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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보건의료 혁명가’에서 트럼프 분풀이 대상 된 WHO 수장

등록 2020-05-01 05:00수정 2020-07-09 15:07

첫 직선제·아프리카 출신 총장 거브러여수스
미-중 코로나19 ‘책임 전가’ 전쟁터에서 곤혹
트럼프, WHO-중국 탓하며 정보당국 조사 지시
실제론 예산 기여도 압도적인 미국이 쥐락펴락
한국 정부 ‘정은경 차기 총장’ 추진설 나오지만
전문가들 국제기구 특성상 “희망사항” 관측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1월30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 세계보건기구 본부에서 비상위원회 모임에 참석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왼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7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제네바/EPA 연합뉴스, 워싱턴/ AP 연합뉴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1월30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 세계보건기구 본부에서 비상위원회 모임에 참석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왼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7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제네바/EPA 연합뉴스, 워싱턴/ AP 연합뉴스

“초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면 에볼라 바이러스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입증했다.”

2017년 7월2일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55)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에볼라 종식’을 선언했다. 아프리카 55개 유엔 회원국의 압도적인 지지로 선출된 첫 아프리카 출신, 첫 직선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의 취임 뒤 첫 일성이었다.

에티오피아 출신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7살 때 4살 남동생을 홍역(추정)으로 잃었다. “심지어 지금도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2019년 11월 <타임> 인터뷰) 그는 영국에서 감염병을 공부하고 공중보건 박사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왔다. 2005~2012년 보건장관 재임 시절 3개였던 의대를 33개로 늘리고, 의료보험을 개혁하고, 결핵·말라리아·에이즈 등의 치명률을 최대 90%까지 낮춘 ‘에티오피아 보건의료 혁명가’로 추앙받았다. 여세를 몰아 2012~2016년 외무장관까지 지낸 그가 “세계보건기구 개혁”의 임무를 부여받고 2017년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에 당선됐을 때, 아프리카 대륙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환희로 들썩였다.

그로부터 2년10개월, 자신만만했던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미흡하게 대처해 사태를 키웠다고 비판받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피해국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거브러여수스와 중국의 유착을 비판하며 세계보건기구에 대한 예산 지원 중단과 조직 개혁을 촉구했다. 미 <엔비시>(NBC)는 29일(현지시각) 백악관이 국가안보국(NSA)과 국방정보국(DIA), 중앙정보국(CIA)에 세계보건기구의 코로나19 정보 은폐에 대해 철저히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처는 자신의 코로나19 방역 실패 책임을 세계보건기구에 전가하려는 성격이 짙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세계보건기구도 코로나19 대응 실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 책임의 이유를 중국과 거브러여수스의 ‘특수한 관계’에서 찾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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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선제 WHO 사무총장…코로나19 대응 실패는 중국 봐주기 탓?

유엔 산하 국제 전문기구 15곳 중 하나인 세계보건기구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8년 4월7일 출범했다. 국제보건의료 사업을 지도·조정하고, 각국의 보건의료 발전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또 감염병 발생을 사전 예방하고 발생 시 필요한 도구 개발을 지원한다.

임기 5년에 연임이 가능한 사무총장은 원래 집행이사회가 단일 후보를 추천하고 회원국들에 가부를 묻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이전 7명의 사무총장은 30여명이 모인 집행이사회에서 사실상 간선제로 뽑혔다. 역대 사무총장은 유럽과 미주, 동아시아 출신이었다. 아프리카와 중동, 동남아 등 회원국의 불만이 컸고, 3명의 후보를 두고 194개 회원국이 투표하는 직선제로 바뀌었다.

거브러여수스는 2017년 5월23일 185개국이 참여한 첫 직선제 투표에서 유력 경쟁자였던 영국 데이비드 나바로 전 세계보건기구 에볼라 특사를 제쳤다. 3명의 후보가 나선 1차 투표에서 185표 중 과반인 95표를 얻었다. 2명의 후보가 붙은 2차 결선투표에서는 133표를 얻었다. 아프리카 55개 회원국의 압도적인 지지가 바탕이 됐다.

거브러여수스의 당선을 중국의 지원과 연결시키는 시각도 있다. 아프리카 지역에 막대한 차관 제공과 원조를 해온 중국이 그의 당선을 위해 영향력을 활용했다는 의심이다. 실제 거브러여수스의 모국인 에티오피아는 중국으로부터 2000~2017년 137억달러의 차관을 제공받기도 했다.(미 존스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SAIS) 통계) 거브러여수스가 2012~2016년 에티오피아 외무장관을 지낸 터라 중국과 아무 연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세계보건기구가 ‘중국 봐주기’에 나섰다는 의혹의 주요 근거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4월7일 트위터를 통해 “세계보건기구가 정말 망쳐버렸다. 미국이 주로 자금을 많이 대는데, 어떤 이유인지 매우 중국 중심적”이라고 비난했다. 실제 세계보건기구는 1월5일 중국 쪽에서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인간 대 인간 전염의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각국에 중국에 대한 봉쇄를 지도하지도 않았다.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에 대한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한 건 1월30일이었다.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건 3월11일이었다. 너무 늦은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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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예산 구조, 중국보다 미국 영향력 압도적

