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각) 밤 코로나19와 관련해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앞으로 30일 동안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모든 여행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방송 화면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해 ‘30일간 유럽발 미국 입국 금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선언하고, 미국 등 세계 증시가 연일 폭락하는 상황에서 내놓은 초강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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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각)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나는 미국인의 건강과 안녕을 보호하고 새 확진자가 우리 나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몇가지 강력하지만 필요한 조처를 취하기로 했다”며 “앞으로 30일 동안 유럽에서 미국으로 오는 모든 여행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처는 13일부터 시행되며, 적절한 검사를 거친 미국인들은 이 조처에서 제외된다. 영국도 예외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직후 미국 국토안보부는 누리집에 “미국 도착 전 14일 이내에 유럽 국가들에 있던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적용 대상이라며 해당 나라들을 명시했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스위스 등 유럽의 국경개방조약인 솅겐조약에 가입한 26개국이 대상이다. 입국 금지는 미국이 지난 1월과 2월 중국과 이란에 잇따라 취한 것과 같은 조처로, 차이라면 유럽에 대해서는 30일이라는 시한을 설정한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에 대한) 제한은 현장 상황에 따라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은 이날 현재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이탈리아 1만2400여명을 비롯해 10여개 나라에 걸쳐 약 3만2천명에 이르는 등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확산 속도를 보이고 있다. 사망자도 이탈리아 800여명 등 총 1300명을 넘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중국에 대해서는 “이들 국가의 상황이 개선됨에 따라, 우리는 현재 시행 중인 제한과 경고를 일찍 해제할 가능성을 재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가 한국에 내린 ‘여행 재고’나 대구에 국한해 발령한 ‘여행 금지’ 권고를 완화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날 세계보건기구의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선언했다.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한 것은 1968년 홍콩독감(H3N2)과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A(H1N1) 사태 이후 세번째다. 미 존스홉킨스대 시스템과학공학센터 집계를 보면 이날까지 코로나19는 세계 114개국에 걸쳐 확진자 12만6천여명, 사망자는 4600여명에 이른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발 미국 입국 금지 조처는 특히 미국 내 불안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나왔다. 이날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전날보다 200명 이상이 증가한 1312명(존스홉킨스대 기준)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도 38명으로 늘었다. 수도인 워싱턴디시(D.C.)도 확진자가 10명으로 늘어나자 이날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은 이날 하원에 출석해 “사태는 더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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