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베를린 시내의 한 수퍼마켓 진열대 선반이 텅 비어 있다. AFP 연합뉴스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화창한 월요일 베를린 거리. 사람들이 오가고, 시민들은 노천카페에서 여유를 즐긴다. 하지만 마트에 가보면 사정이 다르다. 휴지가 동이 나고 파스타, 통조림 등 저장식품 선반이 비었다. “사재기를 하지 말자”는 정치인들의 호소가 이어지고 있지만 생필품 사재기는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3월 초까지는 코로나19 발생이 잠잠했던 독일도 지난주부터 확진자가 폭증세다. 3월16일 현재 확진자 7000명을 넘어섰다. 지난 11일 처음으로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에 나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불필요한 사회적 접촉을 자제해 달라”며, “고령자, 기저 질환자를 위한 조처다. 우리의 연대, 이성,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 시험에 우리가 합격하기 바란다”고 했다. 또 “앞으로 독일인 70%가 보균자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16개 주정부들은 지역 확진자 숫자와 상관없이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며 지난 금요일을 기점으로 휴교령과 공공장소 폐쇄령을 잇따라 내렸다. 16일 메르켈 총리는 국외 및 국내 여행도 자제하라고 호소했다.
독일에서도 코로나19가 연일 신문 머리기사를 장식하고 있지만, 생활 속 마스크는 일반인이 거의 구할 수 없다. 이미 매진돼 사기 어렵다. 언론들도 마스크는 감염 예방에 큰 효력이 없다고 전한다. 대다수가 마스크 없이 거리와 마트를 활보한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강력한 통행 제한 조치가 내려지기 전인 지난 금요일까지 베를린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모두 집바깥으로 나간 듯 클럽, 바, 식당이 긴 줄을 이루고 손님들로 붐볐다. 하지만 이튿날인 토요일부터는 경찰이 출동해 모든 클럽과 바의 손님들을 강제로 집으로 돌려보냈다.
미하엘 뮐러 베를린 시장은 50명 이상 모임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독일은 13일부터 학교, 어린이집, 수영장, 극장, 콘서트홀, 클럽, 헬스클럽, 박물관 등 대중이 모이는 공공장소들이 대부분 문을 닫기 시작했다. 베를린 식당·카페는 식탁이 서로 1.5미터 떨어져야 하고, 저녁 6시면 영업을 마쳐야 한다. 양로원 방문도 하루 한번으로 줄였다. 코로나19 온상지가 된 베를린의 클럽들은 지난 토요일부터 모두 문을 닫았다. 앞으로 교회·성당의 예배도 금지된다. 독일 질병본부인 로베르트 코흐연구소 쪽은 “클럽 파티를 자중해 달라”고 호소했다.
하랄트 레쉬 교수(뮌헨대 물리학과)는 독일 공영방송 <체데에프>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태는 최소한 8주가 걸릴 것이고,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며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어려움이 사라지고 공포도 사라진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의 안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얘기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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