하지만 세계보건기구를 잘 아는 전문가들은 섣부른 해석을 경계한다. 중국과 거브러여수스의 개인적 친분 관계가 어떻든, 예산이나 의사결정 구조를 보면 사무총장과 중국의 개인적인 관계가 영향을 미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누리집에 공개된 예산 구조를 보면, 세계보건기구는 중국이 아닌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미국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세계보건기구 2018~2019년 예산 현황을 보면(다년제 사업이 많아 2년 단위로 예산 공개), 미국은 2년간 총 8억9300만달러(약 1조900억원)를 지원했다. 세계보건기구 전체 예산 56억2300만달러(약 6조8600억원)의 15.9%에 이른다. 지원 순위 3위인 영국(4억3500만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 지원액이 8600만달러(약 1050억원)에 그쳤다.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이고, 7000만달러를 지원한 한국과도 차이가 크지 않다. 시진핑 주석이 2017년 5월14일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정상포럼’에서 향후 3년 동안 600억위안(약 10조원)을 개도국과 국제기구의 민생프로젝트 등에 지원하겠다고 밝힌 적은 있다. 하지만 예산 현황에서 실제 집행된 내역이 확인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미국은 압도적인 예산 지원을 바탕으로 세계보건기구에 실질적이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직선제로 바뀌면서 퇴색하긴 했지만, 그 전까지 ‘미국의 승인’ 없이는 세계보건기구의 수장이 될 수 없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세계보건기구 입장에서는 중국의 압박보다 “세계보건기구에 대한 예산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훨씬 위협적이다. 트럼프의 비난을 맞받아치던 거브러여수스는 지난 15일 트럼프가 ‘자금 지원 중단’을 발표하자 “미국은 세계보건기구의 제1의 기여자로 감사해하고 있다”며 곧바로 자세를 낮췄다. 세계보건기구 근무 경험이 있는 보건 분야 종사자는 <한겨레> 전화통화에서 “세계보건기구는 만성적인 예산 부족에 시달려왔다”며 “예산 구조를 보면 중국은 아직 미국에 대적할 상대가 아니라는 걸 간단히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 의사결정 방식 역시 사무총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나 팬데믹 선언은 비상위원회에서 결정한 뒤 사무총장이 발표한다. 사무총장도 위원회에 참석하긴 하지만, 세계 최고 감염병 권위자들이 모인 위원회에서 거브러여수스가 회의를 주도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는 평가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전문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 대응에서 세계보건기구의 내부적인 판단 실수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를 ‘사무총장이 중국과 가까워서 그랬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단선적이고 정치적인 시각”이라고 선을 그었다. 공중보건 전문가인 로런스 고스틴은 영국 <비비시>(BBC)에 “세계보건기구는 (중국 말만 믿지 말고) 더 비판적으로 상황을 더 자세히 살펴봤어야 했다”면서도, 다만 트럼프의 비판은 미국의 준비 부족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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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 노리는 한국, 정은경 사무총장 추진보다 중요한 것

미-중의 코로나19 다툼으로 거브러여수스가 궁지에 놓인 상황에서, 한국 정부 내에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기 사무총장으로 만들자는 얘기도 솔솔 새어나오고 있다. 거브러여수스의 공식 임기가 아직 2년 넘게 남은 만큼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지만, 코로나19 대응 국면에서 국제적으로 인지도를 높인 정 본부장이 도전해볼 만하다는 구상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한겨레>와 만나 “코로나19 사태로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에 대한 믿음이 워낙 추락한 상황이다. 국제적으로 호평받고 있는 정 본부장이 도전하면 승산이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를 아는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매우 낮은 ‘희망사항’이라고 고개를 젓는다. 국제기구의 특성상 대륙별로 대표를 돌아가면서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세계보건기구는 국제기구로는 드물게 회원국 중심 체제가 잘 짜여 있다. 게다가 한국은 2003~2006년 고 이종욱 전 총장이 사무총장을 맡은 바 있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도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대륙별로 나눠 치르고, 한번 치른 국가는 순서가 밀리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된다.

일부에선 영어가 장벽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상징적인 존재가 아니라 실제 위원회를 관장하고, 세계 각국을 돌며 협조를 이끌어야 한다. 정 본부장의 언어능력이 관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방역 경험을 이른바 ‘케이(K) 방역’으로 구조화해 세계와 공유하고, 이를 국제 표준으로 제안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위기를 기회 삼아 방역 부문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여보자는 취지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을 자랑하기보다, 더 큰 관점에서 국제 사회의 협력을 끌어내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5월 예정된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 아시아 대표로서 기조연설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문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국제적인 협력을 호소하며 한국의 기여도를 높이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더욱 주효하리란 지적이다.

김창엽 교수는 “현재 세계는 각자도생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세계보건기구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고 모두 제 앞가림하기에 바쁜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코로나19에 대해 자발적 기여금을 내고 국제 공동 대응을 호소하는 것이 우리의 위상도 높이고 실질적인 도움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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