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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비행금지구역 없인 방공호 속 죽어가는 시민들 구조 못 합니다”

등록 2022-03-15 07:25수정 2022-03-15 10:34

[인터뷰] 다리야 칼레뉴크
우크라이나 반부패행동센터 사무총장


러시아 지상군대 막고 있지만
우크라 방공 시스템 낡은 탓에
하늘 길 뚫려 우크라 시민 피해

구호물자마저 전달 못하게 되면
마리우폴 고립된 50만 죽을 수도
나토 “3차 대전 우려” 요청 거부
12일(현지시각) 오후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임시 사무소에서 우크라이나의 반부패행동센터 공동 설립자인 다리야 칼레뉴크 사무총장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바르샤바/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2일(현지시각) 오후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임시 사무소에서 우크라이나의 반부패행동센터 공동 설립자인 다리야 칼레뉴크 사무총장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바르샤바/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서구에선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거라고 하는데,…그렇다면 대안이 뭡니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6일째 되던 지난 1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한 우크라이나 활동가의 이러한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우크라이나에 이웃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였다.

“총리님은 폴란드에는 이렇게 왔지만, 무서워서 키이우에는 오지 못했죠?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들과 동료들이 울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비영리기구인 반부패행동센터의 공동설립자 겸 사무총장인 다리야 칼레뉴크는 존슨 총리에게 우크라이나 상공에 ‘비행금지구역(No Fly Zone)’을 선언해달라고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의 무차별적 폭격으로 민간인 대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이들에게 물·식량 등 구호물자를 전달하기도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우크라이나 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영국 등이 속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이런 요구에 난색을 표한다. 이날 기자회견에도 존슨 총리는 비행금지구역 선포는 “영국이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시키고 직접 전투에 관여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하지만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을 막기 위한 ‘대안’이 무엇이냐는 물음엔 똑 떨어지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한겨레>는 12일 폴란드 바르샤바에 임시 사무소를 차린 칼레뉴크 사무총당을 만나 비행금지구역을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물었다. 결사항전 의지를 보이며 승리를 확신하는 칼레뉴크의 목소리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었다.

12일(현지시각) 오후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임시 사무소에서 우크라이나의 반부패행동센터 공동 설립자인 다리야 칼레뉴크 사무총장이 &lt;한겨레&gt;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바르샤바/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2일(현지시각) 오후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임시 사무소에서 우크라이나의 반부패행동센터 공동 설립자인 다리야 칼레뉴크 사무총장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바르샤바/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활동 단체인 우크라이나 반부패행동센터는 어떤 곳인가.

“우크라이나의 국가 반부패 전문 수사기관과 반부패 방지 위원회, 법원 등 설립을 주도하며 지난해 여름 우크라이나 구조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이 러시아 (신흥 재벌이자 경제적 특권 계층인) ‘올리가르히’와 그들의 가족, 그들의 검은 돈을 몰아내도록 하는 활동을 펴고 있다.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싫어할 수밖에 없다. 아마 우리는 러시아의 암살 대상 목록에 올라 있을 거다. 우크라이나가 만들고 있는 반부패의 실현, 법의 지배가 푸틴에게는 직접적인 위협이다.”

―지금 우크라이나 내부 상황이 어떤가.

“키이우 현장에 있는 동료들, 군인들, 끔찍한 공간에서 대피하고자 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긴밀히 연락 중이다. 러시아는 미사일, 500kg짜리 폭탄 등을 동원해 마리우폴, 헤르손,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공격은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주거지와 가장 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마리우폴에서는 전기가 나가고, 식량이 떨어지고, 의료 지원도 부족한 상황이다. 사람들은 방공호에 갇혀 도시를 빠져나갈 수 없다. 50만명이 계속 인질로 잡혀있게 되면 며칠 안에 죽는다.”

―왜 지금 우크라이나에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필요한가.

“러시아군의 폭탄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다. 러시아가 우리의 영공에서 공격을 퍼붓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크라이나 군대가 지상에서 러시아 군대를 막아 섰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3일 안에 장악하려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방공 시스템은 매우 낡은 상태다. 방어에 필요한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우크라이나는 1년여 전 미국, 이스라엘 등 다른 우방국에 ‘패트리엇’(지대공 유도 미사일) 시스템이나 ‘아이언돔’(이스라엘의 로켓 요격 무기) 같은 영공을 지킬 수 있는 방공 시스템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들은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우리의 요청을 거부했다.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동의해 줄 것을 요청한다. 만약 러시아 비행기나 전투기가 (우크라이나 영공에) 있다면, 나토가 그것들을 쫓아낼 수 있도록 말이다.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전세계에서 많은 인도적 원조를 보내오고 있다. 이 물자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대기 중’이다. 이런 구호품을 방공호 속에서 구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다. 폭탄이 떨어지고 있고 러시아가 이 구호품 전달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 정부를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비행금지구역이 긴장을 더 고조시키고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존슨 총리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 나토는 러시아와 직접 충돌을 두려워한다. 러시아 핵무기가 두려운 거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비행금지구역을 선언하지 못하겠다면 대안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아무런 대안 없이 설정은 안 된다고 한다면 그건 우크라이나에서 배고픔에 죽어나가는 수천명의 사람들에 대해 개의치 않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현재 상황은 1939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처음 손에 넣고,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했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그 다음 히틀러는 폴란드를 점령했다. 서구 동맹국들은 히틀러를 달래려고, 대규모 작전과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이 작은 나라들을 주는 데에 동의했다. 역사가 보여준다. 히틀러가 초기 단계에서 침략을 멈췄더라면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1000만명의 사람들이 죽는다. 지금 그때와 매우 비슷한 상황이다. 여기서 우크라이나가 무너진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대안이 있을까.

