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제발, 제발 그를 깨워주세요. 그를 잠들게 두지 마세요.”
중국인 천샤오쥔(43)은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국외 거주 중국인들을 겨냥한 중국계 음식 배달 스타트업 ‘헝그리 판다’의 플랫폼 노동자로 일했다. 천은 지난 9월29일(현지시각) 시드니 외곽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일을 나섰다가 버스에 치였다. 중국에 떨어져 살던 천의 아내 웨이리훙은 천의 숙소 동료에게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남편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아내의 간절한 바람에도, 병원으로 옮겨진 천은 이튿날 숨졌다.
오스트레일리아 <에이비시>(ABC) 방송과 영국 <가디언>에 소개된 천의 사연은 플랫폼 기업을 통해 음식 배달을 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꿨던 외국인 노동자의 전형적 사례로 읽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플랫폼 기업들이 연일 폭발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지만, 노동자와 사업자 어느 한쪽에도 완벽히 속하지 못한 천 같은 플랫폼 노동자의 삶에 드리운 그늘은 짙어지고 있다.
미국 음식 배달 스타트업 ‘도어대시’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던 날인 지난 9일 도어대시 배달원이 자전거로 뉴욕 맨해튼에서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산시성 출신 천은 15살 딸과 8살 아들이 있다. 중국에서는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일했으나 수입이 충분하지 않았다. 천은 2018년 오스트레일리아에 와서 음식 배달 일을 시작했다. 천은 오스트레일리아를 ‘선진국이며 법치국가이고 열심히 일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곳’이라고 믿었다고 아내인 웨이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말했다. 천은 타국에서 음식 배달로 번 돈 대부분을 중국에 송금했다. 이 돈으로 중국의 아이들과 아내뿐 아니라 자신과 아내의 부모님까지 부양했다.
천의 죽음 뒤 플랫폼 기업 노동자로서 그가 마주한 부조리한 현실이 알려졌다. 오스트레일리아 운송 노조가 음식 배달원들을 상대로 조사한 자료를 보면, 비용을 제하고 배달원 수입을 시간당으로 계산하면 10.42오스트레일리아달러(약 8600원) 정도였고, 응답자 73%는 “크게 다치거나 사망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배달 도중 사고를 당해도 법적으로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천의 사망 이후, 헝그리 판다의 침묵을 보다 못한 그의 이웃이 모금운동을 벌여 천 가족의 오스트레일리아 입국 비용 5만달러를 모았다. 헝그리 판다는 그제야 천 아내의 항공비와 장례비 정도를 지원했고, 이웃이 모금한 돈은 천의 가족에게 위로금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천이 거리에서 숨진 9월 무렵부터 최근까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천을 포함해 적어도 5명이 플랫폼 기업을 통해 음식 배달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9월27일 인도네시아 출신 우버이츠 배달원 데데 프레디(36)가, 지난달 23일에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우버이츠 배달원이 사망했다. 10월에는 미국계 도어대시에서 일감을 받아 배달을 나섰던 말레이시아 출신 초우 카이 시엔(36)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에는 시드니 외곽에서 우버이츠를 통해 맥도널드 음식을 배달하던 방글라데시 출신 비조이 파울(27)이 숨졌다.
모금운동 사이트에 올라온 샤오쥔 천과 가족의 사진.
플랫폼 음식 배달 기업의 폭발적 성장, 그에 발맞춘 플랫폼 노동자의 증가는 세계적 현상이다. 미국 음식 배달 플랫폼 스타트업으로 미국 시장 점유율 1위인 도어대시는 지난 9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상장 첫날 주가가 공모가 대비 85.79% 상승하며 흥행에도 성공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일본은 아직 음식 배달 문화가 상대적으로 덜 발달했지만, 확산 속도는 가파르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가 몰아친 올봄부터 도쿄의 거리에는 우버이츠 배달 자전거들이 부쩍 늘었다. 공유 자전거는 물론, 엄마들이 자녀를 보육기관에 데려다줄 때 사용하는 자전거인 ‘마마차리’까지 음식 배달에 활용될 정도다. 도쿄 신주쿠와 이케부쿠로 지역을 중심으로 오토바이로 우버이츠 배달 일을 하는 쓰치야 도시아키는 최근 <도쿄신문>에 “도쿄 지역에 (우버이츠 배달원이) 1만명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몇배는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중국은 이 분야에서도 첨단을 달리고 있지만, 그만큼 그늘도 선명하게 드러낸다. 메이퇀과 어러머 같은 중국 배달 음식 플랫폼은 인공지능(AI)을 통해 배달원들에게 배달 일감을 배분하고 배송 시간을 지시한다. 배달원들이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면 평점이 떨어져 일을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일부 배달원이 열심히 노력해 배달 시간을 단축하면, 인공지능은 배달 시간을 더 단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인식한다. 인공지능이 배달원들에게 더 짧은 시간 안에 배달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플랫폼 노동자는 대부분 나라에서 산재보험이나 최저임금 같은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플랫폼 기업들은 그렇게 하면 사업이 유지될 수 없다며 반대한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제도적 보완 움직임이 있지만, 시작부터 좌초되는 분위기다. 올해 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회사의 지휘·통제에서 자유롭고 스스로 독립적인 고객층을 갖는 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는 노동법상 보호를 받는 노동자로 본다”는 ‘에이비(AB)5’ 법이 발효됐다. 애초 이 법이 발효되면 우버와 리프트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우버의 로비로 지난달 캘리포니아에서 플랫폼 기업 운전기사 및 배달원
등을 노동자가 아닌 사업자로 간주해 ‘에이비5’ 법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하는 법률이 다시 통과됐다.
