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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누굴 살리느냐’ 묻거든…“모두”를 택할 의료진들

등록 2020-04-07 20:44수정 2020-04-08 15:15

[코로나19 100일] 전 세계 의료인들 ‘눈물겨운 사투’
지난 3일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주 베르가모의 한 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코로나19와 맞서 싸우는 의료인들이 간이 보호장구를 착용한 채 주먹을 맞대는 인사를 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베르가모/AFP 연합뉴스​
지난 3일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주 베르가모의 한 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코로나19와 맞서 싸우는 의료인들이 간이 보호장구를 착용한 채 주먹을 맞대는 인사를 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베르가모/AFP 연합뉴스​
4월8일. 지난해 마지막날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발병이 공식 보고된 지 꼭 100일째를 맞는 날이다. 지난달 1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통상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선언으로 알려진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1948년 창설 이래 세 번째, 1999년 현행 전염병 경보단계 절차가 만들어진 뒤로는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H1N1) 유행 이후 두번째다.

사태는 엄혹하다. 7일 저녁(한국시각) 전 세계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36만명, 사망자는 7만6000명을 넘어섰다. 앞으로도 최소 몇 주 동안 코로나19 감염과 사망자가 계속 늘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한국에서는 지난 2월 이성구 대구시의사회 회장이 쓴 호소문 한 장에 의료진 350여명이 한 달음에 코로나19 진료 현장으로 달려갔다. 경북 경산에서는 지난 3일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한 내과의사 허영구씨가 폐렴 증세 악화로 숨지기도 했다.

지난 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가 제2차 대전 이후 최악의 글로벌 위기를 맞고 있다”며 국제적 연대와 공조를 호소했다. 폭발적인 바이러스 확산을 감당하지 못하는 의료 환경에서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려는 세계 의료인의 헌신과 분투는 눈물겹다.

전쟁 같은 의료 현장…“환자 선택 내몰려…감정 억눌러야”

지난 5일 뉴욕주립대 병원 응급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이 현장을 지켜본 40분 동안에만 환자 6명에 심박정지가 왔고 그중 4명이 속수무책으로 숨졌다. 그 사이 환자의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응급 상황인 ‘코드 99’ 벨이 다섯 번 울렸다. 약 400개 병상의 환자 모두가 가쁜 숨을 붙잡거나 끝내 마지막 호흡을 잃는 코로나19 감염자다. 그럼에도 끝없이 밀려드는 환자들로 의료진은 숨 돌릴 틈이 없다.

<시엔엔>은 의료진이 사망자의 주검을 수습하고 병상을 소독하자마자 다른 환자가 기침을 하며 산소마스크를 쓴 채 눕혀진다고 전했다. 응급 전문의 신시아 벤슨은 “이토록 단기간에 이런 정도의 질병과 고통과 치명률에 대응하는 건 감정적으로도 힘들다. 우린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털어놨다.

중증 호흡기 질환 치료의 필수장비인 인공호흡기도, 전문 의료인력도 태부족이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뉴욕에서만 3만개의 인공호흡기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인공호흡기가 만능인 것도 아니다. 이 병원 응급의사 로렌조 팔라디노는 코로나19 환자들의 인공호흡기 생존율이 다른 폐질환 환자보다 낮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주 도시 브레시아의 한 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의사들이 코로나19 중증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브레시아/EPA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주 도시 브레시아의 한 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의사들이 코로나19 중증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브레시아/EPA 연합뉴스
밀려드는 중환자들 앞에서 의사가 누구부터 살려야 할지 선택에 내몰리는 것은 너무도 비인간적인 비극이다. 유럽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스페인·이탈리아·영국 등에서 그런 사태가 눈앞에 닥쳤다.

영국 의료인협회의 존 치점 의료윤리위원장은 지난주 현지 일간 <가디언> 기고에서 “협회가 (치료 우선순위의) 지침을 만들고 있다”며 “슬프지만, 그런 지침이 윤리적 결정에 엄청난 도전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며 결정의 잔인함과 도의적 고통을 덜어줄 수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아무도 그런 결정을 하기를 원하지 않지만 의료자원이 턱없이 부족할 경우 결정을 해야만 할 것”이라며 “향후 몇 주안에 실제로 그런 결정이 요구되는 힘든 상황이 오면 ‘분노’와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 했다.

