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메이 할릴자드 미국 아프가니스탄 특사.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과 평화 협상을 벌여온 잘메이 할릴자드 미국 아프가니스탄 특사가 18일(현지시각) 물러났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혼돈의 아프간 철수’ 두 달 만에 협상 실패의 책임을 물어 경질한 것으로 해석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어 “할릴자드 특사가 자리에서 물러난다. 미국인을 위한 그의 수십년간의 봉사에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할릴자드 특사의 후임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던 시절부터 중동 정책을 맡아온 톰 웨스트 부특사가 임명됐다.
아프간과 이라크 등에서 미국 대사를 지낸 할릴자드는 트럼프 정부에서 아프간 특사에 기용돼, 지난해 2월 미 정부와 탈레반의 평화 합의 도출에 주요 역할을 했다. 미국은 2021년 5월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을 철수하고, 탈레반은 알카에다 등 극단주의 세력이 그들이 통솔하는 지역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내용이었다.
지난 1월 출범한 조 바이든 행정부는 할릴자드를 유임시키고, 미국이 후원하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사이의 권력 분점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그에게 협상을 계속 맡겼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가 탈레반과의 평화 합의에 따라 지난 8월 철군을 진행하는 사이, 탈레반은 순식간에 아프간을 완전 장악해 20년 만에 정권을 다시 차지해버렸다. 미국은 이에 놀라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이 됐고, 이 과정에서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의 폭탄 테러로 미군 13명 등 수십명이 숨졌다.
전·현직 미 정부 관리들은 할릴자드는 3년 동안 탈레반과의 협상 대표로 재직하면서 ‘미국 최대 외교 실패의 얼굴’이 돼버렸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할릴자드는 탈레반에게 협상 지렛대를 내줬고, 지속적으로 아프간 정부를 약화시켰으며, 미 정부 내의 다른 견해들을 청취하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관리들이 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할릴자드는 사임하면서 이같은 비판에 반박했다. 그는 블링컨 장관에게 보낸 사임서한에서 “아프간 정책의 새 단계에 접어드는 시점”에 물러나는 게 옳다고 밝혔다. 그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사이의 정치적 협의가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며 “그 이유들은 너무 복잡하다. 정부직을 떠난 뒤 앞으로 내 생각을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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