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제80회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시민들이 이란 반정부 시위의 구호인 ‘여성, 삶, 자유’라고 쓰인 플래카드와 손팻말 등을 들고 행진하며, 이란 여성들과 함께한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했다. AFP 연합뉴스
지난 5일, 이란 북서부 도시 사케즈에서 30살 남성 사파 아엘리가 이란 보안군에 체포됐다. 노르웨이에서 활동하는 쿠르드족 인권단체 헹가우는 이날 성명을 내어 보안군이 탄 차량 다섯대가 아엘리의 집에 도착해 체포영장도 없이 그를 붙잡아 갔다고 전했다. 현재 아엘리가 어디에 갇혀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사케즈는 쿠르드족이 모여 사는 이란 쿠르디스탄주(쿠르드족의 땅)의 주도다.
아엘리는 지난해 9월13일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된 지 사흘 만에 의문사한 22살 이란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삼촌이다. 아미니의 첫 기일인 9월16일을 불과 열흘께 앞두고 삼촌이 체포된 것이다. 최근 아미니의 묘지 주변엔 새 보안카메라가 설치돼 누가 방문하는지 살피는 특별감시가 이뤄지고 있다고 헹가우는 전했다.
■ 유족 괴롭히는 정부…무덤도 파헤쳐
아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이란 전역을 뒤흔든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지 머잖아 1년이 된다. 아미니의 죽음 이후 이란 전역에선 이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고 히잡 단속에 반대하는 거센 반정부 시위가 시작됐다. 이란 매체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지난 1월 기준 반정부 시위로 최소 522명이 사망했고 2만여명이 체포됐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정부의 강한 탄압으로 시위가 잦아든 뒤 저항의 싹을 뽑으려는 폭력적 억압은 더 강해지는 중이다. 시위 발발 1주년을 앞두고 시위가 재점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란 정부는 수개월 전부터 시위 희생자들의 가족을 집중적으로 괴롭히고 있다. 헹가우는 시위 기간 보안군에 의해 숨진 희생자의 유족 중 최소 72명이 최근 5개월 사이에 보안기관에 체포됐다고 5일 밝혔다.
지난해 10월 이란 쿠르디스탄주 사난다지에서 보안군의 곤봉에 맞아 숨진 16살 여성 사리나 사에디의 유족도 보안군의 괴롭힘을 피해 가지 못했다. 시위 발발 초기 숨진 사에디는 ‘제2의 아미니’로 불리며 시위가 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에디의 아버지 하셈 사에디는 지난 7월 재판에 넘겨져 “공공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징역 6개월형과 40차례의 채찍질을 선고받았다.
국제앰네스티는 사에디의 아버지처럼 이란 정부가 시위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의 유족을 괴롭힌 22건의 사례를 모아 지난달 21일 보고서 ‘시위 중 사망한 희생자 가족에 대한 괴롭힘은 끝나야 한다’를 냈다. 유족 괴롭히기는 주로 올해 4~8월께 쿠르드족이 밀집한 지역에서 이뤄졌다. 이란 당국은 유족들을 상대로 구타, 자의적 체포·구금, 부당한 기소, 불법 감시 등 다양한 인권 침해를 일삼고 있다. 희생자의 무덤을 훼손하고, 관을 알 수 없는 곳으로 이장하겠다고 위협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대중의 애도 물결까지 엄단하고 나섰다. 지난 7월 이란 중부 도시 아라크에서 지난해 반정부 시위 때 목숨을 잃은 지인을 추모하던 8명이 체포됐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시위 도중 보안군에 의해 사망한 스무살 청년 메르샤드 샤히디네자드의 묘지에서 추모 행사를 연 이들이었다. 요리사로 일하던 샤히디네자드는 집회 도중 체포돼 혁명수비대 정보국 구치소에서 곤봉으로 구타당한 뒤 끝내 목숨을 잃었다. 이 8명에게 이란 사법부는 “신성을 모욕하고 공공질서를 어지럽히고 체제에 대한 선전을 조장했다”며 6년의 징역형과 74대의 채찍형을 선고했다.
