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21일(현지시각) 정상회담 뒤 나온 공동성명에는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 때와 같이 미-중 경쟁의 지정학적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가 언급됐다. 하지만 한-미 공동성명에서는 중국 견제에 공감하면서도 직접적인 중국 공격은 자제한 게 눈에 띈다.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는 미-일 공동성명에 들어간 것과 동일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표현이 들어갔다.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에 대만해협이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미-일 공동성명에서는 1969년 이후 52년 만이다.
그러나 중국과 관련한 나머지 대목에서는 한-미, 미-일 공동성명 사이 차이가 크다. 미-일 공동성명에는 “우리는 동중국해에서의 현상을 변경하려는 어떠한 일방적 시도도 반대한다” 등 공격적 표현들이 담겼다. ‘중국’이라는 단어가 네 차례 들어갔다.
반면, 한-미 공동성명에는 “남중국해 및 여타 지역에서… 국제법 존중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 같은 완화된 표현을 썼다. ‘중국’이라는 단어는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두 성명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대중국 강경 노선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도, 중국에 대한 직접 공격으로는 비치지 않도록 미국과 절충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라는 미국의 압박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다행스럽게도 그런 압박은 없었다”며 “다만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했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한-중 관계의 민감함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중국 견제 성격의 미국·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 4개국의 협의체인 쿼드(Quad)에 한국이 정식으로 참여하는 문제 또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비켜갔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쿼드 등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표현으로 에둘렀다.
중국 쪽 반응은 두 갈래로 보인다. 중국이 ‘주권의 영역’으로 여기는 문제에 대한 언급 자체를 비판하며 강한 유감을 표시하는 한편, 미-일 정상회담에 견줘 한국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식의 반응도 나온다. 민족주의 성향의 <환구시보>는 미·일 정상이 공동성명을 발표했을 때를 집중 거론했다. 당시 중국 외교부 쪽은 즉각 입장문을 내어 “미-일 공동성명은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국제관계의 기본 준칙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며 맹비난한 바 있다. 반면,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문재인 대통령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는 동시에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며 “미국과 한국이 중국 문제에 대해 도달할 수 있는 최대 수준의 합의”라고 평가했다.
일본 언론들도 한·미 정상이 “대만해협”을 언급한 점을 주목했다. 미-일 정상회담 때와 달리 중국을 직접 거론하며 비판하지는 않은 점에 대해서는 한·미 양국이 절충점을 찾았다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아사히신문>은 한·미 정상이 “대중 정책에서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다”고 평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문 대통령이 공동기자회견에서 “대만 지역의 평화”를 언급한 점을 들며, “이례적으로 깊이 들어간 발언이었다”고 평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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