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 사이에서 코로나19이 확산되고 있는 미 핵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 호
미국 군사력의 상징이자 핵심인 핵항공모함에도 코로나19가 확산됐다. 대응을 놓고 현장과 지휘부가 갈등하는 등 코로나19가 미군의 전력과 전투태세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 해군의 핵항모 ‘유에스에스(USS) 시어도어 루스벨트’호에서 승무원 사이에 코로나19 감염이 번졌고, 함장이 지난 30일 국방부에 대책을 호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 일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31일 이 항모의 선장인 브렛 크로저 대령이 국방부에 편지를 보내 “‘승무원들의 코로나19 감염 때문에 전 승무원의 격리를 허락해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루스벨트호의 승무원 4천여명 중 적어도 100명 이상이 감염됐다”고 덧붙였다. 항모는 현재 괌에 정박하고 있다.
크로저 함장은 “정치적 해결책”을 촉구했다. 그는 “전시도 아닌데 해군 병사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의 가장 신뢰할 자산인 해군 병사들을 적절히 돌볼 수 없다”며 승무원 전원의 하선과 격리를 요청했다. 아울러 “전함의 본질적인 공간 제한 때문에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질병의 전파가 진행 중이고 가속화되고 있다”고 절박함을 호소했다. 그는 또 “배치된 미군 항모에서 승무원 다수를 하선시키고 그들을 2주간이나 격리시키는 것은 특단의 대책으로 보인다”면서도 “이는 감수해야만 할 위험이다”라고 강조했다.
토머스 모들리 해군장관 직무대행은 1일 <시엔엔>(CNN) 회견에서 크로저 함장이 요구하는 승무원 전원 하선과 격리를 거부했다. 모들리 장관 직무대행은 지난 며칠 사이에 루스벨트호에서 감염된 병사들을 하선시켜 시설로 옮겼다며 “괌에는 현재 충분한 병상이 없어 정부에 호텔이나 천막 시설을 만들 수 있는지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우리는 그 배의 현장 지휘부와 의견이 다르다”며 “핵발전소를 가동해야 하는 등 그 배에서 우리가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미군 전력의 핵심인 항모 가동에 차질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합동참모본부의 제프 탤리어페로 부작전부장도 “그 배가 오늘 전투로 출항해야 한다면 당장 출항할 준비가 돼야 한다”고 말해, 승무원 전원 하선에 따른 항모 운영 중단이 불가함을 강조했다.
루스벨트호에서는 일주일 전인 지난 25일 3명이 확진자가 나오면서 코로나19 전염이 확인됐다. 이틀 뒤 확진자는 25명으로 늘었고, 해군 쪽은 현재 비공식적으로 70명이 감염됐다고 전하고 있다. 밀집된 선상에서 코로나19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 세계 최강의 전함이 코로나19의 온상이 된 유람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전세계에 배치된 미군의 전력과 훈련에도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3월31일 현재 미군에서 근무하는 복무자 716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지난 30일에는 첫 사망자가 나왔다. 미군은 한국, 북극해, 중동에서 실시할 연합훈련을 3월에 이미 취소했고, 코로나19가 확산된 한국과 이탈리아에는 새로운 병력 배치를 중단한 상태라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동아시아의 최대 미군기지가 있는 오키나와에서는 기지의 일시적 폐쇄도 고려하고 있다. 오키나와 기지 주변에 코로나19에 취약한 노령층 주민이 많이 살아 현지인 군무원의 출입을 막기 위한 조처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