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방콕의 가난한 시민들이 22일(현지시각) 무료 식량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방콕/EPA 연합뉴스
“2억6500만명의 사람들이 코로나19로 굶주림의 위험에 처해 있다. 코로나19 이전보다 2배로 늘어난 것이다.”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이 22일(현지시각)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에서 말했다. 지난해 세계식량계획이 추산한 식량위기 인구는 1억3500만명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식량 위기, 나아가 굶주림 확산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령 강화로 식량 생산과 수출·수입이 타격을 받고 취약계층의 음식 섭취도 어려워지고 있다는 우려에서다. 세계식량계획과 함께 양대 국제 식량 관련 기구인 식량농업기구(FAO)도 지난달 말 “4~5월 식량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최대 식품기업 네슬레는 식량 공급 체계의 붕괴를 우려했다.
각국은 코로나19로 인간의 이동만 봉쇄한 게 아니다. 주요 식량 수출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식량 수출을 막고 있다. 세계 1위 쌀 수출국 인도가 국가봉쇄령으로 쌀 수출 계약을 중단했다. 3위 베트남은 쌀 수출을 중단했다가 이달 초 재개했지만 지난해의 6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세계 1위 밀 수출국 러시아도 일부 곡물에 수출 제한을 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농산물 수출 제한 움직임이 서방 나라에서는 덜 나타나지만, 이들 나라에서는 식량 생산의 한 축인 이주노동자들의 발이 묶여 생산에 타격을 받고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서유럽 주요 농업국도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튀니지 등 동유럽과 북아프리카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농작물 수확 등을 도맡았지만, 이동 제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농가에서는 중남미 노동자들이 사라졌다. 식량농업기구는 “유럽에서 약 100만명의 농업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시장 가격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재 세계 곡물시장 상황이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언제 요동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식량의 경우 공급이 조금만 부족해도 가격이 폭등할 수 있다.
세계식량기구 기아 지도. WFP 누리집 갈무리.
생산과 수출입뿐 아니라 농산물의 유통·소비도 타격을 받고 있다. 생산, 수출입 등이 올 하반기 등 비교적 훗날의 우려라면, 식량 공급망 붕괴는 당장의 기근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특히 난민 캠프나 빈민가는 당장의 굶주림에 직면해 있다. 이 때문에 지난달 25일 대규모 봉쇄령을 취한 인도가 20일부터 농축산업과 농촌 등에 한해 봉쇄 조처를 완화하기도 했다. 손광균 유엔 세계식량계획 한국사무소 공보관은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난민이나 빈민 등은 이동 제한으로 일자리를 잃고 식량을 구하기도 어려워졌다”며 “이중고로 기아 우려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세계식량계획은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개발도상국 30개국 이상이 광범위한 기근을 경험하고, 이 가운데 10개국은 이미 100만명 이상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고 본다.
주요 20개국(G20) 농업·식량 관계 장관들은 21일(현지시각) 긴급 화상회의를 열어 “코로나19 대유행에 대한 비상조처는 명확하고 투명해야 한다”며 “이들 조처가 국제적 식량 공급망을 교란하거나 교역을 막는 불필요한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비즐리 사무총장은 “세계 지도자들이 약속한 20억달러(2조4600억원) 지원 약속을 서둘러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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