“다양한 방법이 있다. 첫째,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만 해당하는 부분적인 비행금지구역 설정이다. 여기 폴란드에 난민이 많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 대부분은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아 한다. 서부 지역 영공만이라도 보호한다면 사람들은 안전함을 느낄 것이고 동부에서 서부로 재정착할 수 있다. 둘째, 인도적 목적을 위해 만든 회랑(humanitarian corridor) 위쪽에라도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할 수 있다. 마리우폴이나 하르키우에서 탈출하는 사람들이 러시아군의 폭탄에 맞지 않게 말이다. 세번째 대안은 우리한테 패트리엇 미사일, 미그(Mig)기 등 러시아군의 폭격을 막을 수 있는, 우리 군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제공하는 거다.”

―외교적 해결 방법은 없을까.

“미국은 1994년에 우크라이나, 러시아, 영국과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에 서명했다. 이 조약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이들 3개 나라로부터 안전을 보장 받는 대가로 세계에서 가장 큰 핵무기를 포기했다. 그 결과가 어떤가? 지금 러시아는 우리를 침공했고 갓 태어난 어린아기들을 죽이고, 산부인과 병원, 유치원, 학교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다. 근데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와 맞서기 두려워 한다. 이건 서방의 약속 위반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통해 서방이 얼마나 약한지 시험하고 있다. 허점을 찾고 있다. 이미 서방은 부족한, 예방적인 제재만을 부과하면서 약한 모습을 노출했다.”

―정말 러시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푸틴이 핵무기를 사용하려면 지휘 계통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아마 러시아가 스스로 자살행위를 하도록 러시아 내부에서조차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겁을 주고 있는 거다. 서방의 두려움을 이용하고 있다.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말을 인용하고 싶다.”

12일(현지시각) 오후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임시 사무소에서 우크라이나의 반부패행동센터 공동 설립자인 다리야 칼레뉴크 사무총장이 &lt;한겨레&gt;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바르샤바/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2일(현지시각) 오후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임시 사무소에서 우크라이나의 반부패행동센터 공동 설립자인 다리야 칼레뉴크 사무총장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바르샤바/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서방이 러시아에 대해 경제 제재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중요하고 엄중한 조치이지만 폭탄을 막아 내지는 못한다. 경제 제재가 국가 전반에 영향을 끼쳐서 시민들이 느끼고, 푸틴이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방공호에 갇혀 매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생각해보라. 지금 시간이 없다.”

―젤렌스키 정권 내부에서 사실상 나토 가입이 쉽지 않다고 보고 미국, 러시아, 터키 등이 우크라이나에 실질적 안전보장을 제공하기 위한 ‘새로운 안전 보장 협약’을 체결하자는 현실론도 나온다.

“러시아가 참여하는 한 어떤 안전보장 조약도 믿을 수 없다. 그들은 약속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와의 약속은 휴지 조각일 뿐이다.”

―10일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외교장관 회담이 있었고, 그 전에 세 차례 정전 협상이 있었다. 이에 대한 우크라이나 내부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하다.

“이번 협상은 인도주의적 회랑에 관한 것이었다. 러시아는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 두려는 게 분명하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우리의 영공을 지켜내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인도 회랑에 동의하지 않을 거다. 러시아가 설사 동의하더라도 아마 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다. 사람들이 회랑을 따라 움직이면, 러시아는 그 사람들에게 폭탄을 던질 거다.”

―우크라이나에게 이번 전쟁은 어떤 의미인가.

“영토의 자유 수호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위한 전쟁이다. 실존의 문제다. 지금은 인류 문명에 있어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매우 역사적인 시점이다. 어떤 순간에는 좋은 말 한 마디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총으로, 창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수도 있다. 내 나라의 자유를 쟁취하려면 스스로의 생명을 포함한 그 무엇인가를 희생해야 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항복하지 않을 거다. 러시아인들이 와서 우리의 집, 건물, 우리의 땅, 우리의 꿈을 앗아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다. 그들이 우리 사회의 기반시설을 파괴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다시 재건할 거다. 우리에게 유일한 선택지는 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 뿐이다.”

바르샤바/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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