시드니가 속한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는 지난달 말, 플랫폼 노동자 문제를 조사할 태스크포스를 꾸리겠다고 발표했다. 뉴사우스웨일스주 의회 녹색당 의원 데이비드 슈브리지는 <가디언>에 태스크포스가 하려는 일은 이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조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긱 이코노미’(비정규 프리랜서 근로 형태가 확산되는 경제 현상) 노동자들에게 훈련과 안전 장비 그리고 최저임금 적용이 필요하다”면서도 “(태스크포스는) 잘해봐야 지연전술”이라고 냉담하게 평가했다.
플랫폼 노동자 노동조합 설립 등을 통해 플랫폼 노동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플랫폼 사업 붐이 일 무렵 ‘남는 시간을 활용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부업’이라는 측면이 많이 부각됐던 일본에서도 지난해 가을 ‘우버이츠 유니언’이 설립됐다. 실업 상태에 놓인 이들이 플랫폼 배달 노동자로 몰리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수입이 줄면서 위기의식도 커진 탓이다. 쓰치야 도시아키는 “최근에는 시급 1500엔도 벌지 못하는데, 기름값을 생각하면 최저임금(도쿄도 1013엔) 이하”라고 말했다. 특히 쓰치야는 배달 도중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치료 비용을 직접 부담한 것을 계기로 노조에 가입했다. 당시 우버이츠는 쓰치야에게 “다시 사고가 나면 (배달원) 계정을 없앨 수도 있다”고 이메일로 통보했고, 이를 계기로 노조 참여를 결심했다. 일본 우버이츠 유니언은 “우버이츠가 자체적으로 보상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으나 불충분하고 기준도 애매하다”며 개선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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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노동자도 ‘기업 주문형 고용’ 내몰려
코로나19 사태 이후 ‘플랫폼 노동’이 급속히 확산되는 가운데 보건이나 세무 업무 등 전통 숙련직 인력 시장에서도 기업의 주문 변화에 인력 공급을 빠르게 맞춰가야 하는 ‘주문형 고용’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통적인 고용 형태가 흔들리면서 기업의 주문에 따라 인력 수급이 급변하는 현상이 미국과 유럽에서 두드러진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13일 보도했다. 호텔업이나 항공업 등에서는 해고가 늘고 있지만, 기업들이 요구하는 업무가 순식간에 변하면서 인력난을 겪는 분야도 속출하고 있다.
영국의 한 인력 중개인은 지난달 말 이동통신 기술자 네명의 구인 요청을 받았지만, 5세대 이동통신 구축 사업 때문에 인력이 부족해지며 단 한명의 지원자도 찾지 못했다. 애초 한 팀으로 일하는 두명에게 일당 650파운드(약 94만원)를 주겠다고 광고했으나, 가까스로 찾은 노동자는 일당 750파운드를 요구했다. 그는 “고객이 아마도 일당 인상을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10월 기업 등의 세무 신고 시한이 임박하면서 세무 전문가 수요가 일시에 급증했다. 비즈니스 중심 소셜네트워크(SNS)인 링크트인에 올라온 구인 요청이 평소의 6배에 달했다.
기업들의 인력 수요 급변은 미국 소매업계의 연말 성수기 인력 고용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났다. 인력 중개 업체 ‘맨파워그룹’의 경영자 요나스 프리싱은 “예년처럼 인력을 공급했지만 그동안 공급하던 상점 판매원 등이 아니라 온라인 쇼핑 업무에 배치될 차량 운전자, 창고 노동자, 공급망 관리 전문가를 찾아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업계의 변화 속도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며 “이 때문에 기업들이 원하는 직종이 하룻밤 사이에도 변한다”고 말했다.
맨파워그룹 자료를 보면 최근 수요가 급증하는 인력은 나라별로 제각각이다. 영국에서는 차량 운전자와 건설 노동자 수요가 가장 많고, 프랑스에서는 판매원, 스페인에서는 보건이나 복지 노동자 수요가 많다. 전체적으로 보면, 데이터 분석가 등 업무 디지털화 관련 직종, 물류 관련 직종, 의사나 간호사 등 보건 서비스 업종 중심으로 고용 수요가 재편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코로나19가 바꿔놓은 고용 시장의 큰 변화 중 하나는 기업들이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인력 중개 업체 ‘마이클 페이지’의 영국 관리자 닉 커크는 “유럽에 본부를 둔 한 기업 간부는 ‘전세계 어디서든 일할 수 있으니, 최고 인력을 구해달라’고 주문했다”고 전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