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10일(현지시각) 런던 다우닝가에서 국가 봉쇄 조처를 완화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이날 존슨 총리는 재택 명령을 완화하고 야외활동을 확대하는 등의 계획을 밝혔다. EPA 연합뉴스
미국, 영국, 독일 등 서방 국가들이 코로나19 ‘봉쇄 울타리’를 속속 낮추는 가운데, 이들 나라의 코로나19 확진자들이 감소 추세에서 증가세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봉쇄조처 완화가 아직 이르며, 자칫 ‘재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독일은 서유럽 국가 중 코로나19에 가장 잘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지난달 20일 규제를 완화한 데 이어, 지난 6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규제조처를 다소 완화했다. 모든 상점이 문을 열고 학교도 단계적으로 개학한다는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규제 완화 이후 독일은 하루 500명대까지 줄었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800~1200명으로 증가하는 등 다시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 벨레> 보도를 보면, 특히 도축장과 요양시설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증가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경우, 육류가공공장에서 코로나19가 집단 발병해 10만명당 확진자 수 50명을 넘었다. 튀링겐주에서는 요양기관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으로 확진자가 10만명당 80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 감염자의 전파 수준을 보여주는 ‘재생산(R) 지수’도 이전 3주간 ‘1 미만’을 유지하다, 지난 10일 기준 1.13으로 높아졌다. 독일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가 집계하는 재생산 지수는 감염자 1명이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 보여주는 지수로, 1은 1명, 2는 2명에게 전파한다는 것을 뜻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독일의 재생산 지수가 높아진 게 전적으로 봉쇄 완화 때문이라고 볼 수 없지만, 4월20일 이후 생긴 새로운 흐름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코로나19 발생국인 미국은 대부분의 주가 최근 경제활동을 재개했다. 10일 <엔비시>(NBC) 보도를 보면, 뉴욕주와 코네티컷주, 매사추세츠주 등 3곳을 제외한 나머지 47개 주가 비필수업종에 대한 ‘재택명령’을 완화했다. 경계를 맞댄 뉴욕,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등 동부 3개 주도 곧 재택명령이 만료된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일일 확진자 수 2만~3만명대를 유지하는 등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6일(현지시각) 16개 주지사들과 화상회의를 한 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봉쇄를 완화하는 조처를 설명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영국은 10일 보리스 존슨 총리가 직접 봉쇄령 완화 대책을 발표했다. 11일부터 건설업과 제조업 종사자 등이 현장 출근을 할 수 있고, 13일부터 운동 등 야외활동 제한이 완화된다. 다음달 1일부터는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순차적으로 개학하고, 이르면 7월부터 음식점·숙박업소 등의 영업이 재개된다. 존슨 총리는 “이런 조처는 조건부”라며 대중교통 대신 걷기나 자전거 이용을 권고했고, 사업장도 정부의 안전지침을 따르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스페인에 이어 확진자 수 22만명으로 세계 3위인 영국은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줄긴 했지만 꾸준히 3천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봉쇄 완화 조처를 두고 희생이 커질 수 있는 ‘섣부른 결정’이라는 반발도 나온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집에 머물라’(stay at home)는 메시지를 ‘경계하라’(stay alert)로 바꾼 존슨 총리의 결정은 잘못이라며 “따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스터전 수반은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죽을 것”이라며 “사람들을 혼동하지 않게 할 명료한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트위터에 “계속해서 집에 머무세요. 그것이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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