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국제일반

‘관대한 복지’가 효율경제의 부작용 상쇄

등록 2011-05-19 20:56

스웨덴과 한국 비슷한 점/스웨덴과 한국 다른 점
스웨덴과 한국 비슷한 점/스웨덴과 한국 다른 점
[보편적 복지 스웨덴의 길] ⑥ 지속가능한 경제모델(경제정책)
한국처럼 대기업 의존·개방도 높지만
소득재분배·연대임금제 등 정책 통해
시장경제 승자가 패자 보상케 제도화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 국가로 손꼽힌다. 자본주의 체제는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불평등과 빈곤이 심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스웨덴은 높은 경제적 성과와 낮은 불평등도·빈곤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극도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제시스템을 갖고 있다. 높은 개방도와 대기업 집중도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스웨덴은 소규모 내수시장(인구 942만명)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우리나라처럼 수출주도형 발전을 추구했다. 무역의존도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70%에 이르렀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높은 수준이다. 에릭손·사브 등을 계열사로 거느린 발렌베리그룹의 시가총액이 전체의 40%를 넘을 정도로 대기업 의존도 심하다.

스웨덴 모델의 핵심은 이런 경제시스템이 낳는 부작용을 ‘관대한’ 사회보장제도로 상쇄한다는 점이다. 유하나 바르티아이넨 국가경제연구소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는 세계화 심화와 기술 진보에 따라 불평등이 심해지고 개인들의 삶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며 “스웨덴은 시장경제의 ‘승자’들이 ‘패자’들을 보상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제도를 만듦으로써 시장 개방과 기술 변화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보상장치가 세금을 재원으로 한 소득재분배 정책, 산업내 임금격차를 줄이는 연대임금제, 실업자들을 재교육시켜 생산성 높은 산업으로 재배치하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이다.

이런 정책 덕분에 스웨덴 국민들은 경쟁에 의해 자신이 낙오할 수도 있는 경제체제에 우호적인 태도를 형성했다. 스웨덴기업인연합이 창립한 보수적 싱크탱크인 팀브로의 호칸 트리벨 이사는 “국민들은 우리의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노조조차도 자유무역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학자들이 의아해하는 것은 이런 ‘인간적인’ 경제모델을 유지하기 위한 △과다한 세금 △관대한 사회보장 △강력한 노조라는 장치들이 경제적 성과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류 경제학계는 이런 요인들은 노동자의 근로와 기업의 투자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생각이 달랐다. 실업보험과 연금은 개인의 안정감을 높이고, 보육·교육·의료 보장은 인적자본을 축적시켜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생산성이 낮은 부문의 퇴출을 유도한 뒤 노동자들을 재교육시켜 생산성 높은 부문으로 이동시키는 노동시장정책에서 보듯이 복지시스템을 성장친화적으로 설계했다. 존 해슬러 스톡홀름대 교수는 “복지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복지지출 규모보다는 복지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높은 개방도와 대기업 집중 등 경제적 측면만 보면 스웨덴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낮은 복지지출과 보편성이 떨어지는 복지제도, 그리고 극심한 노동시장 양극화가 말해주듯 사회적 측면에서는 스웨덴의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대의 나라’로 손꼽히는 스웨덴과 달리, 우리나라가 점차 ‘분열의 나라’로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복지재원 확보하려면 정치적 용기 필요”

국가경제연 바르티아이넨 부장

국가경제연 바르티아이넨 부장
국가경제연 바르티아이넨 부장
스웨덴 국가경제연구소는 우리나라의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비슷한 구실을 하는 국책연구기관이다. 북유럽과 한국 경제를 비교하는 논문도 쓴 바 있는 이 연구소의 유하나 바르티아이넨(사진)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세계화의 심화는 각 나라의 불평등을 확대시킬 수밖에 없는데, 스웨덴 모델은 이런 세계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모델”이라고 말했다.

-높은 세율과 많은 복지지출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경제가 양호한 이유는?

“지금 수준의 세금 부담과 복지지출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보육, 교육, 의료 등 복지지출이 지속가능한 노동공급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경제성장에 기여한다. 또 여성들이 일터에 많이 나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됨으로써 고용률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세수도 늘어난다. 세금을 많이 걷어 복지를 늘리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인식이다.”

