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와중에 부활절을 맞은 12일(현지시각)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 바티칸의 문 닫힌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일반 신도들에게 온라인으로만 공개된 부활절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바티칸/로이터 연합뉴스
기독교 최대 성일 부활절을 맞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가 텅 빈 성베드로 대성당과 대광장에서 선포됐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대중이 참여하는 미사가 중단된 가운데 나온 교황의 메시지는 2013년 즉위 이후 가장 절박하게 정치를 겨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일 정오(현지시각) 시작된 부활절 미사에서 전세계인의 격리와 이동 제한에 의한 “고독한 부활절”은 “희망의 전염”이 돼야 한다며 연대와 단결을 호소했다. 아울러 코로나19와 그에 따른 경제적 재앙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국제 제재의 완화, 가난한 나라에 대한 부채 경감, 모든 분쟁에서의 휴전 등 전세계 정치 지도자들을 향해 인도적 결단을 촉구했다.
지난해 성베드로 광장에는 7만여명이 운집했다. 이날 부활절 미사는 성베드로 대광장과 대성당을 가득 메운 신도들 대신에 상징적인 20여명의 신도만이 참석했다. 미사는 인터넷 동영상과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됐다.
교황은 “전세계가 고통받는 코로나19 대유행에 맞서 단결해야만 하는 지금, 무관심은 설 자리가 없다”며 “지금은 자기중심적인 시기가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차별 없이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연대를 촉구했다. 이어 “무관심과 자기중심적 사고, 분열과 망각은 우리가 이 시간에 듣고 싶은 말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이런 말들을 영원히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를 위해 각국 정치인과 정부들에 자기중심성을 타파하고 위기를 돌파할 것을 촉구했다. 교황은 일부 국가를 겨냥한 국제적 제재 완화, 시리아 등 세계 모든 구석에서 진행 중인 분쟁 중단, 이주민과 난민 지원 등을 언급했다.
특히 교황은 유럽 지역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지 합의하지 못하면 유럽연합(EU)이 붕괴의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로나19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코로나 채권 발행’ 등 경제 해법을 놓고 심각한 분열을 겪는 유럽연합의 상황을 우려한 발언이다. 교황은 “사랑하는 대륙”인 유럽이 2차대전 이후 보인 연대의 정신으로 다시 일어날 시간이라고 촉구했다. 그는 “유럽연합은 현재 자신의 미래뿐 아니라 전세계의 미래가 걸린 신기원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2차대전 이전에 존재했던 경쟁 관계가 코로나19 대유행의 결과로 다시 살아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날 부활절 전야 미사에서도 교황은 유독 희망을 강조했다. 교황은 “오늘 밤 우리는 우리에게서 결코 빼앗아갈 수 없는 근본적인 권리, 희망의 권리를 얻는다”며 “지금은 부활절의 희망을 더욱 말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두려워 말고, 공포에 굴복하지 말자. 이는 희망의 메시지이며, 오늘 우리에게 말하는 메시지다. 하느님이 바로 오늘 밤 우리에게 반복하는 말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신도들에게 “죽음의 시대에 희망과 생명의 전도사”가 되라고 고취했다.
교황이 인터넷 앞에서 부활절 전야 미사를 대체한 것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각국의 부활절 풍경도 바뀌었다. 파나마의 대주교는 헬리콥터를 타고 강론과 축복을 내렸다. 필리핀 성당은 십자가에 입을 맞추는 의식을 하지 말라고 신도들에게 촉구했다. 현재 코로나19가 가장 만연한 뉴욕시의 대성당은 신도들의 의자가 병상으로 대체되며 아예 임시병동으로 바뀌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