정부가 역점을 두는 또다른 분야는 ‘노동 개혁’이다. 전국 단위의 산별 교섭으로 진행되는 노사 교섭을 개별 기업 단위에서 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크게 손질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면 노조의 협상력이 약한 곳에서는 사쪽이 상대적으로 큰 이익을 볼 수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경제장관을 한 마크롱 대통령은 당시에도 ‘노동 개혁’에 관심을 쏟았다. 마크롱 정부는 자영업자와 농민 등도 실업 급여 대상에 넣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작은 정부’ 지향은 복지 축소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에두아르 필리페 총리는 사회복지 모델 재점검을 “필수적이고 시급한” 과제로 제시했다. 세금은 덜 내는 대신 구매력을 높여 경제활동을 자극한다는 게 마크롱식 개혁의 지향점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의 개혁에 ‘노르딕(북유럽식) 모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런 식의 개혁 시도는 전임인 올랑드 대통령, 그 전임인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노조 등의 반발로 실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60년 만에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총선에는 노동자층이 대거 기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선 직후 “무엇도 나를 멈출 수 없다”고 말한 마크롱 대통령은 다수 의석을 무기로 경제와 사회를 바꾸기 위한 입법을 서두르겠지만 회의론이 맴도는 것은 이 때문이다. 투자은행 로스차일드에서 일한 적 있는 그는 1969년 취임한 조르주 퐁피두 전 대통령에 이어 50여년 만에 나온 ‘기업 출신’ 대통령이다. 퐁피두도 로스차일드 출신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프랑스 개조 시도는 공화주의와 평등주의 전통이 강한 이 나라가 기업 출신 대통령에게 어떻게 반응하느냐와도 연결된 문제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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