-이 모델이 지속가능하다고 보는가?

“스웨덴 모델의 핵심은 개방경제를 통해 세계화의 이점을 누리는 동시에 이에 따른 위험을 복지틀 통해 완화시킨다는 것이다. 세금으로 마련한 재원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복지혜택을 주기 때문에 이 시스템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더 지속가능하다. 사람들이 세금을 낼 의향이 있다면 다른 모델보다 더 지속가능하다고 확신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다른 국민들보다 많은 세금을 낼 의향을 갖고 있다.”

-보수당 정부는 스웨덴 모델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미래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기존 틀 속에서의 작은 조정이다.”

-한국에선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간 논쟁이 있다. 어느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보나?

“어느 모델은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다. 정치적 선호의 차이다. 나는 보편적 복지가 더욱 평등지향적이고 정치적으로 지속가능하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의회에서 재정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만성적 재정적자에 빠질 수 있다. 미국과 그리스의 현재 모습이 그렇다. 복지 재원이 세금을 통해 확보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여기에는 정치적 용기가 필요하다.”

스톡홀름/글·사진 박현 기자

“성장과 평등, 동시에 성취할 수 있어”

사민당 올레 토렐 의원

사민당 올레 토렐 의원
사민당 올레 토렐 의원
1932년 첫 집권 이후 44년간 집권하면서 스웨덴 복지모델의 기틀을 닦았던 사회민주당은 2006년과 2010년 두 번의 총선에서 연거푸 패배했다. 사회민주당 올레 토렐(사진) 의원을 만나 선거 패배 이유와 사민당이 추구하는 정책을 들어봤다.

-연속 패배의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2006년 선거 때는 12년 장기 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변화 욕구가 컸다. 보수연합이 복지지출을 줄이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중도 성향의 정책을 내놓은 것도 주된 원인이었다. 지난해는 현 정부가 세계 금융위기 때 성공적으로 경제를 관리하고, 사민당 당수의 대중적 인기가 떨어지고, 핵심 지지층인 블루칼라가 줄어든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보수연합이 기존 복지지출을 줄이지 않으면서 세금도 인하하겠다고 한 것도 먹혀들었다. 일반 국민들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복지프로그램도 좋아하고 세금인하도 좋아한다.”

-사민당의 패배를 스웨덴 복지모델의 종언으로 보는 해석도 있는데.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스웨덴 복지모델의 승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보수연합이 선거에서 복지지출을 줄이지 않고 기존 복지모델을 포용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만큼 현재 모델이 건재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보수당과 사민당의 정책 차이는 뭔가?

“우리는 성장과 평등을 동시에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평등이 성장의 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역사에서 이를 증명해왔다. 우리는 또 세금을 기반으로 한 복지국가 모델을 통해 연대를 추구한다. 반면 보수당은 근본적으로는 규제 완화와 세금 삭감,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구한다. 2006년 보수당 집권 이후 소득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 아마도 지난해 선거 직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없었다면 우리가 이겼을 것이다.”

스톡홀름/박현 기자

궁금합니다

스웨덴은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우리나라 보수언론들은 스웨덴 모델은 우리 현실에 적용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복지병을 낳는다거나 인구가 너무 적다는 점 등을 논거로 든다. 그러나 미국에선 대표적 경제학자들이 스웨덴 모델을 탐구해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33명 가운데 18명이 연구원으로 몸담았던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두 차례에 걸쳐 경제·사회정책 전반을 집중 분석했다. 1차 연구는 1993년부터, 2차는 2005년부터 각각 3년 간 진행됐다. 흥미로운 것은 1차 연구에서는 “스웨덴 모델은 더는 지속하기 어렵다”는 데 무게를 뒀으나, 2차 연구에서는 “복지에 상당한 자원을 투자해도 성공적인 시장경제가 가능하다”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1960년대 ‘빈곤과의 전쟁’에서 실패한 데 반해 스웨덴은 이를 성취한 것이 인상깊었다고 연구원들은 보고서에서 밝혔다. 연대임금제와 함께, 높은 세금부담에도 노동윤리가 작동하고 있는 점도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