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5일의 기본소득 국민투표를 앞둔 5월14일 스위스 제네바 시내에 “소득 걱정을 덜게 되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는 대형 현수막이 등장했다.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는 77%의 반대로 부결됐다. 제네바/AP 연합뉴스
외국의 기본소득 논의는 1980년대 유럽의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복지제도 개선책을 찾는 차원에서 시작해, 전세계적인 빈부격차 확대와 함께 세계적인 쟁점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2017년에는 핀란드, 캐나다 등 일부 국가에서 소규모 실험을 진행하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최근에는 개별 국가 차원을 넘어, 유럽연합(EU) 전체에 통일된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소규모 실험으로는 2009년 독일의 구호단체들이 아프리카 나미비아 빈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벌여 범죄 감소와 아동들의 교육 기회 확대 등의 효과를 확인한 바 있다. 비슷한 시기에 브라질 상파울루에서도 소규모 실험이 시도됐다.
세계적으로 주목 받은 사례로는 2017~2018년 핀란드 정부의 실험을 꼽을 수 있다. 실험 내용은, 2016년 11월에 실업 상태였던 25~58살의 노동자 가운데 무작위로 2000명을 골라 2년동안 매달 560유로(약 73만원)를 지급하는 것이다. 이 실험의 주 목적은 기본소득의 고용 촉진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핀란드 정부는 지난달 7일 내놓은 최종 보고서에서 기본소득이 실업자들의 행복감 증가 등 복지에 끼치는 효과는 분명한 반면 고용 촉진 효과는 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기본소득 수령자 586명과 대조군인 일반 실업자 1047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기본소득 수령자들의 생활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7.3점인 반면 일반 실업자는 6.8점이었다.
반면, 노동 시간에서는 두 집단간 차이가 미미했다. 기본소득을 받은 이들이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비교 대상 집단보다 평균 6일 정도 더 일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2017년 1~10월의 경우는 두 집단간 노동 시간 차이가 없었다.
최종 보고서 결과에 대한 해석은 시각에 따라 서로 엇갈린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애초 기본소득의 목적이 고용 촉진이 아니며, 실험 기간 중 정부가 고용 정책을 바꿈에 따라 고용 유발 효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한편에서는 기본소득 수령자들의 생활 만족도가 기대보다 크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2017년 저소득층 4000명에게 매달 1320캐나다달러(약 115만원)을 주는 3년 기간의 실험을 시작했으나 재원이 고갈되면서 1년만에 중단했다. 이 실험은 일자리를 얻게 되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형식이어서 핀란드 실험보다 더 제한적이다.
국가 전체 차원의 논의는 스위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스위스는 2016년 전 국민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77%가 반대해 부결됐다. 부결의 원인으로는, 불확실한 재원 마련 방안과 일부 재원을 기존 사회복지 기금에서 전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이 꼽혔다.
최근에는 유럽연합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한 운동도 힘을 얻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15일 국제 활동가들이 제안한 ‘조건 없는 유럽 기본소득’ 논의를 정식 시민발의 의제로 채택했다. 1년 안에 이 제안이 유럽연합 회원국 7개국 이상에서 최저 기준치 이상의 동의를 포함해 총 100만명의 동의를 얻으면, 유럽연합은 이 문제를 정식 의제로 검토하게 된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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