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군과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의 무력충돌이 이어지고 있는 수단의 남하르툼에서 25일 한 주민이 무너진 건물 잔해를 바라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5일 수단 사태가 발생한 뒤 최소 459명이 숨지고 4072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남하르툼/로이터 연합뉴스
15일 북아프리카 수단에서 군부 간의 무력충돌이 발생한 뒤 한국 등 각국 정부가 서둘러 자국민들을 대피시킨 것은 이번 사태가 장기화가 예상되는 ‘심각한 위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7일까지 예정된 사흘간의 임시 휴전이 끝나면, 군벌 간의 생사를 건 싸움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번 수단 사태를 이해하려면 2003년 시작돼 10년 넘게 이어진 수단 서부 ‘다르푸르 사태’를 이해해야 한다. 이 지역은 이번 사태의 두 주인공인 정부군의 압델 파타흐 부르한 장군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신속지원군(RSF) 사령관이 군사적·정치적 기반을 닦은 곳이다. 수단의 독재자 오마르 바시르(통치 기간 1993~2019)는 지역 차별, 식량 부족 문제를 호소하며 봉기한 다르푸르의 토착민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그로 인해 20만명 넘는 사망자, 30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정부군 지도자 부르한 장군은 다르푸르의 정규군 사령관이었다. 바시르는 다르푸르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민병대 ‘잔자위드’를 계승한 신속지원군을 2013년 정규군으로 인정하고, 다갈로를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두 인물은 ‘인종 청소’ 수준의 학살이 벌어진 다르푸르에서 각종 이권을 챙기며 승승장구했다.
수단에선 2018년 12월 빵값 인상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됐다. 두 인물은 협력해 2019년 4월 독재자 바시르를 몰아냈다. 이후 ‘임시 과도정부’가 들어서지만, 2021년 10월 발생한 쿠데타로 부르한 장군이 실권을 장악했다. 권력을 쥔 부르한 장군이 다갈로가 이끄는 신속지원군을 국군에 편입하려다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두 세력 중 어느 한쪽이 ‘완전한 승리’를 거둬 권력 장악을 마칠 때까지 사태는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신속지원군이 소아마비·홍역·콜레라 등 위험 물질을 보유하고 있는 수단 국립공중보건연구소를 장악했다는 <시엔엔>(CNN) 등의 보도가 나오며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니마 사이드 아비드 세계보건기구(WHO) 수단 주재 대표는 “이번 사태가 생물학전으로 비화할 위험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사태의 전망을 더 어둡게 하는 것은 수단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세번째로 영토가 큰 수단은 아프리카 내륙과 아라비아반도를 잇는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세계 물류의 ‘대동맥’인 수에즈 운하와 이어지는 홍해와 접해 있고, 생명의 젖줄로 불리는 나일강이 영토 한가운데를 지난다. 수단 정세가 혼란해지면 수단 북쪽에 자리한 이집트와 홍해 건너 사우디아라비아가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또 내전이 장기화해 수단이 소말리아처럼 ‘무정부 상태’가 되면 홍해에 해적이 들끓을 수도 있다. 결국 이번 사태를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끝내려 외세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수단엔 금·석유 등 지하자원도 많다.
실제 두 군벌은 외국과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다. 다갈로 사령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이끄는 민간 군사조직 ‘와그너그룹’에 수단의 금광 채굴권을 제공하는 대가로 지대공 미사일과 장갑차 등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리비아 동부를 장악 중인 리비아국민군(LNA)이나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도 군사 지원을 받는다는 보도도 나온다. 부르한 장군이 이끄는 정부군은 이집트에서 전투기·군인 등을 지원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22일 사우디를 시작으로 외국인들의 탈출이 시작되자 수단인들은 “버려졌다”며 좌절하고 있다. 수마야 야신은 <로이터>에 “전쟁이 벌어지는데 세계는 수단을 버리고 있다. 외국 세력들은 모두 자신들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 아메드도 “남은 수단 민간인들이 전쟁에서 ‘인간 방패’로 사용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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