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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현장] ‘손목 바코드’ 아프간인들, 미국 도착 “총알 없어 해피”

등록 2021-08-26 13:50수정 2021-08-27 02:44

워싱턴 외곽 덜레스공항서 만난 아프간인들
“카불공항 갈 때 총알 날아…여기선 안전”
“임신 6개월 아내, 신발 세 번 잃어버려”

미 “아프간에 미국인 1500명 남아…대피 최선”
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외곽의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인근 임시 수용시설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고 있다. 덜레스/황준범 특파원
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외곽의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인근 임시 수용시설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고 있다. 덜레스/황준범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 시한으로 정한 31일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미국인과 아프간 조력자, 그 가족에 대한 대피 작업도 바빠지고 있다. 25일(현지시각) 워싱턴 외곽의 덜레스 국제공항에는 아프간을 빠져나온 현지인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덜레스 공항은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재장악한 아프간을 탈출한 이들을 받아들이는 미국의 주요 관문이다.

부모, 형제, 자매 등 모두 11명의 가족이 함께 아프간 수도 카불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아밥(20)은 미국 도착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으로 치안이 불안정한 곳에서 벗어나 매우 기쁘다”고 안도감 흐르는 얼굴로 말했다. 그는 피곤해 잠든 어린 남동생을 안은 채 “카불 공항까지 갈 때 공중에 총알이 날아다니고 검문소들을 통과해야 하는 등 매우 위험했다”며 “지금은 안전하다”고 말했다. 미국 땅을 처음 밟는다는 아밥은 손목에 채워진 흰색 바코드 띠를 보여주면서 “이게 우리 신분증”이라며 “수용시설에서 2~3주 머물 것이고, 그 뒤에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카불 공항을 출발해 그 주변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덜레스 공항에 내린 아프간인들은 이곳에서 입국 수속 및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뒤 임시 수용시설로 개조된 인근 덜레스 엑스포센터로 대형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이들은 이곳에서 다시 버지니아주 포트 리 등 미군 시설로 옮겨진다.

탈레반의 위협을 뚫고 비행기에 올라 덜레스 공항에 도착한 아프간인들 중에는 깔끔한 옷차림을 한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황급한 탈출 상황을 보여주듯 이렇다할 짐가방도 없었다. 이들은 공항 내의 차단된 대기실에 모여있다가 안내요원을 따라 줄지어 이동해 대기중인 버스에 올랐다. 지치고 긴장한 표정들이었지만, ‘미국에 도착한 걸 축하한다’는 인사말에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쌩큐”라고 화답하는 이도 있었다. 영어가 서투른 한 40대 남성은 기분을 묻자 온화한 얼굴로 “해피(행복하다)”라며 가슴을 토닥거렸고, 카불 탈출 상황을 묻자 “빅 프라블럼(문제가 많았다)”이라고 말했다. 다른 남성은 “좋다. 미국 좋다(아메리카 이즈 굿)”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 외곽의 덜레스 국제공항에 25일(현지시각) 도착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임시 수용시설로 가는 버스에 오르려 공항 내부를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덜레스/황준범 특파원
미국 워싱턴 외곽의 덜레스 국제공항에 25일(현지시각) 도착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임시 수용시설로 가는 버스에 오르려 공항 내부를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덜레스/황준범 특파원

아프간인들 대기실 앞에는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아프간 주둔 미군에게 통역 지원을 하다가 3년 전 미국에 와서 아프간을 오가고 있다는 잔시어(30)는 바레인을 거쳐서 미국으로 날아오는 임신 6개월 아내와 처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내가 (통화에서) 공항 가는 길에 인파에 치어 신발을 세 번이나 잃어버렸다며 울었다”며 “곧 보게 되어 너무 기쁘지만 임신중이라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아프간 부모에게서 태어난 미국 시민권자인 자와드(35)는 두 달 전 친정을 방문하러 아프간에 간 아내와 두 자녀를 기다렸다. 그는 “아내가 카불 공항에 갈 때 수많은 탈레반 검문소들을 통과하고 수천명이 한꺼번에 공항으로 몰려드는 등 악몽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른 아침에 덜레스 공항에 왔지만 관계자들이 자신의 아내가 언제쯤 올지 알려주지 않는다면서 “아내가 가장 힘든 과정을 극복하고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안심이 되지만, 아직 못 만나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날 백악관은 지난 24시간 동안 미군과 연합군이 90대의 항공기를 동원해 1만9000여명을 아프간 밖으로 대피시켰다고 밝혔다. 지난 7월 말부터 따지면 모두 8만7900여명이 아프간을 빠져나왔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아프간에 미국 시민권자가 6000명 있었고 이 가운데 4500명이 대피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남은 미국 시민권자 1500명 가운데 500명은 곧 아프간에서 출발할 예정이며, 나머지 1000명에게도 적극적으로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는 31일 이후에도 미국인과 아프간인의 탈출시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국자들은 미국에 협조한 전력 탓에 탈레반으로부터 보복 당할 위험에 처한 수만명의 아프간인들이 현지에 남겨질 것이라는 현실을 인정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덜레스/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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