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 바르차카 분수에서 한 소년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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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이 도착한다!”
지난 14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매체 <이탈리아 인포르마>의 날씨 기사 제목이다. <이탈리아 인포르마>는 “카론이 도착한다”며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등 유럽에서 무더위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등장한 카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뱃사공이다. 죽은 자의 영혼을 스틱스강을 건너 지하 세계로 인도하는 카론을 폭염에 빗댄 것이다. 그리스 신화를 따서 폭염에 이름을 지은 주인공은 공식 기후 관련 기관도 아닌 이탈리아 날씨 누리집 ‘아이엘메테오’ 설립자인 안토니오 사노다. 고전 문학의 열렬한 독자라는 그는 지난 19일 이탈리아 매체 <라 레푸블리카>에 “내가 카론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며 “오늘날의 일기예보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일(현지시각) 이탈리아 토리노의 카스텔로 광장 분수대에서 사람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EPA 연합뉴스
앞서 아이엘메테오는 최근 48.8도까지 치솟으며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남부 지역을 덮친 폭염을 케르베로스와 카론이라고 명명했다. 케르베로스 역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머리 셋 달린 개로, 지옥의 문을 지키는 괴물이다.
아이엘메테오의 명명 이후 유럽을 휩쓴 폭염을 비공식적으로 케르베로스와 카론이라고 부르면서 지난 19일 <비비시>(BBC)는 태풍처럼 폭염에 이름을 짓는 것을 두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찬성 쪽 기후 전문가들은 더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제적인 표준이 없어 오히려 혼선이 일어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는 탓이다.
허리케인과 태풍과 같이 큰 폭풍에는 세계기상기구(WMO) 태풍위원회 14개 회원국이 10개씩 제출한 이름을 돌려가며 붙이고 있다. 올해 대서양에서 발생한 열대성 폭풍은 에밀리, 신디, 숀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국제적으로 통일된 이름을 부르면 각국이 태풍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지난 17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 여성이 고온 속에서 부채를 사용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반면 폭염 명명에 대한 국제적인 협약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앞서 121개 회원국을 보유한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해 10월 폭염에 이름을 붙이는 문제를 검토했지만 명명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만장일치로 뜻을 모았다. 세계기상기구는 지난 18일 성명을 내어 “특정한 폭염에 이름을 붙이면 누가 위험에 처했고, 어떻게 폭염에 대응해야 하는지 등 가장 중요한 메시지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관심이 멀어질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세계기상기구는 “폭염에 대한 표준 분류이나 등급 체계가 없기 때문에 부적절하고 통일되지 않은 명명은 대응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이틀 이상 지속되는 비정상적인 더운 날씨가 흔해지면서 폭염에도 이름을 붙이려고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스페인 세비야 지방 정부는 지난해 6월 폭염 이름을 짓는 시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조이’라는 이름을 붙인 폭염은 지난해 7월 43도까지 치솟으며 스페인 남부를 초토화시켰다.
케이트 보만 멕러드 에이드리엔 아슈트·록펠러 재단 도시회복 센터 소장은 <뉴욕타임스>에 “폭염의 심각성에 따라 폭염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면 극심한 더위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 것”이라며 “폭염은 다른 어떤 기후 위험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어 피아르(PR)와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