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현장을 가다] 일하고 차 마시던 평범한 삶, 그 천국이 돌아올 거란 믿음으로
9일 밤(현지시각)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시 운동장에 마련된 텐트촌에 아이들이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한 자원봉사자는 이 텐트촌에 적어도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카흐라만마라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튀르키예에선 지옥 안에 천국이 산다. 대지진 피해가 극심한 지역 중 하나인 카흐라만마라시에 들어선 거대한 텐트촌은 지옥이다. 수백 개의 텐트가 빽빽하게 들어찬 이곳은 원래 경기장이었다. 하지만 이젠 운동장에도, 트랙에도 집을 잃은 이들뿐이다. 관중석에는 구조작업 중 발생한 부연 먼지가 내려앉았고, 배급되는 빵과 수프를 받아 온 이들이 그 위에 드문드문 앉아 있다.
젠네트 아이도안(43)은 여기에 산다. 그의 이름 젠네트는 튀르키예어로 ‘천국’이라는 뜻. 천국이 사는 텐트는 지옥의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다. 전 세계에서 보낸 구호 물품이 작은 산처럼 쌓여 있는 공터와 꺼져버린 모닥불의 흔적들을 지나면 본격적인 경기장의 시작을 알리는 발목 높이의 계단 하나가 있다. 계단을 딛고 올라서 오른쪽 갈림길로 걷다가 다시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젠네트가 사는 곳이 나온다. 젠네트와 남동생 제키(41), 어머니 된뒤(82)에 젠네트의 아이 셋, 제키의 아이 셋까지 총 9명의 보금자리다.
낮에는 자원봉사자, 밤에는 이재민
끔찍한 지진은 모두가 잠든 월요일(6일) 새벽에 찾아왔다. 강한 충격에 잠을 깼고 곧바로 뛰쳐나왔다. 아이들과 함께 몸을 피하자마자 집이 무너졌다. 대피 과정에서 떨어진 물건들에 젠네트는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밑에서부터 엄청나게 크게 땅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너무 흔들려서 걷기는커녕 드러누워야 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하는 젠네트의 옆에서 노모(된뒤)가 기자의 팔을 붙잡아 흔들었다. 이렇게나 세게 흔들렸다고 말하며 울먹이는 할머니에게 제키의 아들인 손자 유수프가 휴지를 건넸다.
남동생 제키의 집은 비교적 무사했다. 벽이 갈라지고 건물이 기울기는 했지만 폭삭 무너지진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약간의 행운을 제키는 본능적으로 나눴다. 운송회사에 다니며 통근버스를 몰았던 그는 늘 해왔던 것처럼 사람들을 태웠다. 제키는 “25인승 버스에 거의 50명을 태워서 지진 현장에서 최대한 멀리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경기장 텐트촌에 정착한 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집으로 돌아가 냄비 같은 가재도구를 챙겨 돌아왔다. “임시로 나눠주는 물품은 플라스틱이라 애들 건강에 안 좋다”고 젠네트가 말했다.
일하고 차 마시던 평범한 삶은 끊겼다. 하지만 텐트촌의 일상 역시 단조롭기는 마찬가지다. 해가 뜨면 이재민들은 ‘스스로를 돕는’ 자원봉사자가 된다. 하늘이 알고 도와줄지는 미지수지만, 이들은 음식이나 물 같은 외부 지원을 배급하는 과정에 손을 보태고 남는 시간엔 구조작업을 돕는다.
구호 물품을 실은 대형 트럭과 가재도구를 짊어지고 빠져나가는 피난민, 경찰과 군대, 전 세계 취재진의 차량이 엉킨 카흐라만마라시 입구의 복잡한 교차로에서 손짓 발짓으로 교통을 정리하는 이들 가운데는 경찰도, 군인도 아닌 이들도 많다. 텐트촌의 이재민들은 어느덧 며칠을 함께 한 ‘이웃들’과도 인사한다. 아이들은 더 무람없이 한데 어울린다.
