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가운데),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월26일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언론 브리핑을 열고 있다. 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 실패론에 시달리는 가운데, 이번에는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 책임론이 제기됐다. 미 행정부 보건 수장의 안이하고 무책임한 태도가 ‘확진자 84만여명, 사망자 4만6000여명’이라는 오늘의 화를 키웠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2일(현지시각) 20여명의 관리들을 인터뷰한 결과, 에이자 장관이 사태 초기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보건부의 대처를 과장해 보고했으며, 소관 기관들과 효과적으로 조율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보도를 보면, 에이자 장관은 1월3일 로버트 레드필드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으로부터 코로나19의 위험성에 대해 전달받았으나,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2주 뒤인 1월18일에야 보고했다.
에이자 장관은 바이러스 확산에 대비해 마스크 등 개인보호장비를 확보해둘 기회도 날렸다. 1월 스티븐 한 식품의약국(FDA) 국장은 개인보호장비 업체들을 접촉해도 될지 보건부에 문의했으나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에이자 장관은 ‘업체들을 접촉하면 정부가 준비 안 된 걸로 비칠 수 있다’고 측근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에이자 장관은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의 책임자로 지명된 1월29일 첫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코로나19를 통제하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이 회의에서 에이자 장관은 레드필드 국장이 진단검사 준비에 대해 설명할 때 말을 끊고 “최고 속도”라면서 몇 주 안에 100만건 이상의 검사를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뒤 알려진 대로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진단키트에 오류가 발생해 검사가 지연됐다. 에이자 장관은 2월 내내 “바이러스를 통제하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그러다 2월25일 질병통제예방센터 산하 국립면역호흡기질병센터의 낸시 메소니에 소장이 기자들에게 코로나19의 지역사회 전파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에이자 장관에게 전화해 화를 냈다. 며칠 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수장을 마이크 펜스 부통령으로 교체했다.
에이자 장관이 ‘트럼프 눈치 보기’에 바빴다는 주장도 나왔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관여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ARDA)의 릭 브라이트 국장은 22일 성명을 내어,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의 ‘게임 체인저’라고 추어올린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에 의문을 제기했다가 국립보건연구소의 다른 자리로 전보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적 리더십”을 비판했는데, 이는 에이자 장관을 가리킨 것이라고 한 소식통이 <시엔엔>(CNN)에 전했다.
이러한 보도들은 ‘에이자 장관이 1월18일과 30일 두차례 트럼프 대통령에게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알렸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묵살 책임을 부각한 지난 11일 <뉴욕 타임스> 보도와 정반대에 가깝다.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실패를 놓고 미 언론을 통해 ‘대통령 책임이다’, ‘보건장관 책임이다’ 대리공방마저 벌어지는 모습이다. 에이자 장관 옹호자들은 백악관 참모들이 자신들의 실수를 덮으려 에이자 장관을 부당하게 비난한다고 말한다. 에이자 장관을 비난한다고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에이자 장관이 힘을 잃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지난 3일 이후 코로나19 태스크포스 언론 브리핑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는 의회 보고에 관해 묻는 백악관 참모에게 “나는 더이상 보건복지부 장관이 아니다”라며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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