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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코로나로 쪼개진 EU…‘경제 인공호흡기’ 두고 ‘남북 갈등’

등록 2020-05-20 15:28수정 2020-05-20 15:42

[뉴스분석]
코로나 대응 긴급지원책 두고 북유럽 남유럽 시각차
북유럽 “재정건전성 조건 대출” 남유럽 “무조건적 보조금 지급”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8일 5천억유로(약 670조원)의 유럽연합 경제 회복 기금 조성을 제안하는 공동 화상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베를린/로이터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8일 5천억유로(약 670조원)의 유럽연합 경제 회복 기금 조성을 제안하는 공동 화상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베를린/로이터 연합뉴스

영국의 탈퇴로 통합에 금이 간 유럽연합(EU)이 코로나19로 촉발된 회원국간 경제 갈등으로 또다시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1분기 유로존(유로 통화권) 경제성장률이 -3.8%(연율 -14.4%)를 기록하는 등 미국(연율 -4.8%)에 비해 경제 상황이 훨씬 나쁜 가운데 긴축을 강조하는 견실한 나라들과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나라들 사이의 ‘남북 갈등’이 노골화하고 있다. 이 갈등의 중심에는 유럽 통합의 이익을 주로 누리는 네덜란드와 독일이 있다는 점에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때와는 혼란의 강도가 다르다.

독·프 정상, 남유럽 편들며 일단 ‘봉합’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8일 공동 화상 기자회견을 열고 5천억유로(약 670조원)의 유럽연합 경제 회복 기금을 조성해 보조금 형태로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는데, 이 제안은 이런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연합이 역사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며 “이 기금을 단기간에 집행하고 천천히 갚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제안은 가장 타격이 큰 지역과 부문에 진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라며 “두 나라의 합의가 곧 27개 전체 회원국의 합의는 아니지만 프랑스와 독일의 합의가 없이는 전체의 합의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이 기금이 상환해야 하는 대출금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두 정상의 제안은 네덜란드와 이탈리아가 4월 초 긴급 위기 지원책과 관련해 ‘재정 건전성 확보를 조건으로 한 대출’이냐 ‘무조건적인 보조금 지급’이냐를 놓고 정면충돌한 것 등을 의식하면서, 훨씬 어려운 남부 유럽 편을 들어준 것이다. 두 정상의 제안에 대해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즉각 환영한 반면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총리와 의견을 교환했다며 보조금이 아닌 대출 형태의 지원책을 주장했다. 이 때문에 남부 유럽과 북부 유럽이 두번째 갈등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첫번째 충돌은 4월 초 재무장관들이 코로나19 대응 긴급 지원금을 논의하면서 나타났는데, 네덜란드가 유독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이 자리에서 이탈리아는 5천억유로 규모의 ‘코로나채권’을 조성해 조건 없이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네덜란드는 재정 건전성 확보를 조건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네덜란드는 코로나채권이라는 명칭도 거부했다. 네덜란드가 조건부 지원 주장을 철회하는 대신, 이탈리아가―구조조정을 강요한다는 이유로―반감을 보이는 유럽안정화기구(ESM)를 활용하는 타협안이 가까스로 도출됐다.

대출이냐 보조금이냐 논쟁은 각국 정상들이 4월23일 경제 회복 펀드를 논의하면서 다시 뜨거워졌다. 정상들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를 중심으로 펀드를 조성한다는 데는 합의했으나 규모와 지원 방식, 이 펀드를 2021년부터 적용될 향후 유럽연합 7년 예산(MFF)에 어떻게 포함시킬지는 합의하지 못했다. 프랑스와 독일 정상의 18일 제안은 이 논의를 두 나라가 주도하지 않으면 유럽연합의 균열이 더욱 커질 거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 심상치 않은 초강경 행보로 눈길

북부 유럽과 남부 유럽의 갈등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최근 네덜란드의 행보는 특히 심상치 않다.

