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통신장비·휴대전화 생산 업체인 화웨이의 베이징 시내 한 매장 모습. 베이징/AP 연합뉴스
미국이 중국의 통신장비·휴대전화 생산 기업인 화웨이에 제재 수위를 높이자, 중국이 보복을 언급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코로나19 책임론을 둘러싸고 관계가 더욱 악화된 미·중이 ‘기술 패권’ 경쟁을 고조시키면서 전면적 경제 전쟁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16일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상응 조처를 할 것이냐는 외신 질의에 “미국의 조처는 세계적 차원의 공급망을 파괴하는 행위”라며 “중국 기업에 대한 불합리한 압력을 즉각 중단하길 촉구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중국 기업의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리를 단호하게 방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구시보>는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전면 차단하는 게 미국의 의도”라며 “미국이 이런 조처를 실행에 옮기면, 중국은 즉각 보복 조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소식통의 말을 따 △미국 기업에 대한 거래 금지 업체 지정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에 대한 조사 및 시장 접근 제한 △미국산 항공기 구매 중단 등을 ‘보복 조처’의 구체적인 사례로 거론했다. 특히 애플·퀄컴·시스코·보잉 등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미국 거대 기업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중국의 반발은 지난 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 기업 화웨이의 반도체 조달 통로를 틀어막는 조처를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미 상무부는 당시 성명에서 “미국의 특정 소프트웨어와 기술을 직접 사용한 특정 반도체 제품들을 화웨이가 입수하는 걸 전략적으로 겨냥하기 위해 수출 규정 개정에 나섰다”고 밝혔다. 미 행정부는 그동안 미국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화웨이에 수출하는 것을 막아왔는데, 앞으로는 미국의 기술을 활용하는 외국 기업도 화웨이에 반도체를 팔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을 고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동안 미국을 제외한 나라의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기술 활용도가 25% 아래면 화웨이에 물건을 팔 수 있었는데 이마저 막혔다.
화웨이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에 서 있다. 미 행정부는 지난해 5월 중국 당국의 스파이 행위에 활용될 수 있다며 화웨이를 제재 목록에 올리고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하며 ‘화웨이 고사 작전’을 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에는 화웨이 등 중국 업체의 통신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년 5월까지 1년 연장했다.
미국이 실제로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망을 전면 차단하고 중국이 애플 등에 대한 보복에 나서면, 미·중은 ‘관세 폭탄’이 주축이 됐던 무역전쟁을 능가하는 출혈 경쟁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미국이 이번 화웨이 규제 방안을 발표한 직후 15일 미 증시에서 퀄컴과 인텔 등 미 주요 반도체 업체의 주가가 떨어졌다. 미국 안에서는 코로나19로 경기가 악화된 상황에서 미 기업들의 수출길을 막아선 안 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 정부도 이번 조처 실행에는 여지를 남겨놨다.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이 규정은 허가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허가가 반드시 거부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또한 미국의 실제 조처를 봐가며 대응 수위를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 쪽은 아직까지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앞서 쉬즈쥔 회장은 지난 3월31일 열린 실적 발표회에서 사실상 공개적으로 중국 당국의 대응을 촉구한 바 있다. 쉬 회장은 당시 “화웨이에 반도체 부품 공급을 막는 추가 제재를 시행한다면 중국 정부가 반격해 화웨이가 남에게 유린당하지 않도록 해줄 것으로 믿는다”며 “미국이 끝내 추가 제재를 가한다면 세계적으로 공급망이 궤멸적으로 붕괴되고, 결과적으로 부서지는 것은 화웨이 하나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 베이징/황준범 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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