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11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세계보건기구 본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 참석하고 있다. 그는 이날 브리핑에서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은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고 전문가들은 풀이했다. 구체적이고 강제성 있는 대응지침 제시라기보다는 각국에 좀더 공격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성격이 크다는 것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11일 오후(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어 “(팬데믹 선언은) 코로나19가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들었다거나 병세가 중증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라며 “세계 각국이 코로나19와의 싸움에 더 공격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의 팬데믹 선언은 지난해 12월31일 코로나19 첫 환자가 중국에서 보고된 지 70여일 만이다.
테워드로스 총장은 “팬데믹 용어를 무심코 가볍게 사용하면 비이성적 공포를 불러일으키거나 (질병과의) 싸움이 (패배로) 끝났다는 잘못된 인정을 통해 불필요한 고통과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고 ‘뒤늦은’ 선언을 해명했다. 그는 이어 “모든 나라가 감염을 탐지·진단·치료하고 또 격리·추적한다면 팬데믹 진행경로를 바꾸고 통제·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팬데믹은 ‘대다수 사람이 면역력을 갖고 있지 않은 바이러스의 광범한 지역 확산’으로 정의되며, 감염경로가 불분명한 확진자들의 대규모 출현이 핵심 근거로 제시된다. 바이러스 연구자인 이언 매케이(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대)는 “명확한 팬데믹 용어 규정은 없다. 서랍 속에 있다가 상황이 최악에 달했을 때 사용되는 용어여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했다. 팬데믹은 코로나19 병세가 중증이라거나 치사율이 높다는 뜻도 아니다. 병세가 온건한 팬데믹도 있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보건기구의 이번 팬데믹 선언으로 각국의 대응 양상이 획기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재갑 한림대성심병원 교수(감염내과)는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의 국제 공조를 유도하는 정도가 가능할 것이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이 크게 달라질 건 없다”고 밝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국가 간 이동을 제한하는 것도 여전히 권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도 “우리 기구가 하는 일과 각국이 해야 하는 일을 바꾸는 건 아니다”라며 상징적 의미를 강조했다.
실제 2009년 신종플루 때 팬데믹을 선언했던 상황과 지금은 많이 다르다는 점도 지적된다. 당시 세계보건기구가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데는 백신과 항바이러스 치료제를 원활하게 공급받기 어려웠던 나라들에 치료제·백신을 공급해주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컸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대해서는 아직 적절한 치료제가 개발되지 못한 상태다. 한마디로 세계보건기구가 적절한 역할을 할 핵심적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세계 금융시장에 공포와 불확실성을 더 키울 뿐 감염 억제를 막고 생명을 구하는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조계완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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