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주요 피해 지역 중 한곳인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시에서 10일(현지시각) 여성 한 명이 희생자들이 묻힌 공동묘지 한쪽 작은 나무 묘표 앞에서 흐느끼고 있다. 카흐라만마라시/AFP 연합뉴스
작은 나무판에 적힌 숫자와 이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으로 황망하게 끝난 생들이 지금까지 마무리된 방식이다.
11일(현지시각) 오후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시 지진 희생자들이 묻히는 공동묘지로 향했다.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던 탓에 피해 수습 현장으로부터 빠져나가는 운구차를 따라갔다. 재빠르게 달리는 차들을 중간에서 놓쳤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길가에서 공을 차며 놀던 어린아이조차 ‘그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안내해준 곳으로 가니 다시 몰려드는 운구차들을 볼 수 있었다.
희생자들이 묻히는 곳은 원래도 카흐라만마라시의 공동묘지로 쓰이는 곳이라고 했다. 완만한 언덕길을 차를 타고 오르면 오른쪽으로는 원래의 공동묘지가 보인다. 한평짜리 공간을 벽돌로 구분한 작은 묘지에는 생몰 연월일과 망자의 이름이 적힌 돌로 된 비석이 저마다 하나씩 놓여 있다. 관리의 상태는 조금씩 달랐지만, 반듯하고 작은 공간에 누워 깊은 잠에 빠졌다는 점에선 평등했다.
하지만 지진 희생자들이 잠드는 곳은 구분과 비석마저 사치로 여겨진다. 한때 공터였을 길의 왼쪽으로 시선을 보내면 멀리 갈색 흙이 군데군데 솟아올라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숨진 이들을 알아볼 수 있는 징표는 작은 나무판 하나가 전부다. 여기에 숫자와 이름을 적어둔 듯했다. 간격이 일정치 않은 나무판은 모양도 제각각이다. 몇몇 나무판에 묶여 있는 색색깔의 스카프가 유족들의 ‘최선’을 짐작게 했다.
죽음이 그렇듯 매장의 과정도 눈물겹다. 운구차와 경찰차, 유족들의 차량이 한데 엉킨 주차장은 자갈밭이다. 소중한 이를 보냈을 사람들은 울면서도 서로를 부축하며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 내려갔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주요 피해 지역 중 한곳인 튀르키예 하타이에서 10일(현지시각) 남성 한명이 희생자들이 묻힌 공동묘지 한쪽 작은 묘표 앞에서 흐느끼고 있다. 하타이/AFP 연합뉴스
이곳을 안내한 현지 경찰은 “지금까지 5000명 넘게 이곳에 묻혔다”고 말했다. 경찰의 설명에 따르면 카흐라만마라시 내에서 나온 지진 희생자는 모두 이곳으로 모인다. 공동묘지를 둘러보는 30분 남짓한 시간에도 흰색 운구차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공동묘지에서는 취재가 극도로 제한됐다. 이날 취재진은 현장을 지키는 경찰을 맞닥뜨려야 했다. 사진이나 영상 촬영은 아예 불가했고, 보고 들은 것을 취재 수첩에 기록하는 행위도 제지당했다. 경찰들은 “며칠 전 뉴질랜드 촬영팀이 이곳에서 무리하게 취재하다가 문제를 일으켰다”며 “유족들에게 말을 걸어선 안 되고 가까이 가서도 안 된다. 먼발치에서 조용히 둘러보고 가는 것 외에는 협조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에이피>(AP) 통신도 하타이주 안타크야(안타키아) 외곽에 거대한 집단 묘지가 조성되고 있었다고 11일 전했다. 한쪽에서는 굴착기와 불도저가 구덩이를 파고 있으며, 다른 쪽에서는 검은 시체 운반용 자루를 실은 트럭과 구급차가 드나들고 있고, 채 1m도 안 되는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몇백기의 묘 앞에는 각각 덩그러니 나무 묘비가 세워져 있었다고 전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튀르키예 종교부 관계자는 묘지가 문을 연 첫날인 10일 시신 800구가 들어왔고 이튿날 정오까지 모두 2000구가 묻혔다고 말했다고 <에이피>는 전했다. 12일 튀르키예 전역과 시리아의 사망자는 2만9000명을 넘겼다.
영국 <스카이> 방송은 11일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담당 사무차장은 튀르키예 아다나에서 한 인터뷰에서 사망자가 수만명 더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그는 “잔해 아래를 들여다봐야 해 정확하게 셀 수는 없지만 (사망자 수가 현재의) 두배 혹은 그 이상이 될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12년 내전으로 이미 피폐한 상태에서 지진 피해까지 겹친 시리아는 국제사회의 구조마저 더뎌 어려움이 더욱 크다. 유엔은 시리아에서만 530만명이 집을 잃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카흐라만마라시/조해영 기자,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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