매일 죽음 목격”…의료인 트라우마

영국 에든버러의 정신과 의사 리베카 로런스는 최근 트위터에 “엉뚱한 말을 하고 싶다. 내가 의사가 아니었다면 이런 끔찍한 상황에 닥치지 않았을 텐데. 자가격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쓴 뒤, 맨 마지막에 “미안합니다”라는 문장을 덧붙였다. 삶과 죽음이 뒤범벅된 현장에서 의료인들이 겪는 당혹감과 극심한 트라우마(심리적 충격)를 보여주는 한 사례일 뿐이다.

미국 스탠포드 의대의 아거번 샐리스 박사와 제시카 골드 워싱턴대 교수(정신의학)는 지난주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 공동 기고에서 “로런스가 ‘코로나 팬데믹’에 맞닥뜨린 의료인이 공포감을 표시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사과를 한 것 같다”며 “의사들이 영웅인 동시에 인간일 수는 없다”고 썼다.

지난 6일 미국 뉴욕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진 한 희생자의 주검이 실려 나오고 있다. 뉴욕/신화 연합뉴스
지난 6일 미국 뉴욕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진 한 희생자의 주검이 실려 나오고 있다. 뉴욕/신화 연합뉴스
이들은 “대다수 의사들은 환자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게 부적절하거나 나약하며 전문가답지 않다는 ‘감정 절제’를 교육 받는다”며, 의료인이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과정에서 겪는 트라우마에 주목했다. “우리(의사)도 분노, 슬픔, 공포, 걱정과 같은 거대한 감정의 물결이 있으며, 단지 의사라는 직업 때문에 그걸 억누른다”는 것이다.

지난달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주의 한 병원에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간호사 2명이 두려움과 바이러스 전파에 대한 우려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탈리아 의사 노조의 카를로 팔레르모 위원장은 “의료진의 스트레스를 말로 할 수 없다”며 “의료 현장의 최전선에서 매일 죽음을 목격하고, 감염됐을지도 모를 누군가와 함께 일하며, 며칠 뒤 그가 집중치료실에 있거나 숨지는 사태를 보는 이(의 심리상태)가 이해된다”고 말했다.

■ “코로나와 싸울 무기를 달라”…헌신적인 의료인들

코로나 팬데믹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보호장구 및 의료장비 쟁탈전’ 같은 인간의 민낯도 드러냈지만, 동시에 인간의 숭고한 인류애와 연대도 빛나게 하고 있다. 백신과 치료약은커녕 의료용 마스크와 보호장구조차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 의료인들은 코로나바이러스와 맞서는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지난 5일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의료인들이 보호장구 부족 탓에 의료용 쓰레기봉투와 비닐 앞치마, 빌려온 스키 고글 등을 착용하고 환자들을 돌보는 현실을 보도했다. 잉글랜드의 한 병원 의사 로버츠(가명)는 “집중치료실은 코로나19 환자로 가득찼고, 암환자 수술까지 포함해 ‘덜 위급한’ 모든 치료가 취소됐다”며 “하루 13시간씩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들이 보호장구를 개인이 임시변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주 영국 잉글랜드의 한 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의사들이 병원 폐기물 비닐봉투로 방호복을 만들어 입고 있다.<비비시>(BBC) 누리집 갈무리
지난 주 영국 잉글랜드의 한 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의사들이 병원 폐기물 비닐봉투로 방호복을 만들어 입고 있다.<비비시>(BBC) 누리집 갈무리
의료 장비가 태부족한 현실은 환자뿐 아니라 의료인력의 안전까지 위협한다. 지난 주 미국에선 간호사 노조인 전국간호사연합(NNU)의 주도로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미주리, 텍사스,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 등 6개 주의 병원 15곳에서 소속 간호사들이 의료장비 보급과 의료인력의 안전을 요구하는 연대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그리스, 멕시코, 콜롬비아 등 다른 여러 나라들에서도 의사와 간호사들이 보호장구 확보를 촉구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목숨조차 담보할 수 없는 최악의 의료 상황 속에서도, 세계 각국 ‘히포크라테스’들의 직업정신은 빛을 발하고 있다. 이미 은퇴한 의료인들의 자원봉사도 봇물이 터졌다. 최대의 코로나 감염국인 미국에서도 가장 상황이 위중한 뉴욕에서만 은퇴했거나 휴직 중이던 의료인이 8만명 넘게 의료 현장으로 복귀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2일 전했다. 병원에서조차 의료용 마스크가 부족해 개인 물품을 챙겨오기도 한다. 유럽 각국에서도 같은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은 프랑스 등 인접국의 환자들을 자국에 데려와 치료하고 있다.

