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검은 줄무늬가 몸을 휘감아 얼핏 검게 보이는 호랑이가 인도 오리사 주에서 발견돼 눈길을 끈다. ‘흑호’는 동물원에서 백호의 새끼로 종종 태어난다. 검은 호랑이는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발견됐을까?
인도 엔디티브이(NDTV)는 5일 “매우 희귀한 검은 호랑이 사진이 촬영됐다”며 아마추어 사진가 수멘 바지파에(27)의 사진을 소개했다. 그가 지난해 2월 이 지역 난단카난 보호구역에서 탐조하다 찍은 이 호랑이 사진은 최근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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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적인 색깔 변이?
검은 호랑이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773년 케랄라 지역 동인도회사에 근무하던 영국인 화가 제임스 포브스가 밀렵된 검은 호랑이를 그린 수채화였다. 이 그림은 사라져 호랑이를 그린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이후 목격담이 이어졌고 1992년엔 머리 위와 등이 검은 호랑이 가죽이 뉴델리에서 압수됐다. 이 가죽은 검은 호랑이의 첫 물증인 셈이어서 뉴델리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인도 아리그나르 아나 동물원 백호 부부 사이에 태어난 새끼 한 마리가 자라면서 점차 검은 호랑이 모습을 띠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현재 야생에서 검은 호랑이가 무인카메라 등으로 확인되는 곳은 인도 동부 벵골만에 접한 오리사주의 심리팔 국립공원이 유일하며 그 수는 7∼8마리로 추정된다. 잘라 인도 야생동물 연구소(WII) 박사는 “오리사 전체에 야생 호랑이가 20마리 이하”라며 “검은 호랑이는 세계적으로 독특한 유전적 구성을 한 개체여서 보전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인도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야생이 아닌 동물원에서는 검은 호랑이가 종종 백호의 새끼로 태어난다. 2010년 인도 반다루르의 아리그나르 아나 동물원의 백호 부부는 3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그중 한 마리가 자라면서 줄무늬가 커지더니 검은 호랑이로 바뀌었다.
2014년에도 오리사의 난단카난 동물원에서 백호와 정상 호랑이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4마리의 새끼 가운데 2마리가 검은 줄무늬가 확대된 모습을 띠었다. 2016년과 2017년에도 검은 호랑이 새끼가 잇달아 태어났다.
전문가들은 검은 호랑이가 별개의 종이나 지역적으로 분리된 아종이 아니라 단지 유전적인 이유로 생긴 색깔 변이라고 설명한다. 검은 색소가 부족한 백색증이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검은 색소인 멜라닌이 과다 표현되는 흑색증이 야생동물에 종종 나타난다.
인도 난단카난 동물원에서 백호와 정상 호랑이 사이에서 태어난 검은 호랑이.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번 검은 호랑이는 ‘의사 흑색증’(Peudo-melanism)으로 알려진다. 백색증을 일으키는 유전자와 비슷하지만 열성유전을 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호랑이나 백호는 이 유전자를 보유하더라도 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백호에서 흑호가 종종 태어나는 건 이런 열성 유전자끼리 만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의사 흑색증이 나타난 호랑이는 줄무늬가 너무 두꺼워져 거의 맞닿으면서 정상적인 주황색이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일반적으로 정상 호랑이보다 몸 크기가 작다. 호랑이 개체수가 적어지면서 근친교배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검은 호랑이를 낳는) 열성유전자가 만날 확률이 야생에서는 성숙한 수컷이 멀리 떠나기 때문에 매우 낮다”며 “몸을 검게 만드는 형질이 생존이나 번식에 도움되지 않는다면 자연에서는 점점 도태하는 데 그렇지 않은 건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 근친교배가 늘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오리사 주의 호랑이 수는 지난 20년 사이에 500마리에서 20마리 미만으로 줄었다.
인도 오리사 주 난단카난 보호구역에서 아마추어 사진가가 촬영한 검은 호랑이. 가장 최근에 찍힌 검은 호랑이 사례이다. 수멘 바지파에 제공.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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