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각)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맨 오른쪽)가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한 첫 기자회견 자리에서 자료를 건네받고 있다. 베를린/AFP 연합뉴스
11일 오후(현지시각)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 확산에 대해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공식 선언하면서, 심리적 충격과 위기감도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국경 폐쇄의 실효성 논란도 그치지 않는다.
집회와 여행을 통제하고 국경 문을 걸어 잠그는 나라들은 계속 늘고 있다. 반면 국경 폐쇄의 무익함과 부작용을 강조하며 국경을 개방하고 있는 나라들도 많다. 독일과 프랑스가 그 선두에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이성적인 공포와 근거 없는 포기”에 사로잡히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나섰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인류의 대응 과정에서 ‘이성’과 ‘패닉’이 맞서는 모양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처음으로 한 기자회견에서 역학 전문가들의 예측을 인용해 “독일 인구의 60~70%까지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데페아>(dpa) 통신은 “메르켈 총리가 ‘아직 최악은 오지도 않았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메르켈 총리의 이런 언급은 ‘위기감 증폭’이 아니라 ”우리의 연대와 상식, 서로에 대한 마음이 시험대에 올랐으며, 우리가 이 시련을 잘 통과하기를 바란다”고 격려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날 현재 독일은 확진자가 세계에서 7번째로 많은 1966명(사망 3명)으로 집계됐다.
메르켈 총리는 그러나 “우리 독일인은 국경 폐쇄가 지금의 도전에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고 본다”며, “현재 상황이 매우 유동적이고 예측불가능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옌스 스판 보건장관도 “국경 폐쇄가 현 사태를 멈추지는 못할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유럽 대다수 나라들과 달리 독일은 아직 학교 휴교령도 내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의 “인구 60~70% 감염 가능성” 언급은 곧장 역풍을 만났다. 독일과 접경한 체코의 안드레이 바비스 총리는 메르켈 총리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패닉을 조장한다고 비난했다고 현지 <체테카>(CTK) 방송이 보도했다. 바비스 총리는 “(메르켈 총리의) 그런 발언이 패닉을 경계하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하지만 독일의 상황은 언급하고 싶지 않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11일(현지시각) 세계보건기구(WHO)의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오른쪽)이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을 ‘팬데믹’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제네바/신화 연합뉴스
스위스는 이날 이탈리아 국경의 소규모 국경통과소 9곳을 폐쇄하고, 양국을 오가는 차량들은 검역관이 배치된 대형 통과소를 이용하도록 했다. 이탈리아와 접경한 내륙 국가인 오스트리아도 이탈리아를 오가는 모든 여객 열차의 운행을 중단했다. 화물 열차의 운행은 유지된다.
중동에선 이란·바레인·카타르에 이어 확진자 수 4위인 쿠웨이트는 아예 모든 사람의 출입국을 원천봉쇄하는 초강수를 뒀다. 쿠웨이트 정부는 13일 자정부터 2주일 동안 모든 항공편의 출입국 금지, 시장·카페·헬스클럽 등 공공장소의 다중 모임 금지, 전국 노동자들의 임시 휴가를 결정했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보도했다.
코로나19 확산은 중미 지역 빈곤국들의 문턱까지 높이고 있다. 아직까진 코로나19 청정국인 엘살바도르는 이날 “향후 30일간 모든 외국인의 입국 금지”와 “21일간 모든 학교 휴교령”을 선포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역시 ‘확진자 제로(0)’인 과테말라도 “12일부터 모든 유럽인의 입국을 금지하고, 유럽을 다녀온 내국인의 14일 의무 격리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의 앤서니 파우치 소장은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느냐”는 캐럴린 멀로니(민주·뉴욕) 위원장의 질문에 “그렇다. 사태는 더 악화할 것이다”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세계보건기구의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팬데믹’ 선언을 발표하면서 “단순히 확진자 및 감염국 수만 보는 것은 전체 상황을 말해주지 못한다. 여러 나라가 바이러스가 통제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며 “비상대응의 국제 공조”를 강조했다.
12일 현재 코로나19 확산 현황을 보면, 세계 103개 국가에서 누적 확진자 수가 12만6000여명, 사망자는 4630명을 넘어섰다. 남극과 북극을 뺀 세계 6개 대륙 모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다. 확산 범위와 속도도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나 치료를 받고 회복했다고 보고된 사례가 6만8000여 건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누적 감염자의 절반이 넘는 수치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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