튀르키예 대지진으로 집을 잃은 젠네트(왼쪽)과 남동생 제키(오른쪽), 제키의 아들 유수프가 11일(현지시각) <한겨레> 인터뷰가 끝난 뒤 카흐라만마라시 경기장의 자신들 텐트 앞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카흐라만마라시/조해영 기자
아이들이 뛰어놀던 축축한 흙은 밤이 되면 얼어붙는다. 잠들기 전 젠네트와 가족들은 텐트 안 공간을 반으로 분리하기 위해 쳐놓은 부직포 같은 천을 걷어 올린다. 아홉 식구의 입김과 체온이 한데 모여 차가운 밤 속에서도 서로를 덥혀주길 바라면서다. 정부에서 나눠준 엘피지(LPG) 가스난로는 정작 가스가 공급되지 않아 사용이 어렵다. 다행히 토요일(11일)부턴 가스가 들어와 난로를 켤 수 있을 것 같다며 제키가 웃었다.
텐트 바깥에서도 추위는 지옥이다. 카흐라만마라시 시내 한가운데는 쭉 뻗은 직선도로가 있다. 밤이 되면 도로 중간엔 열 발자국마다 하나씩 모닥불이 피어오른다. 각지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이다. 많은 것이 한꺼번에 파괴되면서 피해 복구 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
“돕고 싶은데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이가 없다”고 모닥불에 손을 쬐던 한 무리의 자원봉사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도시를 원래 모습으로 복구하느라 밤낮을 잊은 이들에게 허락된 숙소는 인근 대학교의 기숙사다. 지진으로 벽이 갈라졌고 화장실 세면대엔 녹물이 나오는 곳이다. 이들은 사실상 숙소에는 짐만 가져다두고 잠은 거리나 차에서 청한다고 말했다.
9일 밤(현지시각)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시 운동장에 마련된 텐트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긴 줄을 만들어 구호물품을 옮기고 있다. 카흐라만마라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나쁜 얘기는 안 한다…“아이들 있으니까”
발밑이 무너진 곳에서 법과 규칙도 무너졌다. 몸뿐 아니라 마음마저 얼어붙게 하는 흉흉한 말들도 돌아다닌다. 그나마 온전한 가게들에는 죄다 도둑이 들었고, 지진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납치된다는 소문도 있다고 젠네트와 제키는 전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11일 동남부 도시 디야르바크르를 찾아 “약탈이나 납치 등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은 국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젠네트와 제키는 결연했다. 젠네트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힘든 얘기, 절망적인 얘기는 하지 않는다”고 조용히,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지옥을 견디게 하는 힘은 거기에서 나오는 듯했다. 인터뷰 도중 된뒤는 자신의 힘과 희망일 신에게 기도를 드리러 가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젠네트는 천막 앞에서 오른쪽 대각선으로 손가락을 뻗어 가리키며 그곳에 원래 살던 집이 있다고 설명했다. 젠네트와 제키, 된뒤의 가족은 오래전부터 카흐라만마라시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 이곳에서만 11일 오후까지 약 5천구의 주검이 땅에 묻혔다. 가족들의 모든 시절이 녹아 있을 동네엔 세계 각지에서 급파된 구조대가 비장한 모습으로 생존자를 수색하고, 길가에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이 오열하고 있었다.
하지만 끝이 없어 보이는 지옥 속에서도 희망은 엿보인다. 인터뷰를 마치고 경기장을 빠져나왔을 때, 매몰됐던 일가족 5명이 129시간 만에 모두 함께 구조됐다는 <에이피>(AP) 통신 애플리케이션의 알림이 울렸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에도 천국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거라고 말하는 전갈처럼. 젠네트는 튀르키예어로 ‘천국’, 된뒤는 ‘돌아온다’는 뜻이다.
카흐라만마라시/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