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한국시각) 연방재난관리청 본부에서 직원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지난 21일(현지시각) 끝난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은 취임 4개월 된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을 특징적으로 보여줬다. 상원 외교위원장 4년을 포함한 상원의원 36년과 부통령 8년 경력으로 쌓은 외교·안보 전문성과 소신을 정상외교를 통해 본격적으로 뿜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상대방의 팔을 비틀지 않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기술을 보였다. 동맹을 협박하며 ‘돈 더 내라’고 강압하던 전임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을 동등한 파트너로 존중하며 그에 맞는 권한과 역할도 공유함으로써 결합의 수위를 끌어올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을 지역 안보와 경제, 기후변화 등에 걸친 글로벌 차원의 동반자로 인정했고, 남북 대화·관여·협력에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한국의 독자성을 받아들였다. 문 대통령은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에 호응하는 등 미-중 전략경쟁에서 미국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동맹들이 가진 개별적 특수성을 고려하는 점도 바이든 외교의 특징이다. 중국과 관련해 지난달 16일 미-일 공동성명에는 ‘중국’이라는 단어를 네 차례 써가며 “우리는 동중국해에서의 현상을 변경하려는 어떠한 일방적 시도도 반대한다” 등 공격적 표현들이 들어갔다. 하지만 한-미 공동성명에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안 들어갔고 “국제법 존중” 등 완화된 표현을 썼다. 한국과 일본에 요구할 수 있는 선을 지킨 셈이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의 오미연 아시아프로그램 국장은 “상대방, 특히 동맹국에 대해 그 나라가 처한 사정·상황 등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방식이 트럼프 때와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인권, 동맹 회복, 다자주의 복원 등의 ‘명분’을 중요시한다는 점도 재확인됐다. 미국이 한국군 55만명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제공하기로 한 것은 한국의 백신 요청과 국제적 형평성 사이에서 한-미 동맹을 명분으로 접점을 찾은 결과다.
하지만 바이든 외교가 상대방에 대한 선의로만 이뤄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스스로 “중산층을 위한 외교”라고 천명했듯이, 바이든 외교 또한 꼬인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궁극적으로 미국인의 실리를 챙기고 있다. 오 국장은 한국 기업들의 44조원 규모 대미 투자 계획 발표 등과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의 국내 구호인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과 외교를 연결시켰다”고 말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이 웃는 얼굴처럼 온화한 것만은 아니다. 중국, 러시아 등에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인권 등의 가치보다 목적 달성을 앞에 두는 태도도 엿보인다. 그는 지난달 터키의 반발을 무릅쓰고,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이 저지를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이라고 인정했다. 군의 반대에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9·11 이전에 완전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력충돌 속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에 눈감고 이스라엘을 감싼다’는 민주당 내부의 비판을 들어가면서도 친이스라엘 기조는 접지 않은 채 휴전 중재에 주력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전문가는 “바이든은 외유내강이 아니라 겉으로도 고집이 있고, 자기 생각이 확실하며, 한다면 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외교 스타일은 바이든 대통령뿐만 아니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 숙련된 전문 외교관들이 뒷받침한 결과다.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바이든이 하는 모든 것들이 세밀하게 조율되고 실용적”이라며 “심지어 중국에 대해서도 바이든팀은 적절한 영역에서의 협력, 대결, 경쟁을 조심스럽게 말한다”고 짚었다. 워싱턴에서는 바이든을 두고 “노회하다”는 품평까지 나온다. 외교가의 한 인사는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우지만, 북-미 대화가 실제로 시작되면 가치에 얽매이기보다는 실용적으로 대화를 풀어갈 것이라는 관측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