네덜란드는 지난 10일 프랑스와 함께 무역협상에 있어서 유럽연합이 더 강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해 또 한번 회원국들을 놀라게 했다. 두 나라는 이날 회원국들에 보낸 공동 서한에서 향후 무역협정을 맺을 때 엄격한 환경 및 노동 기준을 협정 상대방에게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프랑스의 이런 자세는 새로울 게 없지만,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해온 네덜란드의 태도 변화는 다소 뜻밖이다. 프랑스 외교관들은 네덜란드의 변화가 향후 유럽연합 역내 산업 보호 추세를 촉진하는 전환점이 될 걸로 보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두 나라의 요구는 무엇보다 영국과의 브렉시트 이후 관계 협상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네덜란드의 태도와 관련해 봅커 훅스트라 재무장관이 주목받는다고 지적했다. 잡지는 “냉소적인 이들은 네덜란드가 내년에 총선을 치르며, 훅스트라는 자유민주국민당 출신 총리 마르크 뤼터와 경쟁하는 동시에 자신이 속한 기민당 대표 자리도 노리고 있다”고 전했다. 두 당은 공히 반유럽연합 세력의 도전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며, 훅스트라 장관의 태도는 부채에 반감이 큰 네덜란드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다.

네덜란드 국제관계연구소(클링엔달)의 렘 코르테버흐 선임 연구원은 “네덜란드의 외교 정책은 종종 아주 훈계조를 띤다”며 “네덜란드는 ‘우리가 부유하기 때문에 진실을 안다. 그러니 어떻게 개혁할지 알려주겠다’는 식으로 나오곤 한다”고 말했다.

독 헌재, 유럽중앙은행 독립성 제동…EU 법률질서 문제로 비하

경기 회복 정책 논란 와중에 훨씬 근본적인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지난 5일 유럽중앙은행(ECB) 주도로 2015년부터 진행해온 공공채권매입프로그램(PSPP)이 비례 원칙(행정의 수단이 목적에 적합하고 최소 침해를 가져와야 하며 이 침해가 의도하는 이익 효과를 능가하여서는 안 된다는 원칙) 측면에서 충분히 입증되지 못했다는 판단을 내놨다. 유럽중앙은행이 3개월 안에 비례 원칙을 지켰다는 걸 입증하지 못하면 독일은 이 경기 부양책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정이다. 이 문제는 2015년 독일 경제학자와 법학 교수 등 1750여명이 제기하면서 시작된 해묵은 논란이다.

독일 헌재의 결정은 회원국 법원이 유럽중앙은행의 독립성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유럽연합 금융 정책 전반을 혼란에 빠뜨릴 잠재성을 지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우리는 물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유럽의회로부터 책임을 부여받은 독립 기관”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를 의식한 발언이다.

“EU 해체로 가는 전환점 될지도”

이 문제가 자칫 유럽연합의 법률적 질서 문제로 비화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채권 매입은 2018년 유럽사법재판소(ECJ)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은 사안이어서, 독일 헌재의 결정은 유럽사법재판소의 지위 문제와도 연결된다. 유럽사법재판소는 헌재 결정 직후 내놓은 성명에서 “유럽연합 소속 기구가 유럽연합 법률에 반하는 행동을 했는지 판단할 권한이 있는 유일한 기관이 유럽사법재판소”라며 “회원국 법원들이 독자적으로 결정하면 유럽연합의 법률적 질서가 위험에 빠진다”고 경고했다.

유럽사법재판소가 즉각 반응한 것은 헝가리 등 일부 회원국이 유럽사법재판소의 결정을 무시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헝가리는 난민 신청자들을 심사도 없이 난민 캠프에 수용하는 것은 불법 구금에 해당한다는 유럽사법재판소의 지난 14일 결정을 무시하는 등 유럽연합과 대립해왔다. 폴란드도 사법 개혁안이 유럽연합 법률에 위반된다는 판결을 무시한 바 있다. 독일 헌재 결정 직후 폴란드의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가 “유럽연합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결정”이라고 추켜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최근 칼럼에서 “유럽연합이 법률적으로 통합된 체제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미래 역사학자들은 독일 헌재의 결정을 유럽연합 해체로 가는 전환점으로 지목할지도 모른다”고 평했다. 유럽연합의 통합은 회원국들이 인권부터 환경, 공정경쟁까지 최소 기준을 공유할 때만 유지된다는 점에서 울프의 지적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유럽연합이 코로나19 충격에 빠진 경제를 빠르게 회복시켜 회원국 국민들에게 유럽연합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는 한, 분열을 부추기는 시도들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신기섭 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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