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마이크 펜스 부통령(뒤)과 함께 백악관 로즈가든으로 나서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처 실패의 책임을 돌리며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한 자금지원 중단을 선언한 데 대해 세계적으로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 한복판에서, 이를 이끌고 있는 국제기관의 힘을 빼 세계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럽연합(EU)의 주세프 보렐 외교안보대표는 15일 트위터에 “세계보건기구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순간에 이런 행동(자금 지원 중단)을 정당화할 어떤 이유도 없다”고 유감을 표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전날 성명에서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세계의 노력에서 세계보건기구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미국의 자금지원이 계속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안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무분별하고 위험하며 불법적”인 결정이라며 “즉각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공세를 퍼부었다. 빌 게이츠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 이사장은 트위터에 “세계보건기구가 멈추면 다른 기구들이 대체할 수 없다”며 트럼프의 결정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제2차 세계대전 뒤인 1948년 유엔의 보건 담당 기구로 창설됐다. 약 7000명의 직원과 전세계 150여개의 사무실을 갖고 있으며, 감염병 같은 비상사태 때 억제책을 안내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중심적인 조정기구 역할을 한다. 미국, 중국 등 강대국과 게이츠재단 같은 민간의 지원금으로 유지된다. 미국은 이 가운데 약 15%를 담당하는 세계 최대 지원국으로, 지난해 5억5300만달러(약 6800억원)를 지원했다. 미국이 자금지원을 장기간 중단하면 보건 시스템이 취약한 지역들부터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트럼프가 이런 후폭풍을 감수하고도 자금지원 중단을 결정한 데는, 세계보건기구에 대한 미 행정부 안팎의 부정적인 여론이 영향을 미쳤다. <뉴욕 타임스>를 보면, 10일 백악관 회의에 참석한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장 등 전문가들 역시 세계보건기구가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너무 늦게 선언했고, 중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온정적이었다는 인식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스홉킨스 보건센터의 아메시 아달자 선임연구원은 “(세계보건기구에 대한) 비판의 여지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팬데믹의 한가운데서 정치적 성명을 내놓는 게 그 결함을 다루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라고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도 자신의 결정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월 말 자신이 중국발 미국 입국 금지령을 내렸을 때 세계보건기구가 반대했다며 “세계보건기구는 중국의 도구”라고 했다. 코로나19 대응 책임론을 외부로 돌리는 한편, 11월 대선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해 ‘중국 때리기’ 전선을 단단히 세워두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세계보건기구의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공격은 자제한 채 “미국은 세계보건기구에 오랫동안 후한 친구였고 앞으로도 그러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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