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7일(현지시각) 노스캐롤라이나 모리스빌에 위치한 후지필름 다이오신스 바이오테크놀로지스 공장에서 백신 개발과 관련해 “매우 긍정적인 얘기를 들었다. 연말까지 매우 좋은 상태에 있을 것”이라고 연설하고 있다. 모리스빌/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오는 11월3일 대통령 선거일 전에 코로나19 백신을 출시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백신 개발이 ‘정치적 동기’에 휘둘려 부실화될까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과 화이자 등 백신 개발업체들이 최근 백신 출시를 빠르면 오는 10월까지 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지난 4월 보건복지부가 백악관에 밝힌 백신 개발 보고에서 정해진 데 따른 조처라고 <뉴욕 타임스>가 2일 보도했다.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경제활동이 중단된 지난 4월, 보건복지부가 백악관에 코로나19 백신의 신속한 개발이 이 질병 만연을 통제할 최선의 희망이라고 보고했다. 이 보고서의 첫 머리에 이미 “마감시한: 2020년 10월까지 대중 전반에게 접근 보장”이라고 백신 개발 시한을 명시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선임보좌관은 백신 개발을 감독하는 위원회의 정례 참가자로, 백신의 10월 출시를 지휘해왔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 ‘초고속 작전 프로젝트’라는 백신 개발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초고속 작전’은 영화 <스타트랙>에서 시공간을 초월해 달리는 ‘워프 스피드’에서 따온 말이다. 식품의약국의 약품·백신 승인 담당 부서의 책임자인 피터 마크스 박사가 <스타트랙>의 팬인데, 그가 4월10일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에 보고한 뒤 작명한 것이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보건 관리들은 백신의 10월 출시가 비현실적이라고 내부적으로 보고했다. 그 후 관리들은 공개 석상에서 올해 말이나 2021년 초를 마감 시한으로 거론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백신 사냥’에 집중해왔다. 제약회사들과의 선계약이 급속히 진행됐고, 백신 개발 업체에 대한 무제한적 지원이 이뤄졌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병력 보호 차원에서 백신 개발과 보급에 오랜 경험을 가진 국방부와도 협업 체계를 갖췄다. 병참 전문가인 구스타브 페르나 장군이 이 초고속 작전 프로젝트 운영책임자로 임명됐다. 주사바늘 등 개발업체들의 물품 부족 시, 국방부가 나서 비행기로 48시간 내에 공급해줬다.
정부의 이런 전폭적인 지원 아래 진행된 속도전으로 미국에서는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와 협력한 모더나, 그리고 화이자가 지난주 백신 임상 시험의 마지막 단계인 3상 시험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백악관은 올해 가을까지 코로나19 치료제 개발도 밀어붙이고 있다. 이를 위해 백악관은 1~2개의 치료제를 ‘긴급사용승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제약회사 리제네론 최고경영자에게 코로나19 항생제의 진전을 점검하라고 촉구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제약업계의 합동 노력에도 불구하고, 10월까지 백신을 개발한다는 애초 목표는 멀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말이나 2021년 초라도 수억개 분량의 백신 출시를 할 수 있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정부 안팎의 전문가들은 백악관이 식품의약국에 ‘데이터가 불충분하더라도 백신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적 긴급승인을 하라’고 압박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선 대통령 선거일인 11월3일 전에 일선 의료진에게 백신을 사용하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스티브 한 식품의약국장도 백신의 긴급승인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는 “백신과 연관된 위험이 백신이 없을 때의 위험보다도 낮다면, 우리는 긴급 사용 승인을 할 것을 고려할 것”이라고 <미국의료협회저널>에 밝혔다. 심지어 백악관의 한 고위 관리는 사람들이 죽고 있는데, 통상적인 시험 과정을 점검하려고 추가적으로 서너달 동안 백신을 내놓지 않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10월 말을 백신 개발 목표 시한으로 두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은 올해 말이나 2021년에 백신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낙관한다고 밝혀온 바 있다. 그는 지난 주 하원에 나와 “역사적으로 식품의약국은 과학에 기반해왔다”며 “그들은 이번에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고 정치적 동기에 의한 백신 개발은 불가함을 에둘러 강조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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