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현지시각) 밤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린 미국 워싱턴 백악관 근처에서 경찰들이 뒤집힌 차량 주변에 서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백인 경찰의 가혹행위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46) 사건에 항의하는 분노의 물결이 31일(현지시각) 미국 전역을 덮었고, 독일 등 유럽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미국 시위대와 경찰이 과격해지면서, 1968년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이 암살된 뒤 처음으로 수십개 도시에 야간 통행금지 명령이 내려졌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
플로이드가 숨진 이튿날인 지난 26일 사건 현장인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한 항의 시위는 엿새째인 이날 미국 내 최소 140개 도시로 번지고, 현재까지 2500명 이상이 체포됐다. 26개 주와 워싱턴에 수천명의 주방위군이 투입됐다. 40개 이상의 도시가 야간 통행금지를 명령했지만, 시위대는 아랑곳없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워싱턴에서는 백악관 앞 라파예트광장에서 1천여명의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 시위대는 차량을 뒤집고 불을 질렀으며, 경찰은 백악관 근처로 향하려는 시위대한테 최루탄을 쐈다. 상황이 거칠어지자 뮤리얼 바우저 워싱턴시장은 이날 밤 11시부터 이튿날 새벽 6시까지 통행금지를 명령했다. 29일 밤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가족이 ‘지하 벙커’로 쓰이는 긴급상황실(EOC)로 1시간가량 피신했다고 <시엔엔>(CNN)이 31일 보도했다.
뉴욕에서는 차량들이 불타고 수백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이 평화 집회를 촉구했지만, 그의 25살 딸 키아라는 30일 맨해튼 시위에서 차량 진행을 방해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플로이드가 숨진 미니애폴리스에서는 대형 유조차가 고속도로를 점거한 수천명의 시위대를 향해 돌진했으나,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다.
숨진 플로이드의 아들 메이슨과 딸 코니 플로이드는 텍사스 <케이비티엑스>(KBTX) 인터뷰에서 오하이오주 브라이언에서 진행된 평화 시위를 칭송하면서 전국의 시위대를 향해 폭력을 자제해달라고 촉구했다. 메이슨은 어린 시절 이후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지만 “모두가 나와서 그(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 모든 것에 감동받았다”고 시위대한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사태가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일부 경찰은 플로이드를 추모하며 시위대와 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뉴욕 퀸스에서 열린 시위에서 경찰관 두명이 시위대 앞에 한쪽 무릎을 꿇는 자세를 취한 장면이 페이스북에서 화제가 됐다. 이 경찰관들은 시위대가 플로이드를 비롯해 과거 경찰에 의해 숨진 흑인들의 이름을 하나씩 외치는 동안 자세를 유지했다. 무릎 꿇기는 전 미국 프로미식축구리그(NFL) 선수 콜린 캐퍼닉이 미국 국가가 연주될 때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로 국민의례 대신 취한 뒤 유명해졌다. 플로리다주와 캘리포니아주에서도 경찰관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트위터 등에 올라왔다.
플로이드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는 미국 밖으로도 번졌다. 영국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는 이날 코로나19에 따른 단체모임 금지 규정에도 수백명이 모여 “정의 없이 평화 없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미국대사관까지 행진했다. 독일에서도 전날 베를린의 미국대사관 주변에 수천명이 모여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 “정의가 필요하다” 등의 손팻말을 들고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30일 수천명이 모여 “흑인이 또 죽어선 안 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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