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 철군 종료와 관련한 대국민연설을 마친 뒤 연단을 떠나고 있다. 워싱턴/ 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는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강조하면서, 대외정책의 페이지를 넘겨 미국의 안보 이익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20년 아프간 전쟁 종료를 전환점 삼아, 무분별한 전쟁에서 손을 떼고 중국, 러시아, 사이버공격 등 새로운 도전에 대처하는 데 역량을 쏟자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철군과 민간인 대피 작전 종결 이튿날인 이날 백악관 대국민연설에서 철수 결정의 정당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알아야 할 중요한 게 있다. 세계는 변하고 있다”며 “우리는 중국과 심각한 경쟁을 하고 있고, 여러 전선에서 러시아의 도전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버공격과 핵확산도 과제로 꼽고, “21세기 경쟁에서 이런 새로운 도전에 대응해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러시아가 미국이 아프간에서 10년 더 꼼짝 못하는 것보다 더 좋아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년간 우리나라를 안내해온 외교정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우리는 실수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 전쟁 실패에서 깨달은 교훈으로 “우리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 말고, 분명하고 성취가능한 목표와 함께 임무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과 “미국의 근본적 국가안보 이익에 분명하게 초점을 둬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면서 이번 결정은 아프간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을 재건하려는 중대한 군사작전 시대의 종료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2001년 발생한 9·11 테러에 대한 응징을 넘어 아프간에 미국식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려한 지난 20년 미국의 싸움이 실패였다는 자인이다. 특히 미국 국민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전쟁에 뛰어들어 수많은 생명과 천문학적 비용을 치르는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바이든표 ‘미국 우선주의’를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테러리즘 또한 양상이 달라졌다며 “새로운 세상”을 강조했다. 그는 테러가 아프간을 뛰어넘어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세계로 “전이됐다”며 “대통령의 핵심 의무는 2001년 위협이 아닌 2021년과 내일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는 것이다. 우리의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 지역 지상전에 발묶이지 말고, 공중전 등을 통해 전세계 테러리스트에 대응하자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포스트 9·11’ 세계에서 달라진 미국 외교정책의 일단을 보여줬다고 짚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쫓기듯 아프간에서 철수하면서 벌어진 인명 피해 등 혼돈과 관련한 국내외의 비판을 의식한 듯 단호한 어조로 자신을 방어했다.
그는 “미국은 미 역사상 최장인 아프간에서의 20년 전쟁을 끝냈다”며 아프간 철수는 “미국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은 떠날 것이냐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냐 사이의 선택이었다”며 “나는 ‘영원한 전쟁’, ‘영원한 탈출’을 연장하지 않으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하 호라산)의 테러와 이에 대한 보복 공습으로 미군 13명과 최소 100여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낳으며 진행된 대피 작전도 “대단한 성공”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우리는 12만명 이상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며 역사상 최대 공수작전의 하나를 완료했다”며 “그 숫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가능하다고 여긴 것의 배 이상”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탈출을 원하는 미국인 가운데 98%를 빼내올 수 있었다면서, 100여명으로 추정되는 아프간 잔류 미국인에 대해 “데드라인은 없다”고 대피 노력을 지속할 것을 약속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6일 카불 공항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킨 호라산에 대해서도 “아직 끝난 게 아니다”라며 추가 보복 방침을 분명히했다. 그는 “우리는 지구 끝까지 쫓아갈 것이고, 당신들은 최후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아프간 정부의 급속한 붕괴와 탈레반의 정권 재장악을 예측 못한 점이나, 호라산의 카불 공항 테러를 막지 못한 점 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결정의 책임을 진다”면서도, 더 질서있는 방식으로 대피할 수 있었지 않았냐는 등의 비판들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을 끝내면서, 우리가 마주했던 복잡성, 도전, 위협 없이 빠져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것(아프간 철수)은 미국에 올바른 결정, 현명한 결정, 최선의 결정이라고 믿는다”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하고,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박수를 받을 수도 있었던 역사적인 ‘20년 아프간 전쟁 종식’이, 탈레반의 급속한 정권 재장악과 막판 유혈 사태 등 혼돈으로 국내외에서 비판받는 상황을 보여준다.
<에이비시>(ABC) 방송과 입소스가 지난 27~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 문제를 ‘잘 다루지 못했다’는 응답이 59%로, ‘잘 다뤘다’는 대답(38%)보다 훨씬 많았다. ‘미군이 모든 미국인을 대피시킬 때까지 남았어야 한다’는 응답도 84%에 이르렀다. 아프간 철군으로 ‘미국이 테러로부터 더 안전해졌다’는 응답은 7%에 그친 반면, ‘아무런 차이가 없다’(56%)거나 ‘덜 안전해졌다’(36%)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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