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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르포] 트럭이 주고 간 구호품…“필요한 사람들이 잘 받고 있을까요”

등록 2023-02-12 11:51수정 2023-02-13 11:14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현장을 가다
9일 저녁(현지시각)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시 외곽 작은 마을. 마라시 토박이 무라트씨의 이웃들이 AFAD에서 제공한 텐트에서 지내고 있다. 카흐라만마라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9일 저녁(현지시각)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시 외곽 작은 마을. 마라시 토박이 무라트씨의 이웃들이 AFAD에서 제공한 텐트에서 지내고 있다. 카흐라만마라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올려다본 밤하늘에 수백여개의 별이 깜빡였다.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시 외곽의 한 마을. 깊고 깊은 어둠에 싸인 덕분에 별이 또렷하게 보였다. “전기는 어제부터 조금씩 들어왔죠. 그런데 아예 떠나버린 사람이 많아서 마을은 계속 컴컴해요.”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마을 ‘토박이’ 무라트 살람(44)이 말했다.

온전한 집과 남은 사람의 수보다 별이 많은 마을에서 무라트는 자신의 가족들은 물론 집을 잃은 친척들과 함께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규모가 큰 지진이었지만 다행히 무라트의 집은 벽에 금이 조금 가는 것 말고는 피해가 없었다. 9일(현지시각) 밤 찾은 그의 집은 삭막한 동네에서도 비교적 온전하고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지난 6일 모두가 잠든 새벽에 4시 17분께 일어난 지진은 무라트에게도, 아들 아흐메트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았다. 12살 아흐메트는 “지진이 났을 때 집 위층에 있었는데 너무 많이 흔들려 무서웠다”고 말했다. 카흐라만마라시 시내에서 살다 집을 잃고 무라트네에서 임시 거주 중인 그의 친척은 “무너진 벽 사이를 온몸으로 밀어 아내, 두 아이와 함께 겨우 탈출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진 이후 가족들은 집 외곽에 ‘침실’을 만들었다. 패널은 지붕이, 파란색 방수천은 벽이 됐다. 튀르키예의 특산품이기도 한 독특한 무늬의 카펫들이 돌담 벽에 걸려 벽지 역할을 하고 있다. 자는 공간이라고 소개했지만, 저녁 시간이 되자 식탁과 의자도 이곳에 놓였다. 지진 이후에도 살아남은 이들의 삶은 계속돼서 돌담 위 카펫벽지 위엔 다시 가족들의 빨랫감이 널렸다. 결국 의식주를 모두 여기서 해결하는 셈이다.

다만 이 공간이 너무 추워 아이들은 집안에서 재우고 있다. 아흐메트는 “집 안에서 자는 게 여전히 무섭다”고 말했다. 지진의 피해도, 아이들이 추위에 떠는 것도 모두 피하고픈 어른들은 그저 행운을 바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9일 저녁(현지시각)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시 외곽 작은 마을. 무라트씨 가족의 임시 거처. 지진을 대피해 슬레이트 지붕을 덮은 콘크리트 건물에서 지내고 있다. 카흐라만마라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9일 저녁(현지시각)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시 외곽 작은 마을. 무라트씨 가족의 임시 거처. 지진을 대피해 슬레이트 지붕을 덮은 콘크리트 건물에서 지내고 있다. 카흐라만마라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날 마을에는 튀르키예 재난위기관리청(AFAD) 로고가 박힌 트럭이 서 있었다. 좁은 마을 길을 꽉 채운 트럭으로 달려간 마을 주민들은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받아왔다. 받은 물품을 꼭 껴안고 집안으로 종종걸음 하던 여성은 눈이 마주치자 “메르하바”(안녕하세요) 하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무라트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골고루 잘 가는진 모르겠다”고 말했다. 구호물품을 실은 차가 마을을 도착하고, 경쟁하듯 몰려든 사람들이 물건을 받으면 트럭은 떠난다.

무라트의 마을은 이미 생활 터전으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식료품점은 물론이고 약국도 문을 닫았다. 무라트는 “지진으로 도로도 온전하지 못해 가게가 열려 있어도 물건이 들어오지 못하고, 소 젖을 짜서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이들도 길이 막혔다”고 말했다. 활력이 넘쳤을 도로는 한쪽엔 재난지역을 벗어나려는 주민들의 승용차들이, 반대쪽엔 구급차·경찰차·구호차량이 빽빽하게 들어찬 지 오래다.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온 무라트에게는 마을 지리도, 지진 피해가 극심한 카흐라만마라시 시내까지 가는 길도 훤해 보였다. 가로등이 부서지고 기울어진 대로를 지나며 무라트는 자신에게 익숙한 건물들을 가리켰다. “여기선 2명, 저기서는 3명 죽었어요. 그래도 이 건물은 사무실이라 지진이 났을 땐 사람이 없어 사망자가 없었습니다.” 그가 가리키는 건물들 사이마다 마을에서처럼 당국의 구호물품을 받기 위한 차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반쯤 찌그러진 차조차 없거나 잃은 이들은 줄에 끼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9일 저녁(현지시각)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시 외곽 작은 마을. 무라트씨 가족의 임시 거처. 지진을 대피해 슬레이트 지붕을 덮은 콘크리트 건물에서 지내고 있다. 카흐라만마라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9일 저녁(현지시각)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시 외곽 작은 마을. 무라트씨 가족의 임시 거처. 지진을 대피해 슬레이트 지붕을 덮은 콘크리트 건물에서 지내고 있다. 카흐라만마라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무라트는 지진 이후 직장에 가지 않는다. 지진 이후 전국적인 휴교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2월13일까지였던 휴교령은 20일까지로 일주일 늘어났다. 무라트는 “학교가 언제 열지, 내가 언제 출근할지 알 수 없다. 모든 시스템은 무너졌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정부는 대지진 이후 3개월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3개월 이후에 단절된 삶들이 다시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카흐라만마라/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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