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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단독] 사도광산 ‘조선인 14명’ 확인…일본 시민들이 찾아냈다

등록 2022-08-15 14:24수정 2022-08-16 05:36

1990년대 초 시민들이 직접 한국 방문
발로 뛰어 피해자·유족 30여명 찾아내
이 가운데 14명 후생연금 가입 사실 확인
강제동원 실태 입증할 중요 증거 될 듯
사도광산의 대표적 유적지인 ‘기타자와 부유선광장’ 모습. 이곳에선 금·은 등 채취한 광석을 분류하고 제련하는 일이 이뤄졌다. 동양 최대 규모로 알려진 이 시설은 1938년 건설됐다. 일본 정부가 에도시대(1603~1867년)만 대상으로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면서 이 시설은 세계유산에서 빠지게 됐다. 사도/김소연 특파원
사도광산의 대표적 유적지인 ‘기타자와 부유선광장’ 모습. 이곳에선 금·은 등 채취한 광석을 분류하고 제련하는 일이 이뤄졌다. 동양 최대 규모로 알려진 이 시설은 1938년 건설됐다. 일본 정부가 에도시대(1603~1867년)만 대상으로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면서 이 시설은 세계유산에서 빠지게 됐다. 사도/김소연 특파원
1990년대 사도광산이 있는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지역 사회가 일제 때 이곳에 끌려왔던 한국인 노동자를 30여명이나 발굴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일본 시민들이 채록한 사도광산 생존 피해자 5명의 증언도 공개됐다. 이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문제로 한-일 갈등이 첨예해진 상황에서, 광산의 ‘전체 역사’를 후세에 전할 수 있도록 일본 시민들이 확인한 이런 성과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광복 77주년을 맞아 15일 <한겨레>가 입수한 자료를 보면, 일본 니가타니시사회보험사무소는 1995년 11월15일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에 사는 윤종광(일본식 이름 ‘이하라 종광’)의 후생연금보험 피보험자 기간을 확인해 주는 답변서를 발급했다. 윤씨가 미쓰비시광업 사도광업소 소속으로 보험에 가입돼 있던 기간은 쇼와 17년(1942년) 1월1일~6월1일, 쇼와 19년(1944년) 10월1일~20년(1945년) 5월19일로 확인된다. 이 자료를 통해 윤씨가 1942년, 1944~45년에 사도광산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

살아생전 윤씨는 “19살 때인 1941년에 일본에 끌려왔다. 면에서 (데려갈 사람의) 할당이 정해져 부모와 아내를 남기고 일본에 가야 했다”고 말했다. 일본 시민들은 직접 발굴한 피해자 30여명 가운데 19명에 대한 답변서를 요청해 1942~45년 사이 일했던 자료가 확인되는 노병구·김문국·이병진 등 충청남도 청양·논산과 인천에 살고 있던 본인·유족 14명이 후생연금에 가입해 있었음을 증빙하는 확인서를 손에 넣었다. 당시 사회보험사무소는 후생노동성의 외청인 사회보험청(2010년 일본연금기구로 이관)의 하부 조직이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인 14명이 사도광산에서 근무했던 사실을 공식 인정한 셈이다.

일본 니가타니시사회보험사무소는 1995년 11월15일 한국의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안심리에 사는 ‘이하라 종광’(한국 이름 윤종광)이란 사람의 후생연금보험 피보험자 기간을 확인해 주는 답변서를 발급했다. 이 서류는 윤씨가 최소 1942년, 1944~45년 사이에 사도광산에서 일을 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사도/김소연 특파원
일본 니가타니시사회보험사무소는 1995년 11월15일 한국의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안심리에 사는 ‘이하라 종광’(한국 이름 윤종광)이란 사람의 후생연금보험 피보험자 기간을 확인해 주는 답변서를 발급했다. 이 서류는 윤씨가 최소 1942년, 1944~45년 사이에 사도광산에서 일을 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사도/김소연 특파원
1990년대 지역사에 관심을 가졌던 사도시 시민들은 미쓰비시광업 사도광업소가 일제강점기에 만든 ‘조선인 연초(담배) 배급명부’를 실마리 삼아 1991~1995년에 무려 세번이나 한국을 방문해 사도광산에서 일한 피해자들을 찾아냈다. 회사 쪽이 광부들에게 담배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만든 이 명부에는 조선인 400여명의 이름·생년월일·이동상황 등이 적혀 있었다. 미쓰비시광업 사도광업소가 작성한 ‘반도노무관리에 대하여’(1943년), ‘사도광산사’(1950년) 자료를 보면, 1940~1945년 총 1519명의 조선인이 강제동원됐음이 확인된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를 직접 확인하고 증언을 채록하는 작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4월 발족한 ‘사도의 조선인 노동자 발자취를 기억하는 모임’에 참여하는 아라이 마리 사도시의회 의원은 <한겨레>에 “과거에 사도광산에서 일했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증언과 자료가 남아 있다. 다시는 이런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체의 역사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뤄졌던 일제강점기를 제외하고 에도시대(1603~1867년)만 대상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 제출한 추천서의 내용이 미비해 유네스코 심사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내년 2월까지 다시 추천서를 내기로 한 상태다.

사도(니가타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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