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미투 운동’의 상징인 저우샤오쉬안(가운데)이 지난 9월14일 베이징 법원 밖에서 지지자들에게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닦고 있다. 베이징/EPA 연합뉴스
“어렵지만 꼭 해야 하는 싸움이에요. 한국의 엔(n)번방 사건은 우리에게 정말 큰 힘을 줬어요.”
중국 미투 운동의 상징인 저우샤오쉬안(28)을 인터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계정을 찾아 쪽지를 보내고, 계정이 막히고 이를 바꾸는 과정을 두 차례 거친 끝에 지난 1일 저우와 화상으로 마주 앉을 수 있었다.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이다.
‘셴쯔’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저우는 2018년 7월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의 간판 진행자 주쥔(57)으로부터 성폭력 당한 사실을 폭로한 뒤 3년째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가 폭로한 대상이 온 국민이 다 아는 유명 방송인이고, 싸움이 예상과 달리 끈질기게 진행되며 셴쯔는 ‘원치 않게’ 중국 미투 운동의 ‘아이콘’이 됐다. 주쥔은 1997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인 10억명 이상이 시청한다는 설날 특집 프로그램 <춘절만회>(설날 저녁쇼)를 진행하고, 중국 공산당 정치자문기구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이기도 한 방송계의 막강한 실력자다.
3년 만에 ‘증거 부족’ 무죄…“절차적 정의 안 이뤄져”
지난 9월14일 베이징 법원은 셴쯔가 주쥔을 고소한 지 3년, 사건이 발생한 지 7년 만에 1심 판결을 내놨다. 결과는 증거 불충분. 주쥔이 무죄라는 판단이었다. 법원은 ‘2014년 6월, 대학 3학년 실습생으로 베이징 <중국중앙텔레비전> 분장실에서 주쥔에게 30~40분 동안 강제 키스와 몸을 더듬는 등의 성추행을 당했다’는 셴쯔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셴쯔는 이 판결에 대해 “절차적 정의에 문제가 크다”고 했다. 성추행이 발생한 다음날 셴쯔는 베이징 공안에 신고했지만,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베이징 공안이 멀리 떨어진 우한에 사는 제 부모님에게 찾아가 성추행 사건을 문제 삼지 말아달라고 요구하고 각서를 받아 왔어요.” 이 과정에서 공안은 ‘상대는 유명인이고, 당신 딸은 대학생에 불과하다’며 부모와 셴쯔를 압박했다고 한다. 공안은 사건 당시 셴쯔가 입었던 치마를 증거로 가져간 뒤 돌려주지 않고 있고, 복도에 있던 폐회로텔레비전 영상도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다. 주쥔에 대한 조사도 한 차례에 그쳤다.
재판도 공정하게 진행됐는지 의문이다. 셴쯔는 가해자와 법정에서 대면하길 원했지만 주쥔은 끝내 출석하지 않은 채 재판이 끝났다. 그는 “제가 고소했고, 주쥔이 피고였는데, 완전히 뒤바뀌었다. 주쥔의 변호사는 나한테 ‘거짓말을 한다’ ‘망상증이 있다’ ‘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2차 가해를 했다. 내가 피해자로서 사법 절차를 밟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저우샤오쉬안이 지난 1일 화상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줌 화면 갈무리
가해자뿐만 아니라 중 당국, 소셜미디어, 언론 등과 싸워
그의 싸움 상대는 주쥔과 사법당국만이 아니었다.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을 불온시하는 중국 정부와 그 영향력 아래서 미투 운동을 훼방 놓거나 무관심을 조장하는 소셜미디어 회사나 언론과도 싸워야 한다. 셴쯔는 “중국 정부가 직접 미투 운동을 간섭한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다 알다시피 중국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인터넷에서 계속 발언을 금지당하고 사법 절차를 밟기도 매우 어렵다”고 했다.
그 자신이 3년간 이런 경험을 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면 기사가 안 나가는 일이 다반사에요. 설령 기사가 나가도 1~2시간 뒤면 삭제되는 경우가 많고요. 저를 지지하는 웨이보 계정들은 금방 사용이 중지됩니다. 이런 것들은 정말 큰 문제예요.”
2018년 초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시작된 뒤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도 적지 않은 미투 폭로가 이어졌지만, 곧 대부분 삭제됐다.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영어로 ‘Me Too’라는 단어도 제대로 검색되지 않는다. 중국 내용은 거의 사라지고, 외국 미투 관련 기사만 남아 있다. 중국 누리꾼들은 ‘Me Too’를 중국어 발음과 유사한 ‘미투’(米兎)라는 단어로 바꾸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에 대한 중국 당국의 시각은 2017년 6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온라인판에 실린 중화전국부녀연합회 부주석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서구 적대 세력들이 서구 페미니즘을 이용해 중국의 전통적 여성관과 국가의 성평등에 대한 기본 정책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일 밤 중국 유명 테니스 선수 펑솨이(35)가 2010년대 중반 중국 정치서열 7위 안에 들었던 장가오리(75) 전 국무원 부총리의 성폭행을 폭로했지만, 중국 언론에서는 이와 관련된 뉴스를 찾아볼 수 없다. 셴쯔는 “이 사건은 중국에 권력형 성폭력이 만연하고, 이에 대한 반성은 미흡하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펑솨이가 엄청난 대가를 무릅쓰고 폭로에 나섰다. 당국이 이를 지웠지만 많은 시민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우샤오쉬안이 지난 9월14일 지지자와 함께 베이징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재판 이길 수도, 질 수도…더 중요한 것은 성폭력에 대한 인식 전환”
온갖 어려움에도 3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여성들의 지지와 응원 덕이었다. “미투 선언 뒤 가장 좋았던 것은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로부터 받는 위로와 응원이었어요. 성폭력을 당한 게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날 내가 입은 옷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고… 이런 위로를 끊임없이 받았어요.”
2019~2020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엔번방 사건도 큰 힘이 됐다. “한국의 엔번방 사건은 중국 여성운동에 정말 큰 영향을 줬어요. 젊은 여성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법을 바꾸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을 직접 보여준 거잖아요. 우리에게, 특히 저에게 큰 격려가 됐습니다.”
중국 미투 운동의 상징 저우샤오쉬안. 본인 제공
셴쯔는 재판은 졌지만, 싸움에서는 이기고 있다. 2018년 처음 소송에 나설 때만 해도 중국 민법에 성폭력 관련 규정이 없었지만, 지난해 항목이 새로 만들어져 올해부터 시행됐다. 올 1월 시행된 민법 제1010조는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경우 가해자를 고소할 수 있고, 기관이나 조직은 이런 행위를 방지하고, 조사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센즈는 “저 한명이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폭로해서 이뤄진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재판에서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사법 시스템을 활용하고, 판사와 대중들이 성폭력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사회의 성 인식을 높이고 성폭력이 벌어졌을 때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고 가해자가 처벌받게 하기 위해 셴쯔는 수년 동안 자신이 폭로와 고소, 재판으로 이어지는 가시밭길을 걸으며 겪은 이야기를 모두 공개하고 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