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이 피살 직후 이송된 곳으로 알려진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 병원에서 14일 경비원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쿠알라룸푸르/AFP 연합뉴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의 피습 소식을 외신도 긴급 뉴스로 타전했다. 특히 말레이시아 현지 외신은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경찰의 발언을 인용해 사건 당시의 현장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현지 온라인 매체 <더 스타>는 14일(현지시각) 셀랑고르주 범죄 조사국의 파드질 아흐마트 부국장의 발언을 인용해 “김정남은 13일 오전 9시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10시에 탑승할 마카오행 항공편을 기다리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여성 두 명에게 공격을 당했다”며 “이후 (김정남은) 출국장에 있던 안내 직원에게로 가 ‘누군가가 나를 잡고 얼굴에 액체를 뿌렸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김정남이 출국을 위해 항공권 키오스크(무인발매기)를 사용하고 있던 도중에, 여성 두 명이 김정남을 붙잡고 얼굴에 화학 물질을 뿌렸다는 것이다. <더 스타>는 이 액체를 독극물이라고 보도했지만, 아직 정확한 액체 종류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이 매체는 “극심한 두통을 느낀 김정남은 공항 내 치료소로 옮겨졌다가, 상태가 위중해 푸트라자야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에 숨졌다”고 전했다.
<더 스타>는 “김정남은 지난 6일 마카오에서 말레이시아로 입국했고, 이날 다시 마카오로 출국하려던 중에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13일 오전 9시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피습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말레이시아의 현지 매체는 공항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포착된 한 여성을 경찰이 쫓고 있다고 보도했다. 폐회로텔레비전에 기록된 시간은 13일 오전 9시 26분께다. 연합뉴스
한편, 현지 통신사인 <베르나마>가 전한 아흐마트 부국장의 설명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아흐마트 부국장은 <베르나마>와의 인터뷰에서 “김정남이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한 여성이 뒤에서 다가왔고, 김정남의 얼굴에 액체가 묻은 천을 감쌌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아흐마트 국장은 인터뷰에서 “김정남은 액체로 인해 눈에 화상을 입은 채로 도움을 청하려다 간신히 공항 안내데스크까지 갔고, 푸트라자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고 말했다.
현지 경찰은 문제의 여성들을 쫓고 있으나, 행방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용의자로 추정되는 여성 1명의 모습이 공항의 폐회로텔레비전에 포착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흰색 상의에 무릎 위 길이의 치마를 입고 있다.
수사 당국은 15일(현지시각) 부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아흐마트 부국장은 “북한 정부로부터 시신 인도 요청을 받았지만, 먼저 부검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요 외신들도 대부분 말레이시아 현지 언론을 보도 내용을 인용해 김정남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김정남은 공항에서 생년월일이 1970년 6월10일이고, 김철이라는 이름의 가짜 여권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김정남의 실제 생일은 1971년 5월10일이다. <비비시>는 “김정남은 과거에도 암살 대상이 된 적이 있었으며, 북한은 암살이나 공작, 납치를 위해 해외로 공작원을 보냈다”고 했다.
김정남의 피습 소식을 긴급 뉴스로 전한 외신들은 대부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소행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취임한 뒤 약 340여명의 고위 관료들이 숙청당했다고 전하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주변 인물들을 대거 숙청하고 있는 시기에 김정남이 피살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뉴욕 타임스> 북한 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해 “최근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가 경색되면서, 김정은은 중국이 비교적 손쉽게 통제할 수 있고, 자신의 교체 대상으로까지 고려되고 있었던 김정남의 암살을 지시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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