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약국 앞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의료용품 구매를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섰다. EPA 연합뉴스
미국의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는 베네수엘라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중국에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나섰다. 우고 차베스 정권 시절부터 활용해 온 ‘차관 대 원유’ 맞바꾸기 방식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26일 “국제유가 하락과 코로나19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중국 쪽과 자금 지원을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며 “베네수엘라 쪽은 차베스 정권 시절인 15년여 전에 체결된 ‘원유-차관’ 맞교환 계약 개정을 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양쪽의 협상은 베네수엘라 쪽의 요청에 따라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3일 미란다주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 2명이 발생한 베네수엘라에선 23일까지 확진자가 모두 84명까지 늘었다. 미국의 일방적 제재로 산유국임에도 정전 사태가 빈발하는 데다, 만성적인 의약품 부족 속에 공공의료 시설조차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등 베네수엘라는 코로나19에 극도로 취약한 상황이다. 중국은 지난주부터 베네수엘라에 코로나19 방역용품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베네수엘라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지난 17일 국제통화기금(IMF) 쪽에 긴급 차관 50억달러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 쪽은 “차관 요청을 고려할 상황이 아니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대표성에 논란이 있기 때문”이라며, 불과 몇시간 만에 이를 거부했다. 국제통화기금의 이같은 태도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정부를 미국이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지난해 1월 마두로 대통령이 부정선거로 당선됐다며, ’임시 대통령’을 자임하고 나선 바 있다. 미국은 즉각 이를 승인하고, ‘과이도 정부’를 베네수엘라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규정하고 나섰다. 이후 미국은 마두로 정부 압박을 위해 지난해 8월 자국 내 베네수엘라 자산을 모두 동결시키는 등 제재의 수위를 높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초 과이도 의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로이터>는 “베네수엘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에 차관을 요청한 시점에 중국과 협상을 개시했다”고 전했다. 마두로 정부는 자금 조달과 함께 원유 공급의 대가로 식량 수입도 지속하기를 원하고 있다. 지난해 4월~12월 베네수엘라가 수입한 식량의 40%가 중국산이다. 통신은 내부 소식통의 말을 따 “현 상황에선 중국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안토니우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은 24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공개서한을 내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베네수엘라·이란·북한·쿠바 등에 대한 제재 유예를 촉구하고 나섰다. 구테헤스 총장은 “지금은 배제가 아닌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미첼 바첼렛 유엔인권고등판무관도 “한 나라의 방역 노력을 방해하는 것은 모든 나라의 위협을 높이는 꼴”이라며, 식량·의약품·방역장비 등에 대한 제재 유예를 촉구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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