지난 2일 미국 뉴욕 브롱크스의 한 병원 앞에서 간호사노조 소속 간호사들이 “보건 종사자와 응급 의료인들을 보호하러”고 쓴 손팻말을 든 의료용 보호장구 확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지난 2일 미국 뉴욕 브롱크스의 한 병원 앞에서 간호사노조 소속 간호사들이 “보건 종사자와 응급 의료인들을 보호하러”고 쓴 손팻말을 든 의료용 보호장구 확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의료인 감염 “패닉”…스페인·이탈리아만 3만명

코로나바이러스는 의사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선 환자가 폭증하면서 병상과 인공호흡기는 물론 의료용 마스크와 가운도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인들의 병원 감염은 이미 현실이 됐다. 의사·간호사도 감염되면 격리치료를 받아야 하므로 가뜩이나 부족한 의료인력 부족을 가중시킨다.

의료인의 감염에도 비상이 걸렸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지난 2일,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의 조사 결과 자국내 의료인 감염이 2300명을 넘었다고 보도했다. 연구소는 “이 수치도 저평가된 것으로, 실제 감염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가 중대형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들만 대상으로 한 까닭에, 개인의원이나 진료소, 은퇴했다가 진료 현장에 복귀한 의료인, 양로원, 외래환자 전문병원의 의료 종사자들의 사정은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시립병원도 지난달 말까지 200명이 넘는 의료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간호사 2명이 사망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한 의사는 “병원이 마치 배양접시 같다”고 했다. 통상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의료인들조차 병원마다 응급실과 집중치료실에서 동료들의 감염이 잇따르자 패닉에 빠졌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미국에 이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세계 두 번째와 세 번째인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사정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난 4일 스페인 보건부는 보건의료 종사자 1만 8324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발표했다. 이 나라 전체 감염자의 15%에 이른다. 스페인은 외국의 의료 인력 356명에 더해 의대와 간호대 학생들까지 긴급수혈했지만 역부족이다. 이날 이탈리아의 국립 보건연구소와 의사협회도 의료인 1만1000여명이 감염되고 73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했다.

코로나19의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도 3000명이 넘는 의료진이 감염되고 14명이 숨졌으며, 아랍·이슬람권의 최다 인구국인 이집트도 17명의 의료인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지난 4일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이날까지 일본에서도 코로나19에 감염된 의료 종사자가 최소 153명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앞서 2일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스코틀랜드에서만도 국민건강서비스(NHS) 소속 의료인 9719명이 감염, 의심증세, 예방적 자가격리 등 ‘코로나19’와 관련해 의료 현장에서 비켜나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5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병원 의사들이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에 박수로 화답하고 있다. 마드리드/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5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병원 의사들이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에 박수로 화답하고 있다. 마드리드/로이터 연합뉴스
전세계적인 ‘감염병 인종차별’ 분위기 속에 사회적 소수자 출신의 헌신도 돋보인다. 지난 1일 영국 사회는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첫 희생자가 된 4명의 의사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추모 분위기였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보도했다.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가 아프리카·중동·아시아 등 외국 출신의 무슬림 이주자들로, 유럽에선 혈통과 종교적 소수자들이었다. 영국 이슬람의료인협회의 살만 와카르 사무총장은 “그들은 헌신적인 가장이자 의사였으며,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궁극적인 희생 정신을 보여줬다”고 헌사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는 전체 고용 의료인의 40.1%가 흑인 및 혈통적 소수자 그룹(BME)이다.

“차별,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 없는 국제 연대를”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두려움이 더 절망적인 법이다.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이 그렇다. 그러나 일부 국가들에선 어렴풋하나마 희망의 징조도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발원국인 중국은 6일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사망자 ‘0’명을 기록했다. 이날 신규 확진자 32명도 모두 국외 역유입자로, 본토 내 발생은 지난달 중순 이후 3주 넘게 한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7일 현재 미국 다음으로 누적확진자가 많은 스페인(약 13만7000명)도 신규 확진과 일일 사망자는 나흘 연속 감소세다. 우리나라도 최근 2주 동안 신규 확진자 1294명의 52%가 해외 유입 및 관련자로, 국내 일일발생은 두 자릿수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국가에서 감염자의 완치 판정 이후 재감염 사례가 속출하고 집단감염 우려가 가시지 않으면서, 당분간은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속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2일 유엔 총회는 193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코로나19의 통제, 경감, 퇴치를 위한 국제협력과 다자주의가 요구된다. (…)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어떤 형태의 차별,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도 설 자리가 없다”며 국제 연대를 강조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9일에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회의를 열어 코로나19 대응의 국제 공조를 논의할 예정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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