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가 개발중인 코로나19 백신의 이미지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독일 제약사 바이오엔테크가 함께 개발하는 코로나19 백신의 공급 계약이 80% 이상 체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일본·유럽 등 주로 선진국들이 화이자와 계약을 맺었는데, 소외된 중저소득 국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비비시>(BBC) 방송 등은 11일 유럽연합(EU)이 화이자와 코로나19 백신을 최대 3억회분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전했다. 화이자 백신은 1명이 2회를 맞아야 하므로, 총 1억5천만명분이다.
공급 가격은 앞서 미국이 계약한 가격 19.5달러(약 2만2천원)보다 싼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투자은행(EIB)과 독일 정부가 바이오엔테크에 4억7500만유로(약 6232억원)의 백신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한 점 등이 고려됐다. 바이오엔테크는 독일 제약사로 2008년 터키 이민자 2세 출신인 독일인 부부가 설립했다.
화이자는 올해 최대 5천만회분의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할 수 있고, 내년에는 최대 13억회분을 생산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미 11억회분 정도 주인이 정해져 있다. 유럽연합이 3억회분을 확보했고, 미국도 지난 7월 화이자와 1억회분의 코로나19 백신을 공급받고, 추가로 5억회분을 살 수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과 유럽이 전체 생산량의 3분의 2를 미리 확보한 것이다. 이 밖에 영국(4천만회분)과 일본(1억2천만회분), 캐나다(2천만회분), 뉴질랜드(1500만회분) 등이 화이자와 백신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은 아직 구매 계약을 하지 못했다.
화이자 백신은 초저온의 보관 시설이 필요해 중저소득국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키스탄의 과학자 아타 라흐만 교수는 “화이자 백신은 영하 80도 이하에서 보관돼야 해, (냉동 시설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는 적절하지 않다. 시기상조다”라고 말했다고 <뉴델리 타임스>가 보도했다.
자본이 적고 기반 시설도 부족한 중저소득국은 백신 쟁탈전에 직접 뛰어들지 못한 채 공동구매에 나서고 있다. 지난 7월 백신 공동구매와 공정한 배포 등을 목적으로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등이 중심이 돼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만들었고, 현재까지 7억회분 정도의 백신을 확보하고 있다. 코백스에는 약 150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코백스로 1천만명분, 제약사와 개별 계약을 통해 1천만명분의 백신 구매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영국 리서치업체 에어피니티에 따르면, 현재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미국 노바백스, 미국 존슨앤드존슨, 프랑스 사노피 등 4개 제약사가 중·저소득국에 공급하기로 합의한 백신은 총 30억회분에 이른다. 모두 백신 개발의 선두권에서 뛰는 업체들인데, 아직 속도와 효과 면에서 화이자에 다소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9일 화이자 백신이 효과가 좋다는 소식에 “대단한 뉴스지만 이미 부유한 나라들과 10억회분 이상 백신이 계약됐고 4분의 1도 채 남아 있지 않다”며 “이런 거래는 과학적인 혁신의 잠재적 이익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화이자는 중저소득 국가들이 최대한 백신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의 코로나19 백신 수요는 세계 인구의 60%인 46억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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