지난해 10월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이란 히잡 반대 시위를 지지하는 연대 시위에 나온 한 여성이 숨진 마흐사 아미니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히잡 단속 위해 인공지능(AI)까지 활용
탄압의 대상은 인권운동가나 언론인들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달 15일께 이란 북부 길란주에서 최소 12명의 인권운동가가 구금됐다.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이었다. 아미니 사건을 보도한 언론인들도 계속 이란 당국의 감시망에 있다. 아미니 사건을 적극 보도한 개혁 성향 매체의 여성 기자 두명이 지난 3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시위를 지지하는 발언을 해온 이란 명문 샤리프 공과대학 컴퓨터공학과 교수 알리 샤리피자르치는 지난달 26일 해임됐다. 학생들 6천여명과 샤리프대 교수진은 복직 청원을 내며 반발했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이란인권센터(CHRI) 하디 가에미 전무이사는 지난 1일 뉴욕타임스에 “이란 정권은 애쓰지 않으면 새로운 시위가 전국을 휩쓸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이란 연구원 타라 세페리 파르도 “체포될 수 있는 범죄의 기준이 예상치 못한 수준까지 올라갔다. 점점 커지는 국민들의 불만에 대해 그들(이란 정부)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 정권의 대응은 점점 더 첨단화·지능화되고 있다. 이란 정부는 도심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신고하는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모바일 앱을 개발했다. 이란 인터내셔널은 3일 ‘감시자’란 뜻을 가진 ‘나제르’(Nazer)란 이름의 앱은 정권에 협조하는 감시자들이 쉽게 당국에 협력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라고 전했다. 정부 기관에 협력하겠다고 나선 개인은 간단한 교육 과정을 수료한 뒤 앱 접근 권한을 부여받아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신고할 수 있다. 악명 높은 도덕경찰이 직접 현장에 가지 않아도 히잡 없는 여성을 신고할 수 있다. 신고자는 차량번호 등을 앱에 입력하고, 정부 기관은 차량 소유주에게 경고 문자 메시지를 발송하거나 때때로 차량을 압수하기도 한다. 이란 인터내셔널은 “신고된 차량과 차량의 위치 정보는 어떠한 확인 과정도 없이 감시자의 판단만으로 입력되기 때문에 앱의 오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며 “시민을 괴롭히는 새 접근 방식으로 인식된다”고 전했다.
더 나아가 이란 정부는 인공지능을 동원해 히잡 착용을 감시하는 새 히잡법의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이란 의회는 히잡 미착용이란 불법 행위를 한 자에게 5~10년의 장기 징역형을 내리는 내용의 새 법을 검토하고 있다. 기존 처벌 수위는 10일~2개월이었다. 벌금도 700배 이상 높이려 하고 있다. 미착용자를 상점에 들인 업주에 대한 처벌도 강화했다. 특히 70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법안은 히잡 미착용 여성을 식별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1일 시엔엔(CNN)은 이 법안에 “경찰이 고정식 또는 이동식 카메라와 같은 도구를 사용해 불법 행위자를 식별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만들고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전했다.
■ 저항의 도구 다양해지는 이란인들
반정부 시위에 대응하는 이란 정부의 잔혹함이 도를 넘어서자, 이란인들은 온라인 등을 통해 당국과 물리적 충돌을 피하면서 자유를 외치는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시위 중 보안군이 쏜 총에 눈을 잃은 젊은이들은 한쪽 눈에 붕대를 한 자신의 얼굴 사진을 저항의 문구와 함께 소셜미디어에 대거 올리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는 지난 4월 “이란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소셜미디어엔 보안군의 산탄총에 의해 한쪽 눈을 잃은 젊은이들의 셀카가 가득하다”고 전했다. 노래·춤 같은 문화 행동도 저항의 도구다. 42살 이란 대중 가수 메디 야라히는 유튜브 채널에 히잡을 선택하지 않는 여성들의 용기를 응원하는 노래와 영상을 올렸다. 그는 “스카프를 벗어라, 머리를 흘러뜨려라” “겁내지 마, 웃어라. 눈물에 맞서 시위하라”라는 가사와 함께 “‘여성·삶·자유’ 운동의 최전선에서 용감하게 싸운 내 고향의 여성들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구독자 4만명의 그의 유튜브 채널에는 4천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는 4일 “불법 노래를 불렀다”며 당국에 체포됐다.
지난 5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80회 베네치아영화제에 참석한 이란 여성 배우 베히 드자나티 아타이는 이란의 히잡 반대 운동 대표 구호인 ‘여성, 삶, 자유’가 쓰인 어깨띠를 두르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지난 2일 베네치아영화제 심사위원단은 무대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이란 여성들의 뒷모습이 그려진 대형 손팻말을 들고 관객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EPA 연합뉴스
이란인들은 세계 전역에서 저항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80회 베네치아영화제에 참석한 이란 여성 배우 베히 드자나티 아타이는 5일 이란의 히잡 반대운동 대표 구호인 ‘여성·삶·자유’가 쓰인 어깨띠를 두르고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이 문구가 보이도록 포즈를 잔뜩 취했다. 베네치아영화제의 심사위원단도 힘을 보탰다. 심사위원단은 지난 2일 무대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이란 여성들의 뒷모습이 그려진 대형 손팻말을 들고 관객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